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국원 작가 "나의 인기는 기이한 현상, 시장의 집단성이 내 작품 선택한 것"
"한국의 바스키아? 누구 영향 받았다 단정 어려워"
'호령전' 출품작, '순간의 행복' 메시지 담아
"호랑이 그림 동양 선(禪) 전통 담았다"

대천사 성 미카엘은 서양 종교 회화사에서 매우 인기 있는 주제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라파엘은 최후의 심판을 집행하는 대천사로, 정의를 상징하는 저울을 들거나 사탄에게 긴 창을 겨누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돼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이 전해 내려오지만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초기 바로크 화가 귀도 레니(1575~1642)와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1483~1520)의 역작이 가장 유명하다.
레니가 그린 미카엘은 과감한 대각선 구도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고 라파엘의 작품은 마치 고전 시대 조각상을 보는 듯 유기적으로 균형 잡힌 인체와 안정적 구도가 돋보인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모두 천상 세계와 구원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내는 환영적 회화라는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 그것이 종교화의 전통이자 전형이다.
우국원은 그런 라파엘과 레니의 전통적 미카엘을 비틀었다. 그의 2019년작 ‘대천사(Archangel)’는 ‘역설의 회화’다. 동화의 삽화 같은 화풍, 직물로 촘촘하게 수를 놓은 듯한 마티에르(소재나 질감), 파스텔톤의 색감은 전형적 미카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벽을 가득 메운 100호 크기 캔버스 한 가운데 우뚝 선 미카엘을 올려다보면, 관자(觀者)는 심리적으로 압도된다. 화폭을 사선으로 양분하는 창과 미카엘의 깊은 눈은 분명 캔버스 앞에 선 사람의 내면을 꿰뚫는다. 성당의 제단에나 적혀있을 법한 라틴어 글귀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도 묘하게 신앙심을 고취한다.
최근 막을 내린 ‘호령전: 범을 깨우다’에서 선보인 최신작도 마찬가지로 양가적 회화다. 함께 전시된 다른 작가들의 호랑이 그림이 털 한 올마저 살아 움직일 듯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으로 제작된 것과 달리, 우국원의 그림은 여전히 ‘귀엽다’. 그럼에도 즉흥적인 붓터치와 그 위에 글귀를 새겨 넣은 비정형적 구성, 검은색과 밝은 색의 강렬한 대조는 호랑이의 거친 속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듯하다.

우국원은 국내 미술 시장에서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투자 열풍을 이끈 가장 인기 있는 화가다. 지난해 9월 케이옥션 경매에서는 ‘어글리 덕클링(Ugly Duckling)’이 치열한 경합 끝에 2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불과 한 달 만에 작품 값이 2배나 오르자,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일제히 우 작가에게 쏠렸다. 올해는 그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대기 번호’까지 받는 일이 당연해졌다고 한다.
지난 달 25일, 우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그는 “기이한 현상이고 나와는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그니처가 된 그림 속 글귀도 그저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전체적인 레이아웃(배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른 수단이라고 했다. 우 작가는 그 외에도 호랑이 해에 아버지가 된 소감, 그리고 부친(동양화가 우재경 화백)과 함께 호령전에 참여한 소회에 대해 얘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한국 구상화 열풍을 이끌고 있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스스로 인기의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스페인 화가 에드가 플랜스 같은 작가와 우 작가를 비교하며 세계적으로 ‘귀여운’ 그림이 뜨고 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요즘 시대상이나 문화적 취향과 잘 맞는 것일까.
“기이한 현상이고, 나와는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그저 내 작업을 이어갈 뿐이다. 그럼에도 이유를 찾아보자면, 컬렉터 집단에 MZ세대가 많이 유입되며 더 다양한 작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집단성’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수집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시장의 중심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내 작품을 수집하는 세대(MZ세대)다. 서로의 컬렉션을 공유함으로써 취향을 드러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가는 MZ세대 컬렉터들이 더 많은 이슈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데서 내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 작가를 그래피티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에 비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작품을 보다 보면 장 뒤뷔페(1901~1985, 비정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앵포르멜 양식의 거두)의 그림과 더 유사해 보인다. ‘애니(Annie)’ 같은 작품에 느껴지는 즉흥성이나 거친 마티에르를 보면 특히 그렇다.
