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컴퓨터, 갑작스런 대표 교체 배경은

시간이 없다면

· 삼보컴퓨터 대표이사가 교체됐습니다. 오너 일가인 이홍선 전 대표에서 정홍조 대표로 바뀌었는데요. 임기 만료일 전에 갑작스런 대표 변경입니다.
· 회사 측은 "매출 하락에 따라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삼보컴퓨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은 사뭇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보컴퓨터 첫 PC 모델 SE-8001. (사진=삼보컴퓨터)

삼보컴퓨터 역사는 복잡합니다. 1980년 이용태 창업주가 삼보엔지니어링을 만든 게 첫 시작입니다. 가정용 PC 등을 출시하며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는데요. 2005년 업황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고 법정 관리에 들어갑니다. 이용태 창업주는 이때 경영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후 주인이 수차례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삼보컴퓨터가 된 건 2012년인데요. 창업주 둘째 아들 이홍선 전 대표는 당시 삼보컴퓨터 일부 사업부가 분할된 'TG삼보'를 인수했습니다. 그는 인수한 TG삼보의 사명을 삼보컴퓨터로 변경했습니다.

이때부터 이 전 대표는 삼보컴퓨터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는데요. 그런데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갑자기 대표가 교체됐습니다.

임기가 끝난 걸까요.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니 그런 건 아닙니다. 올해 3월 발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 대표의 임기 만료일은 2024년 3월25일입니다. 임기 만료 전에 교체된 겁니다.

이홍선 전 대표의 임기 만료일(2024. 03. 25)

새로운 대표는 정홍조 대표입니다. 지난해 말까지 상무였고요.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대구·부산·마산 지역 영업을 관할하는 동부 지사장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임기 2년 남은 오너 일가를 대신해 대표이사직에 올랐습니다. 어떤 배경이 작용한 걸까요.

삼보컴퓨터 측에 대표 교체 이유를 물어봤는데요.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매출 하락에 따라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영업 일선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정 대표로 변경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업계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매출 대부분이 조달 시장에서 발생하고, 조달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보컴퓨터는 PC와 모니터 제품을 판매합니다. 주력은 PC 제품입니다. 전체 매출 중 PC 제품으로 얻어낸 수익이 90.4%에 달합니다.

그런데 삼보컴퓨터의 PC 판매는 일반적인 LG전자, 삼성전자와 결이 다릅니다. 삼보컴퓨터 사업보고서에도 언급되는데요. '사업의 내용 4-2' 부분을 보면, "주로 정부 조달망을 이용한 정부 관공서,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판매가 주를 이루며 추가적으로 유통 판매를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삼보컴퓨터는 조달 시장에서 PC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의 95%가 관공서를 상대로 한 판매, 즉 조달 시장에서 발생했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 PC(데스크톱) 조달 시장의 특징 때문입니다. PC 부문은 '중소기업간 경쟁 적합 품목'으로 지정돼 대기업은 경쟁에서 제외되고 중소기업자 간 경쟁이 이뤄집니다.

PC 부문 조달 시장은 이 같은 구조 때문에 매번 대우루컴즈, 삼보컴퓨터, 에이텍 등 소수 업체들만 경쟁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관공서, 학교가 4~5년 주기로 컴퓨터를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교체 수요를 3~4개 업체가 나눠 공급하는 꼴이다. 다른 제조업처럼 영업에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매출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삼보컴퓨터 매출 추이를 볼까요. 매년 1000억원대 매출을 유지했습니다. 2017년부터 1032억원→913억원→1000억원→990억원→89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단 한번도 중소 기업 분류 기준(3년 평균 매출액 1500억원)을 벗어나지 않았네요.

조달 시장 위주의 거래는 삼보컴퓨터 재무 관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데요. 제조업이지만 재고자산 등이 늘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조달 시장 규모가 예측 가능한 만큼, 재고 관리도 용이하다는 평가인데요.

이런 평가는 지표에서도 드러납니다. 업황에 따라 재고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제조업과 달리 재고 손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데요. 지난해 기준 재고자산 규모는 119억원인데, 제품 평가 충당금은 3421만원입니다.

이홍선 대표 사임, 오너家 개인 회사 연관 있을까

삼보컴퓨터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분들은 "이 전 대표 사임이 '오너 일가 사익 추구 의혹 벗어나기'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삼보컴퓨터와 계열회사 간 거래 내역을 보면 설득력 있는 분석인데요.

삼보컴퓨터의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이익을 더하면 243억원입니다. 2017년부터 41억원→38억원→70억원→60억원→32억원입니다. 매출 대부분이 조달 시장에서 발생한 만큼 조달 시장에서 얻은 수익이라고 보면 됩니다.

같은 기간 삼보컴퓨터는 지분 52.5%를 보유한 최대주주 티지나래에 155억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했습니다.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63.7% 규모입니다. 2017년부터 20억원→30억원→36억원→34억원→34억원을 티지나래에 지급했네요.

지난해만 놓고 보면 영업이익보다 많은 돈을 티지나래에 줬습니다. 비용 지급 이유는 'IT인프라/관리 용역'이라고 기재했습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티지나래는 말 그대로 기존 삼보컴퓨터 전산팀이 담당하던 전산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목할 부분은 티지나래가 오너 일가 개인 소유 회사라는 점인데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티지나래는 오너 일가인 이 전 대표와 특수관계자가 지분 74.8%를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지분 25.2%도 삼보컴퓨터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너 일가 외에는 특별한 주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삼보컴퓨터는 티지에스라는 회사에도 수수료를 지급했습니다. 지난해 티지에스에 지급한 수수료는 18억원인데요. 티지에스 최대주주는 티지나래입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티지나래는 티지에스 지분 79.8%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삼보컴퓨터가 무슨 명목으로 티지에스에 수수료를 지급했는지는 사업보고서에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삼보컴퓨터 사례를 보다 보면, '중소기업간 경쟁 품목' 지정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중소기업 판로 확보를 위해 도입한 중소기업간 경쟁 품목 제도가 국내 업체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