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기본소득을 하세요..모발 모발 [노원명 에세이]
나는 기본소득에 다소 관심이 있는 편이어서 몇차례 그 주제로 칼럼을 쓰기도 하였다. 기본소득 논의에 생각이 열려있는 쪽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국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무척 먹음직하게 생겼으나 지금까지 누구도 잡아보지 않은 미지의 '사냥감'같은 것이다. 노련한 맹수는 남이 먼저 사냥하는 것을 보고 '먹을만 하다' 판단이 섰을때 새 먹잇감에 도전하는 법이다. 지난해 한국인 다수가 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몇몇 여론조사가 있었다. 과연 한국인은 노련하다.
'기본소득 전도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본소득 반대 여론이 높게 나오자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물러난 바 있다. 며칠전 한 토론회에서 "당장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며 소신이 변하지 않았음을 피력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을 쟁점화할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표가 안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하면 기본소득이었는데 그는 지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벗어던져 놓고 선거판을 뛰고 있다.
나는 이 후보가 본격적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며 '집권해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으면 그 주장을 진지하게 바라볼 용의가 있었고 내심 그렇게 해주길 바라기도 했다. 내 기준에 그것은 포퓰리즘이 아니고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지금 논의되어도 좋을 사회적 의제라고 생각한다.
본격 기본소득이 되려면 그 금액이 최저생계비를 커버할 수준이 되어야 하고 세제, 연금, 기존 복지체계 등 우리 경제문법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그것은 저출산과 연금 파탄, 청년실업을 일거에 해결할 탁월한 승부수일수도 있고 대한민국을 영영 '골로 가게' 할수도 있다. 나는 지금은 반대하지만 언젠가 우리 사회가 양자택일 길목에 설 날이 올 것이라 예상한다. 대선은 국가 진로를 놓고 거대한 설계담론이 오가는 장이어야 한다. 이 후보가 그런 수준의 기본소득을 주장한다면 경청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이 후보는 기본소득의 큰 그림을 이야기한적이 없다. 어떤 위험과 비용이 수반할 것인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당장 경제시스템을 손대지 않고 세금을 더 거둬 할 수 있는 기본소득만 이야기했다. 예컨대 몇살부터 몇살까지 연령구간을 잘라 연간 200만원의 청년 기본소득을 준다는 식이다. 그러나 연간 200만원은 최저 생계비가 될 수 없고, 청년만 주는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그것은 '청년 용돈'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본소득에 기대하는 어떤 새로운 변혁과 사회적 돌파구도 기약하지 못한다. 그것은 '과잉 복지'일 뿐이고 청년에 대한 '표 구걸'이며 따라서 포퓰리즘이다.
방면 전문가들로부터 오랜기간 집중 과외를 받아온 이 후보가 기본소득의 개념을 몰라서 이런 시시한 얘기만 해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대중이 좋아할만한 기본소득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유사 기본소득'에 대중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안한다"고 하루아침에 돌아서 버렸다. 포퓰리즘이 원래 쌀쌀맞고 덧 없다. 수 틀리면 마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거둬들인 이 후보 진영은 대신 '탈모치료 급여적용' 공약으로 탈모인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걸 왜 기본소득과 연결시키느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연결적으로 다가온다. 같은 포퓰리즘이니 말이다.
개인 얘기라 뭣하지만 날 때부터 태평양같은 이마를 타고나 지금까지 살아왔다. 서른 이후로는 머리숱마저 줄었다. 그래도 그냥 산다. 누구나 장동건처럼 살수는 없는것 아닌가. '아버지 왜 날 이렇게 낳으셨나요' 따지기도 전에 선친이 돌아가셨다. 실제 따졌을때 내가 들었을 답은 장담컨대 이것이다. '니 미쳤나'. 내 아버지에게도 못따질 일을 왜 국가가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국가는 그런 일 하라고 있는거 아니다.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으로 전 국민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탈모치료제로 천만 탈모인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한다. 꿈이 소박해진 것인가. 아니면 원래 생각했던 그 기본소득이 딱 탈모치료 수준으로 막 던진 것이었나. 막 던져서 받으면 땡큐, 아니면 그만인 그런 기본소득이었나.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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