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보다 당도 700배 높은 인공감미료.. 희석식 소주 생산에 한때 사용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13) 사카린
아주 적은 양만 사용해도 단맛 충분히 내고 아무리 먹어도 열량이 제로 칼로리… 설탕 대안으로 각광받기도
1980년대 발암물질 논란 일며 규제받다가 2001년 FDA서 안전성 인정… 아스파탐 등 대체감미료 개발됐지만 명맥 유지
- 천연과 인공, 안전과 위험에 대한 반면교사
단맛은 누구나 원하는 맛이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여러 가지 영양소를 섭취하지만, 세포에서 가장 요긴하게 사용하는 에너지원은 포도당이다. 즉 단맛이 나는 음식은 에너지 대사의 관점에서는 가장 효율이 높은 음식이므로, 오랜 진화를 거치면서 많은 동물이 단맛을 본능적으로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순도 높은 단맛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녹색 식물은 광합성으로 포도당과 과당 등 단당류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을 그대로 두기보다는 중합하여 녹말과 같은 다당류 형태로 효율 높게 저장하거나 셀룰로스 같은 고분자 물질을 만들어 자신의 몸을 키우는 데 사용한다.
단맛을 갈구하는 동물들을 유혹하기 위해 열매나 꽃에 약간의 단당류와 이당류를 남겨둘 뿐이다. 인간은 이런 식물로부터 더 많은 단맛을 얻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으로는 다당류를 발효시켜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당류나 이당류를 많이 함유한 식물을 찾아 개량하는 데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사탕수수와 사탕무 등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인류가 찾아낸 당의 원천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근대 화학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단맛을 내는 인공 물질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콘스탄틴 팔베르크(Constantin Fahlberg)는 1879년 타르에서 얻은 벤젠 화합물에 대해 연구하다가, 무심코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었는데 단맛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지도교수 아이라 렘센(Ira Remsen)과 함께 여기에 흥미를 느끼고 단맛의 원인을 찾아 나섰고, 그것이 ‘o-술포벤조산아미드’라는 물질임을 확인하였다. 팔베르크는 이 물질을 대량으로 합성하는 기법을 개발해 1880년대에 독일에 공장을 세우고 ‘사카린(Saccharin)’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 설탕보다 수백 배 당도가 높은 인공 물질
사카린은 천연 설탕에 비해 두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었다. 첫째, 설탕보다 수백 배(어떤 화합물 형태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200배에서 700배까지 달라진다) 단맛이 강했다. 즉 아주 적은 양만 사용해도 충분히 단맛을 낼 수 있으므로, 식품 제조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둘째, 생체 내에서 소화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된다. 즉 아무리 먹어도 실질적 열량이 0칼로리다. 20세기 초부터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비만이나 당뇨 등의 만성 성인병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필요 이상으로 당분을 섭취하는 것이 그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었다. 사카린은 이런 문제를 겪는 이들을 위한 좋은 대안으로 각광 받았다.
한국에서도 광복 후 사카린이 대량 수입되어 식품 산업에 널리 이용되었다. 생체 내에서 대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카린의 특성이 한국에서는 독특한 쓰임새를 낳기도 했다. 김치를 담글 때 설탕을 첨가하면 미생물의 먹이가 늘어나므로 발효가 지나치게 활발해지고, 결국 김치가 과숙하여 일찍 물러져 버린다. 하지만 사카린(흔히 ‘뉴슈가’ 등의 상품명으로 판매되었다)을 첨가하면 그럴 걱정 없이 단맛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요즘도 물김치 등에는 뉴슈가를 살짝 더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현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신상품 중 하나인 희석식 소주에도 사카린이 애용되었다. 희석식 소주는 대량의 고농도 주정을 만든 뒤 물과 감미료를 섞어 적당한 알코올 도수와 맛을 내어 만든다. 따라서 적은 양으로도 단맛을 낼 수 있는 사카린은 희석식 소주를 대량생산하는 데 안성맞춤인 원료였다. 대한민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발맞추어 희석식 소주 시장이 확대되었고, 사카린의 수요도 그만큼 늘어났다. 자연히 많은 기업이 사카린 또는 그 원료를 수입하기를 원했다. 수입하면 곧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밀수도 서슴지 않았다. 1966년, 삼성 재벌의 계열사 한국비료(한비)에서 사카린 원료 2000여 포대를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들여오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밀수 전후 과정에서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한비 밀수 사건’은 1960년대 후반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스캔들이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 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였고, 국회의원 김두한은 국회 질의 석상에서 ‘국민의 사카린’이라고 일갈하며 분뇨를 뿌리기도 했다.
