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부산스러운 음악
10여 년 전, 서울 홍대 앞 카페에서 ‘남쪽 끝 섬’, ‘장사하자’ 같은 히트 곡을 남긴 밴드 ‘하찌와 TJ’ 이후 다양한 활동을 하던 싱어 송 라이터 조태준을 만나 부산 로컬 음악에 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언젠간 다시 고향 부산으로 돌아가 고향 친구들과 함께 바다 보며 즐겁게 음악 하며 사는 것이 목표”라고 조태준은 말했다. “시카고엔 시카고 블루스, LA엔 LA메탈이 있듯 부산이 가진 특유의 그루브가 진하게 느껴지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2년 전, 조태준은 돌연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펑키한 리듬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가득 실은 랩을 선보인 ‘부산그루브’라는 싱글을 발표한 후, 동네 펍에서 함께 즉흥 연주를 즐기던 외국인 친구들과 ‘조태준과 부산그루브’라는 밴드를 결성해 매달 정기 공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뉴질랜드, 미국, 불가리아, 한국 총 4국 멤버들이 모인 글로벌 밴드다.
지난 주말, 부산 경성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조태준과 부산그루브’ 공연을 지켜보며 10여 년 전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조태준이 그저 인터뷰 취지에 맞춰 성의껏 대답한 거라 여겼는데, 결국 조태준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조태준의 익숙한 곡들은 물론, 록과 보사노바, 레게, 댄스, 트로트까지 다소 맥락 없지만, 연주자와 관객들 모두 그 ‘맥락 없음’을 신나게 즐기며 만끽했다. 말 그대로 부산스러운 무대였다. 혹은 새로운 ‘부산스러움’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향과 피부색이 달라도 부산에 모여 사는 그들은 모두 부산 사람이다. 지금도 많은 지역의 청년들이 음악을 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나고 자란 고향과 부모님, 친구들을 등지고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모여 사는, 그래서 물리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거의 불가능한 서울로 몰려든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한 조태준은 스스로를 굳이 ‘로컬 가수’라 소개했다. 어쩐지 자부심이 가득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쓸데없는 지역감정이 아니다. 음악 역시 다채로운 지역색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의 문화를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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