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좋은 친구, 민음사 유상훈 편집자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저는 ‘책’입니다. 사람들과 제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들 하는데 실은 여전히 저를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저는 머나먼 여행을 하고 있답니다. 저는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사람들을 거쳐 어떻게 당신에게 가닿는 것일까요. 당신이라는 독자를 만나도 책의 여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당신은 제 세계를 여행하기도 하고, 또 저로부터 얻은 지혜와 정보를 친구에게 이야기하기도 하죠. 저는 세상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여행을 하고 있답니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는 책의 여행을 다룹니다. 오늘은 저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좋은 친구, 편집자를 만나러 갑니다.

출판사 민음사에서 ‘쏜살문고’를 비롯해 다양한 책들을 편집하고 있는 유상훈 편집자.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빠르지만 교양 있는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이는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이 가득 담긴 책을 ASMR로 소개하는 ‘조용한 책 소개’의 진행을 맡고 있는 그는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해 9년 전 처음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어요. 논픽션으로 시작해 현재 해외 문학을 소개하고 있는 그의 바람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좋은 작가를 발굴해서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하고픈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일에서는 도전으로, 일상에서는 여행으로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는 책을 친구 중의 친구 ‘찐친’이라 표현해요. 그 친구는 분명 매력적일 거예요.

민음사 유상훈 편집자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다고 하는데 사람들의 손, 가방 속에서 여행을 하던 책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당신에게 위로와 안식처가 돼줄 친구는 어떻게 태어나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있을까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책의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책의 여행’ 인터뷰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편집자’입니다.


편집자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생 시절 통학하는 데 지하철로 왕복 네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할 수 있는 게 달리 없잖아요. 그때부터 독서, 특히 프랑스 문학에 빠졌어요. 졸업 후 ‘덕업일치’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편집자에 지원하게 됐어요. 평소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꿀이잖아요.


책 편집 외에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세요?

전문 유튜버가 아니다 보니 여러모로 적응하기 힘든 점이 있기는 하지만 보람도 느껴요. 요즘 책을 홍보하거나 마케팅하는 게 무척 힘들거든요. 유튜브를 통해 제가 만들고 좋아하는 책들이 독자분들께 가닿을 수 있다는 게 기뻐요.


민음사TV 캡처

‘민음사TV’가 인기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보다는 구독자 취향에 맞게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영상들을 보시면 책 추천은 반찬처럼 들어가 있고 메인 요리는 ‘언박싱’이랄지 ‘왓츠 인 마이 백’ 같은 유튜브 콘텐츠예요. 여러 출판사 유튜브 채널 중에서 저희는 구독자 중심의 자유로운 색채를 바탕으로 활로를 찾아가고 있어요.


편집자는 독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해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출판이라는 게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작거든요. 판매량 2천 부 미만인 책들도 많아서 손익분기점 넘기기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책만의 매력과 강점을 잘 알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죠. 그래서 편집한 책을 독자에게 선뵈고자 노력하는데, 얄궂게도 대놓고 좋다고 하면 또 잘 안 팔려요. 책이 참 특이해서 광고가 능사가 아니더라고요. 특히 언론사 서평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입소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죠. 책을 만드는 일만큼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늘 고민이랍니다.


그동안 편집한 책 중 애정이 가는 책을 소개해주세요.

작가의 새로운 면을 소개할 수 있는 책이 기억에 남아요.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 ‘무민’ 시리즈로 잘 알려진 화가 겸 작가 토베 얀손이 쓴 소설 <여름의 책>(2019), <페어플레이>(2021)를 출간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스스로 만족했던 작업은 영국의 대표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소설 <이방인의 아이>(2021)와 <스파숄트 어페어>(2021)였어요. 각각 약 900페이지였지요. 그걸 계약한 스스로를 막 때리고 싶을 정도로 작업이 정말 힘들었는데요. 작품의 무게감 덕분에 여러모로 큰 도전이 되어서 판매량과 무관하게 뿌듯했던 작품이에요.


‘쏜살문고’ 시리즈는 다양한 시도와 기획력이 돋보여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경우는 25여 년의 전통과 권위가 있다 보니 새로운 시도에 제약이 있어요. 반면 2016년 론칭한, 작은 총서를 추구하는 ‘쏜살문고’는 신생인 만큼 편집자나 마케터가 재미있는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일러스트 디자인이라든지, 단행본으로 내기 어려운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고 있어요. 그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입장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쏜살문고’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2016)이 잘 팔렸어요. 역시 고전이 잘 나간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고요. 예전처럼 종이책에 돈을 쓰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어서 한 권을 사도 예쁘거나 재밌거나 목적이 분명한 책이 잘 팔리더라고요. <자기만의 방>은 당시 페미니즘 이슈와 맞물렸고 작품 자체도 명쾌하고, 시의성 있는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직업인으로서 편집자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는 거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1년에 수십 권을 내는데 다 잘될 수는 없잖아요. 예전에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현타’가 종종 오기도 했고, 무력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꾸준히 새로운 기획을 낼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지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요. 실패해도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는 힘을 기르고 싶어요.


요즘 기억하고 있는 책 속의 문장이 궁금해요.

“내게 아름다움은 세상의 온갖 경이로운 것 중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건 속물적인 짓이에요. 진정한 수수께끼는 보이는 것에 있지, 보이지 않는 데에 있지 않아요.”(오스카 와일드)

요즘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편집하고 있어서 이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보통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진짜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인간의 겉면을 본다고요. 겉에 있는 진실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내면까지 볼 수 있겠느냐는 도발적인 문장이에요. 겉으로 드러난 진실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핑계처럼 인간의 내면을 강조한다는 점, 이것을 재치 있게 꿰뚫어 본 와일드의 촌철살인이 흥미롭게 와닿았어요.


여행하면서 우연히 만난 책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츠타야 서점’의 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쓴 <지적자본론>(2015)을 냈는데, 실제로 2015년 여행 중 도쿄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 서점에 방문한 뒤 직접 책을 계약하게 된 경우예요. 지금의 ‘더현대 서울’ 같은 오프라인 기반의 라이프 스타일 중심 공간의 선구자 격인 츠타야 서점을 보고 ‘이런 공간이 있구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책 출간 후 시장의 호응도 무척 좋았어요.


편집자님의 손을 거쳐 여행을 떠난 책들에 어떤 마음이 드나요?

제 손을 떠난 책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한 줄로 남는 그런 여행을 하면 좋겠어요. 곁에 두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애틋한 그런 여행 사진처럼, 책들도 독자 곁에 따스하게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유쾌하거나 다정한 언제는 우리를 미소 짓게 하잖아요!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