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완전정복] 운보 그림자 지우고 재조명..박래현 그림가치 '훨훨'
케이옥션 1월 경매서 '정물A'
4900만원에 낙찰되며 화제
2년 만에 가격 8배나 뛰어
여성작가 주목받는 흐름과
국현 회고전 등으로 재평가
◆ 미술시장 완전정복 ② 우향 박래현 ◆
간송미술관의 국보가 싱겁게 유찰된 1월 27일 케이옥션 정기경매에서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작품번호 205번으로 출품된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의 '정물 A'(72×57㎝)였습니다. 추정가 2200만~4000만원이었지만 열띤 경합 끝에 4900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날 수억 원에 낙찰된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 등의 경합에도 없던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2020년 3월 서울옥션에서 박래현의 '매화도'(67×37.5㎝·연대 미상)는 610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까지 작품 수가 적은 데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우향의 경매 낙찰은 매우 드물게 이뤄지곤 했습니다. 반전은 1년 전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2월 서울옥션에서 태피스트리(색실을 짜 넣은 그림) 대작 '작품'(131.7×111.3㎝·1975년)이 7100만원에 팔린 것입니다. 3월에는 케이옥션에서 대표작 시리즈 중 하나인 '부엉이'(78×45.5㎝·1960년대 추정)가 추정가의 5배인 3400만원에 팔리며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더니 올해 첫 경매에서도 선전을 한 셈입니다. '매화도'와 비교하면 8배 상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기창의 작은 산수화가 경매시장에서 1000만~3000만원에 출품되고 있으니, 부부의 운명도 역전이 된 셈입니다.
1961년작 '정물 A'는 수묵담채화입니다. 1958년에서 1960년대 초반 김기창과 천경자 등이 주도한 '백양회전'에 몰두하던 시기 작품이죠. 박래현은 이 시기 전통 회화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를 재해석해 감각적인 화풍을 정립했습니다. '정물 A'는 맑은 담채로 회색과 갈색조의 낮은 채도의 색감을 구사하면서도 윤곽선을 그리는 대신, 색면을 화폭에 찍어낸 현대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박래현은 스스로를 '삼중 통역자'라 칭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언어 장애가 있던 남편에게 영어를 한국어로, 다시 수화로 통역해야 했었죠. 작가 스스로도 회화·판화·태피스트리를 모두 작업하고 한국의 전통미술, 서구미술, 제3세계 예술까지 폭넓게 수용했기에 '삼중 통역자'라는 말은 적합한 수식어입니다.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 통역자'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성들의 감정을 작품 속에 풍만하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박래현은 시대를 앞서간 화가였습니다. 예를 들어 1959년작 '기도'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연상시키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과 의미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박래현의 방법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상을 사실적인 시각에서 묘파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입체파적 방법의 원용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박래현의 부활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원숙기에 몰두했던 추상화가 아니라, 전통을 계승하던 시기의 수묵담채화들이 더 각광받으며 저평가받는 '동양화'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장의 요구를 볼 때 우향은 박수근의 뒤를 이어 20세기 초중반 한국의 시대상을 담은 풍속화가로 기억되며 여성 미술의 대모로 오랫동안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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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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