원전은 폐기물·재생은 기상변수 '발목'.. "독식 어려운 구조" [원전 vs 재생 '파워게임'을 넘어서]

박유빈 2022. 4. 1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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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발전원 치명적 약점은
원전 폐기물 등 뒤처리 골치
중저준위만 겨우 1곳서 저장
고준위는 처리방향도 못잡아
"임기내 총대 매려는 이 없어"
재생에너지 최대 과제 '간헐성'
"태양광발전 저녁엔 발전량 급감"
변전소·송전망 등 설비설치 인한
환경훼손·인근지역과 갈등도 문제
#1.‘골리앗’ 원전은 뒤처리도 어렵다

전국에 부슬비가 내린 지난 14일 경북 경주. 신경주역에서 토함산을 넘어 동해에 다다르니 어디서 많이 본 돔이 보인다. 월성 원자력발전소다. 차로 달린 지 1시간, 발전소를 지나 도착한 목적지는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하다. 이곳은 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하는 ‘경주 중저준위 방폐물처분시설’이다. 국내 24개 원자로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유일한 곳이다.

핵연료로 전기를 만들고 나면 다양한 폐기물이 나오는데, 방사능 농도에 따라 고준위와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로 나뉜다.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방사능은 방사능이다. 이곳에 폐기되려면 우선 원자력발전소에서 예비검사를 받고, 처분 시설에 와서 원자력환경공단과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각각 실시하는 검사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드럼에 담긴 폐기물은 10㎝ 두께 콘크리트에 밀봉된 상태로 지하 동굴에 영구 매장된다. 동굴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는 1층, B17, B21 이렇게 세 개의 버튼이 있었다. 폐기물이 내리는 곳은 B17, 지하 170m란 뜻이다. 폐기물은 두께가 1∼1.6m나 되는 콘크리트 사일로(저장고)에 저장된다.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는 마지막 지점에 6개의 사일로를 보여주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는데 유독 5번 사일로에만 폐기물이 쌓여있었다.

“발전소마다 각기 다른 사일로에 폐기물을 보관합니다. 5번은 월성 원전에서 가져온 거예요. 월성은 바로 옆이라 차로 옮겨올 수 있는데 멀리 있는 원전은 배로 수송하거든요? 그러려면 미리 지자체 등에 신고를 하는데 어민분들이 싫어합니다. 방사능 쓰레기 들어온다고요. 그래서 다른 사일로는 아직 많이 안 찼어요.”
인수저장시설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폐기물 드럼. 원자력환경공단 제공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가 설명했다. 중·저준위 폐기물 드럼 주변의 방사능 농도는 시간당 1.692µ㏜(마이크로시버트)로 X레이 방사능 농도에 한참 못미친다. 그런데도 실어나르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은 방폐물 처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폐기물은 원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에서는 더 심각히 다뤄져야 할 문제지만, 국내에선 중·저준위 폐기물만 2015년에 이곳에 처분되기 시작했을 뿐 고준위는 처리 방향성도 잡지 못한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난 핵 연료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처리한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폐연료봉에서 쓸모있는 플루토늄을 뽑아 다시 쓰는 재처리 방식을, 그 외 대부분의 나라는 영구 처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재처리를 염두에 둔 건 ‘사용 후 핵연료’, 처분을 앞둔 것을 ‘고준위 핵폐기물’이라 부른다.

한국은 재처리를 하기 어려운 나라다. 김경수 사용후핵연료관리 핵심기술개발사업단 단장은 “플루토늄은 무기로 전용될 수 있어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국은 일부 연구 목적 외에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도 재처리를 해 오다 핵확산금지조약을 주도하면서 처분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전했다. 미국이 동의한다 해도 재처리는 기술적으로 위험해 영구 처분장을 찾는 것 못지 않게 부지 선정이 어려울 수 있다.
한국은 원전 가동이 시작된 지 37년 만인 2015년 처음으로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폐물처분시설’에 방사능 농도가 비교적 낮은 폐기물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세 번의 검사를 마친 폐기물은 지하 동굴에 영구히 묻힌다. 사진은 땅 속 170m의 폐기물 하역 구간. 원자력환경공단 제공
그런데도 지난 40여년간 발생한 폐연료봉은 모두 사용 후 핵연료라는 이름으로 발전소 안에서 보관 중이다. 폐연료봉에 ‘폐기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을 마련해야 하는데 누구도 5년 임기 안에 총대를 매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폭탄 돌리기다.

