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클릭하기] 어른 제국의 역습
[미디어오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노하라 신노스케는 몰라도 짱구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일본 만화 <크레용 신짱>은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짱구는 못말려>로 소개되었는데, 특히 TV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얻었다. 어린이 시청자를 감안해 인명과 지명을 한국화했고 한국 성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아이들의 마음을 홀딱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지금 어른이 되었지만 짱구만큼은 여전히 현역이다.
1993년부터 개봉한 극장판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제작되어 오는 4월에는 서른 번째 작품 <모노노케 닌자 진풍전>을 준비 중이다. 3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갖는 작품이다 보니, <짱구는 못말려>를 통해 그동안의 세태와 일상 변화를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극장판 중 평론가와 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뽑는 최고작은 2001년 개봉한 <어른제국의 역습>이다. 이야기는 떡잎마을 근처 새로 들어선 20세기박물관을 다녀온 어른들이 집단 환각에 취해 야밤에 아이들을 떠나며 고조된다.
20세기박물관은 추억의 레슬링, 간식, TV 예능이 한가득 전시되었고 그 때의 골목길을 오밀조밀 재현해 인정 넘치던 좋았던 옛 시절을 오늘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흡사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처럼 여기저기에서 어른들은 딱지치기와 인형놀이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해질녘까지 놀이에 열중한다.
기실, 20세기박물관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심화로 다가올 21세기를 비관하는 켄과 미셸 부부가 자신의 조직 '예스터데이원스모어(Yesterday Once More)'를 통해 만든 집단최면장치였다. 이들 조직은 우선은 20세기 향수를 가진 어른을 세뇌하고, 아이들은 따로 입양시켜 추억의 20세기에 맞는 아이들로 개조한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이에 방치된 짱구와 그의 친구들은 20세기박물관에 침입해 현실로 되돌아온 가족의 도움을 받아 '예스터데이원스모어'의 계획을 분쇄한다. 가족의 소중함은 절실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스스로 21세기 어른이 될 자유와 기회를 빼앗아가지 말라는 짱구의 호소는 미셸과 켄의 마음을 되돌려 놓기 충분하였다.

2022년에 <어른 제국의 역습>을 보며 놀라웠던 점은 20세기가 이렇게나 낡은 과거인가란 당혹스러움과 과연 20세기가 온전히 긍정의 시기였던가란 회의감이다. 극중 20세기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1970년대처럼 보인다.
배경으로 등장한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한국판에서는 대전 엑스포)는 일본의 문화연구자 요시미 ��야의 지적처럼, “1950년 반미 기지 투쟁도 1960년대 안보 투쟁도 이미 먼 과거의 일”(요시미 ��야 저, <만국박람회의 환상>)임을 선포하는 정치적·상업적 이벤트였으며 이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소비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함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일본은 주변 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식민지배 책임을 회피하고 시민사회 역시 와해되며 급격하게 자민당 1당 중심주의로 보수화되는 정치적 퇴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20세기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의 어두운 이면이다. 지금도 20세기 습속이 몸에 배어 끈질기게 21세기의 발목을 잡는다. 21세기로 들어선지 20년이 지났건만 무자비한 학력주의, 구조적 여성차별, 그리고 '빨갱이' 혐오를 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몰이해와 비난이 여전히 과거의 망령을 소환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예스터데이원스모어(Yesterday Once More)'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가히 기성 제국의 역습이다. 히틀러와 진배없는 전두환에 대한 우호적 진술이 끔찍하고 공무원을 집사 부리듯 대한 구시대적 갑질도 경악스럽다. 21세기 여권 신장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유력 대선 후보들뿐만 아니라 일부 젊은 지지층에게도 드리운 20세기 잔상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한국의 미래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이 칼럼이 게재되는 3월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짱구 아빠 신형만이 처절하게 울며 낭만화된 과거와 절연했듯, 지금 우리 역시 시효를 상실한 20세기와 이별을 통보할 때다. 그래도 결국 누군가는 한국의 향후 5년을 책임 져야 할 터. 새로운 대통령이 자신의 구태부터 성찰하는 첫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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