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스톡옵션 먹튀 막아라.. 기업 이사회가 바뀐다 [심층기획]

김준영 2022. 3. 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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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주총 시즌 주요 이슈 급부상
중대산업·시민재해 땐 개인·법인 처벌
"총수 처벌은 막자".. 기업들 '발등의 불'
지배주주 일가 대표이사 사임도 증가
책임회피 가능성.. 법취지 무색 우려
대기업 이사회 性比 개정안 8월 시행
대상기업 45%가 여성이사 보유 안해
"법률 리스크 해소 구체적 방안 필요"
경영진 스톡옵션 매각 문제도 관심사
지난 2월7일 광주 서구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 공사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매몰자 1명과 실종자 1명에 대한 구조·수색 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 뉴시스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임박한 가운데 올해 주총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및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 등에 따라 이사회 구성에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산업현장의 사고와 연관된 기업에서는 관련 이사의 연임에 반대하는 주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성 비중 확대를 통한 다양성 확보 요구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인투자자들의 약진에 따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먹튀’ 등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개선 목소리도 본격적으로 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총수 구속은 막아야… 중대재해처벌법 ‘발등의 불’

28일 재계 및 국내 의결권 자문사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3월 주총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지난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 및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개인 처벌은 물론 법인에 벌금 부과가 가능해졌다. 또 도급 및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도 동일한 의무를 부담하며 고의 혹은 중대 과실로 중대재해를 초래할 경우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중 처벌의 근거도 명확히 했다. ‘총수 처벌만은 막자’며 기업의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유다.

한국ESG연구소는 올해 주총에서 산업재해 이슈가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기업으로 포스코와 두산중공업, 포스코케미칼, 현대제철, 삼성중공업, HDC현대산업개발, 현대자동차 등을 꼽았다. 이들 기업 모두 임기 만료 예정인 사내이사가 있다. 포스코케미칼과 현대제철, 현대차는 대표이사의 임기 만료도 앞두고 있다. 산업재해나 중대재해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다면 대표이사 교체 등 이사회 구성의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한국ESG연구소 관계자는 “산업재해 관련 경영책임자 처벌 강화와 이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및 손상 등이 예상되기 때문에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이행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산재 관련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기관투자자들의 관여 활동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초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로 온 국민의 주목을 받은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 기관투자자는 물론 시민단체들까지 나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네덜란드공적연금(APG)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정관 개정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최근 제출했다. APG는 주주제안서에서 “회사가 공사현장 안전관리 및 점검, 건축물 품질관리를 이행했다면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건물 붕괴사고에 따른) 최종적인 책임은 당연히 경영진과 이사회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고 발생 당시인 1월11일 2만5750원이던 HDC현대산업개발 주가는 지난 25일 기준 1만5850원으로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여기에 증권가에서는 투자의견 하향뿐 아니라 ESG등급 하향 등이 잇따랐다. 주주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총알받이’ 내세워 처벌 회피 우려 커져

중대재해처벌법은 매우 강력한 처벌을 담았다. 하지만 처벌 대상과 양형기준 등이 불명확해 벌써부터 회피 가능성이 점쳐지고, 이미 실제 사례들까지 거론되면서 제도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여기에서도 주요 사례로 거론된다. 정몽규 HDC 회장이 사고 이후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사퇴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지주회사인 HDC 회장직과 그룹 회장직은 유지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을 직위만 내려놓았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한국지배구조연구원(KCGS) 관계자는 “처벌 대상과 양형기준 등이 불확실해 지배주주 일가의 대표이사 사임,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 선임 등을 통한 처벌 회피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법 제정의 취지와 다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신공영 태기전 부회장(대표이사 재직 18년)과 아이에스동서 권민석 사장(〃 10년)은 대표이사 사임 뒤 각각 미등기임원과 사내이사로 재직하며 중대재해처벌법 회피를 위한 꼼수라는 논란이 일었다. 요진건설산업 최은상 부회장은 2004년부터 맡아오던 대표이사를 지난해 8월 송선호 사장에게 넘겨줬다. 최 부회장은 창업주 최준명 회장의 아들로, 지배력이 여전한 만큼 방패막이를 내세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가족경영이 많은 비상장 중견건설사에서 이러한 사례가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대기업이야 대표가 구속돼도 굴러가겠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존폐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법 취지가 무색해지는 점은 명확하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지배구조현황 내용을 살펴보면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재임하는 비율은 감소하는 데 반해,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상황이 두드러진다.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주주 일가가 등기 임원이 아니라면 경영의사결정에 참여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책임도 회피할 수 있어 상당한 지배구조 리스크로 작용한다.

KGCS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는 지배주주 일가가 등기이사에서 미등기임원으로 전환한 회사에 대해 사유를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고, 미등기임원에 부여되는 구체적인 역할과 업무 범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며 “특히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큰 업종에 속한 회사의 경우 CEO(최고경영자) 처벌 리스크를 우려해 대표이사 교체를 수반하는 이사회 구성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어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이사회에 여풍(女風) 얼마나 강할까

남성 중심이던 대기업 이사회에는 ‘여풍’이 몰아칠 조짐이 보인다. 대기업(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이사회 구성원을 전원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8월5일 시행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 의결권 자문사와 기관투자자의 한국에 대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도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 책임자의 재선임 안에 반대 투표를 권고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는 올해 1월부터 적용하는 가이드라인에 법 적용 대상의 기업이 여성이사를 선임하지 않는 경우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아직 직접적인 법 위반이 없더라도 반대 투표를 권고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사상 첫 여성 의장 탄생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10일 임기가 만료된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ESG 경영 강화 흐름 속에 이번에도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외이사 중 최선임인 김선욱 전 법제처장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선임될 경우 첫 여성 의장이 된다.

LG화학은 이현주 카이스트 교수, 조화순 연세대 교수를, LG디스플레이는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를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올리며 창사 이래 처음 여성 이사를 맞이한다.

KCGS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법 적용대상 기업(167개사)의 45%(75개사)에 이사회 내 여성이사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75개사 중 DL이앤씨와 LS, 대우건설, 만도, 아시아나항공, 아이에스동서, 코웨이, 하이브, 현대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등 10개사는 오는 8월까지 임기 만료 예정인 이사가 전무한 상황이다. KCGS 관계자는 “이들 10사의 경우 여성이사로의 자연스러운 교체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사회 규모 확대, 여성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 주총 개최, 임기 중인 이사의 교체 등 법률 리스크 해소를 위한 별도의 구체적 대응방안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사전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밖에 카카오 계열사 경영진의 스톡옵션 단체 매각 사태 등과 관련한 문제가 다뤄질지도 관심사다. 대선 후보들까지 나서 제도개선을 예고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카카오페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기관투자자 의무보유확약, 신규 상장기업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 기간 제한 등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현재 무제한 허용된 장내 매도의 기간 및 한도의 제한을 약속했다.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국ESG연구소가 분석한 647개사 중 97개사가 주식매수선택권 부여안건(111건)을 발의하는 등 성과보상 체계에 변화에 바람이 일고 있다. 한국ESG연구소 관계자는 “스톡옵션은 궁극적으로 주주의 이익이 전제돼야 하는 제도”라며 “주주의 이익에 반해 무분별하게 부여되는 스톡옵션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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