- 발암물질이라는 비판?
하지만 한국에서 사카린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안전성 논란 때문이었다. 1977년 캐나다에서 쥐에게 사카린을 집중 투여한 결과 일부 쥐에서 방광암이 발견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사카린의 유해성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사카린의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사카린을 첨가한 식품에는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논란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한국에서도 사카린 규제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국내 언론이 북미의 사카린 논란을 소개하자, 보건사회부(당시)는 1990년과 1992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사카린의 사용 범위를 대폭 축소하였다. 아이스크림, 껌, 과자류, 간장 등 거의 모든 제품에 사카린의 사용을 금지하고 절임 식품류, 청량음료, 어육가공품 및 특수영양식품 등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던 회사들도 앞다투어 사카린을 빼기 시작했다. 1989년, 당시 업계 2위 보해소주와 3위 금복주 등이 경쟁사보다 먼저 사카린을 뺐다며 ‘무사카린 소주’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 확대를 시도했다. 소주의 단맛은 사카린 대신 액상과당과 아스파탐(1965년 개발된 인공감미료) 등이 책임지게 되었다. 사카린 논란에 소비자들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주당들이 소주병을 따면 윗부분의 술을 조금씩 흘려 버리곤 하던 버릇도,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사카린 성분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었다.
- 때늦은 복권과 현재
사카린은 2000년대 들어 발암물질이라는 누명을 벗게 되었다. 1977년의 실험은 쥐에게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수준으로 사카린을 과다 투여하였으니 설계가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라 제기되었고, 쥐와 인간의 사카린 대사 과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북미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후속 연구가 이루어진 결과 ‘정상적인 농도와 사용 방법’으로는 인체에 해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따라 2001년에는 FDA가 사카린을 안전한 물질로 인정했으며, 2010년에는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사카린을 유해물질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한국에서도 사카린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졌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사카린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상식으로 받아들인 소비자들은 쉽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식품 제조업체들도 혹시 일어날 논란을 무릅쓰고 굳이 사카린을 사용할 강력한 동기를 찾지 못했다.
사카린이 규제에 묶여 있던 사이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수크랄로스, 당알코올, 스테비오사이드 등 여러 가지 대체감미료들이 개발되었고, 이들은 시장에서 각자의 물성에 따라 영역을 굳혀 왔다. 사카린은 제과, 음료, 발효식품 등 확실한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서는 다시 활발히 쓰이고 있으나, 그 밖의 분야에서는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내준 셈이다.
이는 글루탐산나트륨(MSG)의 궤적과도 비교된다. MSG도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감칠맛을 더해줄 수 있는 뚜렷한 대체재가 없다 보니 MSG를 제조하고 사용하는 기업들은 대체재를 찾는 것보다는 안전성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의 사례에서 보이듯, 사카린은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었고, 오늘날에는 전성기에 비해 감미료 시장에서 작은 지분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사카린은, 인공감미료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역사적 소임을 다 하고 이제는 여러 인공감미료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19세기 후반 이후 속속 발명되었던 ‘천연물의 과학적 대체재’라는 시대적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호 전북대 교수
[ 용어설명 ] 당도 측정
감미료들의 상대척도는 인간의 감각으로 측정하여 결정한다. 여러 농도로 감미료의 묽은 용액을 만든 뒤, ‘실험 참여자들의 50% 이상이 맛의 변화를 느끼는 최저 농도’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을 같은 맛을 내는 설탕 용액의 농도와 비교하면 이 감미료가 설탕에 비해 몇 배로 단맛을 내는지 추산할 수 있다. 설탕의 당도를 100으로 잡으면 포도당은 약 75, 과당은 약 150 정도의 당도를 낸다. 하지만 인공감미료는 압도적으로 당도가 높아서, 이 지수가 수만 대로 올라간다. 흔히 쓰는 “사카린은 달기가 설탕의 300배”, “아스파탐은 200배” 같은 말은 이렇게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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