“나는 비정형을 그리지 않는다. 다만 표현 기법와 마티에르는 앵포르멜 혹은 타시즘(얼룩을 뜻하는 프랑스어 ‘타슈(tache)’에서 나온 용어로, 유럽의 서정적·표현적 추상을 기하학적 추상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됐다. 화가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기호와 얼룩이 진 듯한 질감의 상호 작용을 중요시했다)과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영향을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혹은 그렇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오랜 시간 좋아해 온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 같다. 작품이 설명되는 과정에서 심도 있는 내용이 더 곁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나 스스로도 (내 작품에 대해) ‘아, 그렇구나’ 하며 새롭게 알아챌 때도 있다. 내 표현 기법이 다른 작품 혹은 사조와 특정한 지점에서 맞닿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작품에는 성모 마리아나 성 미카엘 등 종교적 모티프를 적용하기도 하고, 과거 인터뷰에서 사도행전을 공부 중이라는 얘기도 했다. 혹시 종교를 갖고 있나.
“종교적 신앙이 작품의 직접적 근간이 되진 않는다. 다만 과거 신학을 철학이나 과학, 문학과 같은 일종의 학문 분야로서 탐구했던 적이 있다(우국원은 심리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탐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작업을 이루는 모티프가 나를 둘러싼 것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종교적 모티프가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그림에 늘 글자를 새겨 넣는데, 바바라 크루거나 제니 홀저의 개념미술(작품 자체보다 제작 과정이나 아이디어를 중요시하는 사조. 크루거나 홀저는 이미지와 글귀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작품 속 글귀를 보는 관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길 기대하는지.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밖으로 표출하면서 자란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번 꼬아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작품 활동을 할 때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품 외적으로(예를 들어, 개인전에 ‘제레미아는 황소개구리였다’라는 제목을 붙인 적이 있다), 혹은 작품에 적어 넣어 한 번 꼬아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내 의도보다는 관람객이 자신만의 해석대로 읽어주길 바란다.
작품에 텍스트를 넣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어릴 적 아버지 덕에 한국화를 많이 봐왔고, 텍스트가 전체적인 레이아웃의 밸런스를 맞추는 디자인적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텍스트 자체가 갖고 있는 조형적 요소가 늘 좋았다. 어떤 텍스트는 잘 안 읽힌다고들 얘기하는데, 사실 의미를 배제하고 조형적 역할만 봐도 큰 문제는 안 된다.”
부친의 작품을 오마주해 전시회를 연 적도 있고, 이번 호령전에도 함께 출품했다. 실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부친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 지 궁금하다.
“아버지가 문인화가로 매일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작가 활동을 하는 대신 디자이너로 일했던 때가 있지만, 2008년 결국 화가가 됐다. 아버지는 작가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 치열한 작가 정신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 작품 활동을 할 수록 미술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다. 지금 아버지께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령전에 함께 출품했다. 호랑이 해에 아버지와 함께 호랑이를 그린 것은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지난해 11월 스스로도 ‘아버지’가 되지 않았나. 자녀가 생기고 나서 예술관이나 작품 활동에 변화나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책임감이 생겼다. 이제서야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다. 특히 호령전이 의미가 있었던 이유도 아이가 호랑이 띠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 작업량도 많아진 것 같다. 다만 요즘 작업 강도가 너무 높아 작업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아이가 내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이번 호령전의 출품작에 대해 소개한다면.
“동양의 선(禪) 사상에 기반을 두고 그렸다. ‘호랑이 사이에 갇힌 남자’에 대한 얘기를 그림에 담았다. 한 남자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나무 줄기를 잡고 절벽 아래로 몸을 숨기려 했는데, 절벽 아래에 또 다른 호랑이가 있어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그 때 우연히 잘 익은 열매를 발견해,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을 경험했다더라. 서양의 불교인들은 이 얘기에서 ‘순간의 행복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얻었다고 한다.
호령전에 출품한 ‘호랑이와 딸기’는 이 호랑이 얘기 속 남자처럼 지친 현대인들과 나 자신의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순간의 작은 행복을 즐기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호령전 참가를 통해 예술과 가상자산을 접목한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영역에도 진출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NFT의 유행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시공간의 한계 없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진 작가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원화 작업을 계속 하되, NFT 미술의 창의성에 대한 부분도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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