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발베니·맥켈란 있어요?".. 위스키 찾아 남대문 던전 뒤지는 MZ세대

이종현 기자 2022. 6. 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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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아재술'에서 'MZ술'로 세대교체
지난해 위스키 수입액 전년 대비 32.4% 증가
'오픈런'부터 유튜브 영상보고 찾아오는 손님까지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에 있는 대도종합상가. 이곳 지하 1층 수입상가는 의류, 귀금속, 식품, 주류 등 다양한 종류의 가게가 복도 사이를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주말 때 이른 오전이지만 비좁은 복도에는 물건을 보러 온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상가 내 대부분 매장 고객은 5060대 중장년층이었지만, 주류상회 앞 만큼은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최근 MZ세대 사이 위스키 인기가 높아지면서 남대문시장 주류매장을 찾는 2030 세대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남대문 시장은 다양한 위스키를 싼 값에 구할 수 있지만 가격 흥정을 거쳐야 하고 가품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어서 위스키 마니아 사이에서 이른바 ‘던전’이라고 불린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대도종합상가 주류상회에서 사람들이 위스키를 구매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그동안 ‘4050′ 세대 남성의 ‘아재술’로 통해왔던 위스키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MZ술’로 세대 교체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 동안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혼술(집에서 마시는 술)’이나 ‘홈술(집에서 술 마시는 문화)’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위스키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날 글랜피딕 15년을 구매하러 온 강경완(34)씨는 “원래는 위스키에 관심이 없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동안 술집을 못 가니 집에서 혼술하는 취미가 생겼다”며 “마트에서 술을 이것저것 구매해서 마시다가 위스키가 생각보다 입맛에 잘 맞아서 위스키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14년간 주류상회를 운영한 이모(53)씨는 코로나19동안 위스키를 구매하러 온 젊은층이 대거 늘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14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최근 1~2년 사이 젊은 고객들이 가장 많아졌다”며 “가게를 찾는 고객 70%는 2030대 젊은 남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스키 가격도 고공행진이다. 이씨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 발베니와 맥켈란 경우 최근 2~3년간 4만~10만원 정도 가격이 올랐다”며 “최근에 기름값이나 달러 가격이 오르며 위스키 공급 가격 자체도 올랐지만 젊은층 사이 수요도 많아지면서 전반적인 위스키 가격이 뛰었다”고 말했다.

위스키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오르는 모양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수입액은 1억7534만 달러(약 2100억원)로 전년 대비 3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스키 시장이 2007년 2억6457만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위축되다 지난해 V자 곡선을 그리며 반등했다. 올해도 위스키 수입은 늘고 있다. 1분기 위스키 수입액은 5219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1.7% 늘었다. 수입량도 4737톤으로 같은 기간 45.9% 증가했다.

위스키의 인기에 덩달아 인기 위스키 종류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4050대 중심으로 임페리얼·발렌타인과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인기였지만, 최근에는 MZ세대 사이에서 ‘싱글몰트 위스키’가 부상하고 있다. 이날 남대문 시장에서도 멕켈란과 발베니와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멕켈란 18년을 구매하러 온 김모(28)씨는 “좋아하는 유튜버가 멕켈란을 추천해서 구매하러 왔다”며 “싱글몰트는 보리로만 만들어져 블렌디드보다 맛과 향이 부드럽고 색깔이 고급스러워 ‘힙’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류상회 앞에는 찾는 위스키가 없어 발길을 돌리거나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이날 발베니를 구매한 성모씨(35)는 “발베니 사러 왔는데 처음 간 주류상회에 발베니가 없어서 다른 상회를 갔다”며 “그런데 생각보다 비싸게 팔아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격을 흥정해 13만원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날 글렌드로낙을 구매한 이경환(36)씨는 “발베니를 사려다가 가격이 너무 올라 새로운 위스키에 도전하고자 글렌드로낙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11일 위스키 바 진열장에 다양한 위스키들이 진열돼 있다(왼쪽). 주류매장에도 위스키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민영빈 기자

같은 날 오전 10시. 광화문역 근처에 위치한 주류판매점은 위스키를 찾는 손님들의 전화로 끊임없이 벨이 울렸다. 이날 입고 되기로 공지됐던 ‘글렌알라키’ 4병이 일주일 뒤에나 입고 된다는 소식을 확인하는 전화였다. 8년 차 점장 최모(35)씨는 “오늘 글렌알라키 ‘오픈런(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 구매하는 현상)’을 하려던 단골손님들이 꽤 있었다”며 “입고 물량에 차질이 생겨서 일주일 정도 뒤에나 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미리 공지했는데, 그걸 본 2030대 고객들이 아쉬워하면서 DM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위스키를 찾는 2030대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매장에 아예 ‘위스키 존’을 늘린 곳도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와인과 위스키 판매점을 운영하는 사장 이모(45)씨는 “2년 전만 해도 저희 매장에서 위스키는 여기 한 칸 정도였다”며 “요즘 위스키를 찾는 젊은 손님들이 많아져서 장식장을 두개 더 추가해 조금 더 다양한 위스키를 손님들에게 선보이려고 공간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베니나 맥켈란을 정말 많이 찾아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저희도 발베니 12년을 간신히 2병 구했다. 조금 잘 안 팔리는 와인을 껴서 파는 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주류판매업자들은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위스키 인기가 높아진 데에는 유튜버들이 위스키 콘텐츠를 영상으로 업로드하는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MZ세대가 유튜브를 통해 고급술로 꼽히는 위스키가 발품을 조금만 팔아도 비교적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으며, 증류나 숙성에 따라 위스키 맛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혼자 위스키를 마시며 자신의 위스키 취향을 알게 된다는 점이 MZ세대 사이에 위스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거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주류판매업자인 이모(40)씨는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 때문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젊은 손님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게 하나의 습관으로 굳혀진 것 같다”며 “위스키가 고급술로 분류되는데, 2030세대 사이에서는 본인 나름의 취향이 고차원적인 것을 보이고 싶거나 고급스러움을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가 위스키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어 “조금만 발품을 팔면 가게나 바에서 마시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위스키를 구입해서 마실 수 있으니까 오픈런도 불사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위스키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김모(33)씨는 “유튜버들이 시킨 위스키라면서 맛이 궁금해서 주문한다는 20대, 30대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며 “집에서 하이볼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젊은 층 사이에서 자리잡은 게 더 맛있는 위스키로, 더 맛있는 하이볼을 만들어 먹겠다는 걸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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