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밥 1000원 국룰이 깨지지 않는 이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식단이 다양해지고, 탄수화물 과다섭취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 한끼 이상은 밥을 먹어야 한다. 고깃집에 가서도 밥을 볶아먹거나 떡볶이에 주먹밥 정도는 곁들이는게 국룰.

그래도 근본은 역시 식당에서 파는 이 뜨끈뜨끈한 공기에 담긴 공깃밥인데, 신기하게도 공깃밥 가격은 언제나 1000원이었다. 다른 건 시간이 지날수록 오르기만 하는데 이건 왜 그대로일까. 유튜브 댓글로 “식당에서 파는 공깃밥은 늘 1000원인데 왜 그런건지, 언제부터 1000원이었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공깃밥 가격은 변하지 않는 이유

일단 한국외식업중앙회 외식산업연구원과 서울시, 한국물가협회에 언제부터 공깃밥 가격이 1000원이었는지 물어봤는데 약간 당황스럽다는 반응과 함께 이런 답변들

외식산업연구원 관계자
“그런 정보는 없다고 그러셔서 도움 드리기가..."
한국물가협회 관계자
"저희가 근데 그런 조사는 안하고 있어가지고..."

공통적으로 모두 데이터가 없다는 거였다.

그럼 식당을 20년 이상 하셨다는 사장님들은 알지 않을까? 했는데 한결같이 "공깃밥은 원래 1000원이었다"는 거였다. 서울 종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은 “내가 김영삼정부 처음 시작할때부터 장사를 했는데 그때도 공깃밥 1000원 받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걸 보면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대략 90년대 초중반부터 공깃밥은 1000원이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우리가 찾은 과거 자료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다. 이건 1996년 12월 신문. 주방만 있고 식탁이 없는 식당이어서 가격거품을 뺐다는 내용인데 공깃밥 가격은 1000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1995년 1월에는 당시 처음 실시된 쓰레기 종량제 반응을 소개하면서 한 식당에서 손님이 해물탕 4인분을 시켰는데 밥이랑 음식 양이 너무 적어서 공깃밥 2개를 추가로 시키자 주인이 쓰레기처리 비용이 부담된다며 공깃밥 2개에 2000원을 받아 다툼을 벌였다는 내용이 있다.

좀 더 과거로, 검정고무신 시절로 돌아가보면 공깃밥 가격이 꼭 1000원이었던 건 아니었다.

1981년 5월로 가보면 당시 정부는 식량 절약을 위해 식당에서 밥그릇을 공기로 바꾸라고 했지만 식당 주인들은 “(공깃밥으로 주면) 손님들이 밥 양이 적다고 추가주문을 하기 때문에 번거롭기만 하다”며 불만이 많다는 내용인데, 공깃밥 가격이 300원이라고 나와있다.

1982년 12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대비해 반찬 가격 하나까지 가격을 정했던 ‘주문식단제’ 기사에는 공깃밥 가격이 400원으로 나와있다. 400원에서 1000원으로 변하는 약 10년간의 변화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식품 물가가 미쳐 날뛰는 시대에도 공깃밥 가격만 1000원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요즘 공깃밥 2000원하는 식당들도 생겨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식당은 1000원을 받는데 첫째 이유는 ‘공기밥=1000원’이란 인식이 너무 강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상효 연구위원
"1000원에서 1100원, 1200원 이렇게 10% 20% 올릴 수 있는 품목이 아니고 1500원 2000원으로 올려야 의미가 있는 숫자인데 1500원 2000원 100% 올리기에는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죠."

둘째 한국 사람들이 과거처럼 밥을 많이 먹지 않는데다가 밥공기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가격은 고정됐지만 밥 양도 줄어든 거다.

70년대부터 정부는 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식당에서 솥밥 대신 공깃밥을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렸는데 1976년에는 밥공기 규격이 폭 10.5㎝, 높이 6㎝였다. 그런데 이 당시만 해도 손님이나 식당 주인이나 밥 양이 적은 공깃밥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영업정지 처분까지 내릴 정도였다. 이후 점점 크기가 줄어들어 요즘 식당에서는 폭 10㎝, 높이 4.5~5.5㎝짜리를 쓴다고 한다.

쌀 가격과는 관련이 없을까? 작년초 쌀값이 오르자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공깃밥 가격을 1500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대세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 유통정보를 보면 작년 8월만 해도 쌀 20㎏ 소매가격이 6만1300원이었는데 올해 4월 소매가격은 5만2300원으로 최근엔 쌀값도 떨어졌다.

공깃밥 가격은 쌀 가격과는 관련이 없다는 해석도 있다. 단일 품목이라기보다는 본 메뉴에 포함된 경우가 많고, 공깃밥=1000원이라는 국룰을 깨는 건 식당 입장에서 리스크가 크다는 설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상효 연구위원
쌀 가격하고 크게 관계가 없는데요. 쌀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공깃밥 1그릇에 쌀 80g 쓸텐데 예를들어 (쌀 가격이) 20% 올라도 1000원이라는 게 1200원으로 올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공깃밥 1200원으로 올리면 외식업체나 가격체계 자체를 이상하게 바라볼 거에요. 외식업체 관점에서도 1200원으로 올리는게 200원 차이거든요. 경영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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