문제는 폭탄에 붙은 불이 심지 끝까지 타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월성 원전이 99%까지 들어찬 맥스터(임시저장시설)를 증설해 간신히 급한 불을 껐지만, 10년 내로 고리·한빛원전부터 포화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2차까지 나왔지만 이 계획을 이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계획 추진을 위해 발의된 특별법은 지난 국회에선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됐고, 이번 국회에선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원자력 전문가는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폐기물은 원자력을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모두 싫어하는 이슈입니다. 찬핵 쪽에선 폐기물이 아킬레스건이니까 부각되는 걸 싫어하고, 탈핵 쪽에선 폐기물이 잘 처리되면 반대 논리 하나가 힘을 잃으니까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후세대로 짐을 떠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드럼통이 담긴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방사능 농도 등을 검사받는 과정
#2.‘다윗’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에도 잡음이

자연 그대로의 바람, 햇볕, 물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재생에너지는 ‘청정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폐기물 발생이 없더라도 재생에너지 또한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 기상 여건에 따른 간헐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저장기술(ESS), 농민과 어민 등의 반대와 환경 훼손 우려로 인한 입지 선정 갈등 등이 여전하다.

최근에는 대규모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면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기까지 변전소, 송전망, 송전탑 등 각종 설비 설치도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전남 무안군이 대표적이다. 무안군 현경면에는 지난해부터 주변 재생에너지 발전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전력망에 잇기 위한 송전설비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나주역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 듬성듬성 눈에 띄는가 싶던 전봇대가 점점 빈번하게 나타났다. 희뿌연 하늘에는 거미줄같은 굵은 선들이 뒤엉켜 있었다. 전선이다. 무안에는 2003년 들어선 운남변전소에 더해 재생에너지 민간사업자들이 허가받은 3개 변전소가 추가 신축 중이거나 건설을 마쳤다.

송건용씨 집에서는 변전소 네 곳이 한 눈에 보인다. 대다수 군민이 농민인 이곳에서 송씨 역시 양파 농사를 짓는 농민이다. 송씨는 지난해 12월 구성된 주민대책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기도 하다.
송건용씨 집에서 바라본 전남 무안군에 들어선 변전소 네 곳. 변전소 뒤로는 송전탑들이 설치돼 있다.
“동네가 이렇게 된 지가 얼마 안 됐습니다. 주변에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소가 늘어나며 변전소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였습니다. 지난 겨울에 작업해 지금은 180m 정도 깊이 땅 속에 굵은 전선들이 묻혀 있어요. 변전소나 송전탑 바로 옆에는 사람 사는 집이랑 논밭이 있고 땅에 묻힌 선로는 마을 도로와 농지 아래를 지납니다. 사전에 한국전력이나 민간사업자들한테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적은 없어요. 법적으로 근린생활시설인 공간에 변전소를 짓겠다고 지자체 허가를 받아 아무 문제도 안 된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 계속 살았고 앞으로도 30년 넘게 살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나라 송전용 변전소가 사용하는 송전 전압량은 154㎸이다. 무안군에는 이런 변전소 네 곳이 붙어있다. 전기 선로를 땅 밑에 묻는 ‘지중화’를 하면 전자파가 다소 줄어든다는 말도 있으나 변전소와 송전선이 몰려있는 지역 주민들은 전자파 노출을 우려한다. 지가가 떨어지고 재산권 행사가 어려운 점은 차후의 문제다. 

무안군 농지의 절반 이상은 지역 농민이 아닌 외지인이 주인이다. 발전사업자들은 외지인인 지주에게 싸게 땅을 구입해 많게는 수십만평에 태양광 패널을 깔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는 송전선을 타고 광주, 서울 등으로 흘러간다. 농지를 내주고 변전소와 송전탑을 지척에 끼고 살아야 하는 주민과 이익을 공유하자는 이야기는 몇 년전부터 나왔지만 지지부진하다.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지역주민과 공유하도록 조례로 제정한 지역은 전남 신안군이 유일하다.
마을에 설치된 변전소, 송전탑 설치에 반대하는 현수막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력망을 확보하고 시설을 설치하는 방법이 잘못됐어요. 돈벌이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놓는 사업자들이 있어서 정권과 관계없이 이런 갈등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설치 후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변전소 기준 거리를 측정해 가까운 주민의 이주를 돕거나 이곳을 재생에너지 마을로 지정해 지역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있었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들어서는 시골에서는 80세 넘은 노인들을 데리고 매일 싸울 수도 없습니다.”

에너지원을 둘러싸고 진영 갈등이 첨예하지만 우리나라는 한쪽이 에너지판을 독식하기 어려운 구조다. 원자로를 24기나 보유한 나라에서 새 원전을 짓고, 송전탑을 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은 시작도 못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전체 전력의 4%를 담당하고 있을 뿐인데도 갈등의 축으로 떠올랐다. 지역사회 갈등과 기술적 한계를 넘어 믿을 만한 에너지원으로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파워게임이 덧없는 이유다.

무안·경주=박유빈·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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