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중계 캐스터] ④ "KBL 간판" SPOTV 이준혁

최설 2022. 2. 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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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L 주요 행사를 전담으로 맡으며 간판 캐스터로 우뚝 선 편안한 목소리의 소유자. 이준혁(31) 캐스터. 대학 시절부터 마이크를 잡은 덕에 안정적인 기본기를 바탕으로 출중한 실력이 강점인 그다.

이준혁 씨는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책임감이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같이 리그 발전과 인기 상승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선수들마저 책임 의식에 똘똘 뭉친 한국농구가 언젠가 잘 될 거라 굳게 믿는 이준혁 씨. 올해 25주년을 맞은 KBL을 축하하며 향후 40주년, 50주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TV로 스포츠 중계 보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흥미가 생겼다. 다만 (내가) 운동신경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요새는 거의 안 한다(웃음).

Q.대학 시절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책을) 많이 읽어서 도서관을 자주 다니곤 했다. 나름 문학도였다. 국어사전도 만들고 싶었고 ‘통사론’에 관심이 많아 우리말 문장에 관해 연구, 분석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Q.지금은 전혀 다른 직업을 선택했는데?
사실. 지금 이 일이 (전공과)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기 상황을 보고 생각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에 어느 정도 관련은 있는 것 같다. 다만 대학 진학 후 1년 정도 공부를 해보니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길이 쉽지 않은 길이란 걸 깨달았다(웃음). 이후 많은 고민을 통해 지금의 내 길을 찾았다.

Q.그러면서 마이크를 잡았다고?
연세대 재학 시절, 우연히 학교 내 교육방송국 ’YBS‘에 들어갔다. 거기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 일찌감치 학업과 멀리하고 있던 터라 어느 날 한 친구가 권유했다. 목소리가 꽤 괜찮은 것 같으니 한번 지원해보라고. 나도 처음에는 재밌을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지원해봤고 운 좋게 뽑혔다.

Q.이후 아나운서 활동이 스포츠 캐스터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나?
그렇다. 방송국에 처음 들어가서 초반 선배들한테 방송의 기초와 목소리 내는 법을 배웠고 이후 점심, 저녁 시간에 캠퍼스에 틀어지는 교내 방송을 진행했다. 또 학교 축제 때는 사회도 봤다. 그러면서 연고전 5개 종목 중계를 맡게 됐는데 그때 스포츠 중계 매력에 푹 빠졌다. 진로를 선택하는 데 아주 결정적이었다.

Q.농구 중계는 어땠나?
사실 지금도 인상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 당시 이종현이 고려대 3학년 시절이었는데 정말 막강했다. 아무도 이기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연세대에는 최준용, 허훈, 안영준이 있었다. 또 경기장은 실내체육관이어서 앰프와 학생들 응원 소리가 뒤섞여 열기가 대단했다. 그렇게 엄청난 현장 분위기를 느껴가면서 중계를 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Q.지금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맞다(웃음). 후배들이 불러만 준다면 (연고전 해설을) 또 해보고 싶다. 당시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볼만한 중계 퀄리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또 고려대에서 KBS 최승돈 아나운서를 초대했었다. 클래스가 다른 멘트를 하시는데 빵빵 터졌다. 기회만 된다면 (나도) 과거보다는 좀 더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목소리는 어릴 때부터 좋았나?
내 목소리가 약간 중저음인데, 좋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아버지께서 좋은 목소리를 지니셨다. 작년까지 교사로 재직하시면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셨다.

Q.SPOTV 입사 전, XTM에서 야구 중계 더빙을 했다고?
그때가 대학 4학년 때였다. 2014년. 당시 야구 중계를 했던 XTM에서 더빙할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학업과 병행했다. 덕분에 공부를 더 못하게 됐다. 졸업을 힘들게 했다(웃음). 그래도 일찍부터 방송 경험을 하게 됐고 그때 만난 동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어서 재밌게 일했다.

Q.이후 2015년, 바로 SPOTV에 입사하게 됐다.
사실. 그 중간 XTM이 야구 중계를 안 하게 되면서 잠시 공백기가 있었다. 그 기간 학원도 다니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것들을 보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중에 어떤 종목을 중계하게 될지 모르기에 준비 차원에서 종목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스포츠 중계를 봤다. 거의 하루에 10시간 이상 스포츠채널만 봤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그렇게 열심히 봤던 게 도움이 됐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가끔 조언해줄 때 일단 많이 보라고 말해준다.

Q.카메라 앞에 서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을 것 같은데?
남들 앞에서 보이고 말하는 일이기에 평소 나하고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철판을 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성격은 말수도 없고 되게 조용조용한 편이지만,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하는 시간만큼은 프로로서 사람들을 다 휘어잡을 수 있는 그런 면모가 필요하겠다고 싶었다.

Q.입사 후 아쉬움이 컸다고?
농구 중계에 대한 갈망이 커서 그랬다. 처음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선호하는 종목을 말하라고 할 때 (나는) 농구를 선택했다. 그래서 꾸준히 준비하면서 KBL 2016-2017시즌부터 중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 방송사에서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그것도 독점으로 무려 5년 동안. 정말 아쉬움이 컸다. 나랑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아쉬움 때문에 몇 년간 KBL을 끊었었다(웃음).

Q.그러고서 2019-2020시즌,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KBL 중계를 하게 됐다.
언젠가 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다. 또 기쁨과 동시에 되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많이 챙겨보지 않아서 그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와 노력을 더 많이 했다.

Q.첫 시즌에 대한 기억은?
재밌어지려니까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됐다. 아쉬웠다. 특히 농구 중계가 진입장벽이 진짜 높은데 적응할만하니까 끝나 버렸다. 처음에는 코트도 봐야 하고 모니터도 봐야 하고 심판들, 본부석, 전광판, 벤치까지 다 신경 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판 콜도 놓치고 득점 장면도 놓치는 등 장난 아니었다(웃음). 점점 보이기 시작했지만, 시즌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Q.그전까지 경력자였음에도 어려웠나?
완전히 달랐다. 타 종목과 비교했을 때 경기가 좀더 숨 쉴 틈 없이 전개되고 중계석도 훨씬 더 가까워 당황했다. 다른 종목들은 거리를 두고 관망하면서 보는 느낌이라면 농구는 바로 같은 높이에서 보는 거라 적응이 필요했다.

Q.첫 시즌 중계를 함께한 김동우 전 해설위원(현 국가대표 코치)을 잊지 못한다고?
KBL 첫 중계를 김동우 전 위원과 했다. 김 위원도 당시 중계가 처음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즌 김 위원과 함께 호흡을 자주 맞췄다. 당시 시즌 개막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대타로 들어온 케이스라 해설에 관한 생각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그래서 이후 중계 공부 연습과 노력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결국 나중에는 조금 편해져서 경기 중에 나와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가 됐다.

Q.여전히 농구 규칙서를 옆에 두고 중계를 하는지?
첫 시즌부터 이어져 온 습관이다. 사실 중계 도중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없으면 불안한 느낌이 든다. 아직도 옆에 두고 있다(웃음).

Q.또 옆에 있어야 하는 게 있다면?
실시간 기록 프로그램이 꼭 있어야 한다. 매 경기 기록에 관한 것들을 놓칠까 봐 괜히 압박감에 시달린다. 한번은 허훈 선수 경기를 중계한 적 있는데 그 경기서 20점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쿼터에만 어시스트를 7개나 기록해서 그런지 대기록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면서 계속 카운팅을 했다. 그런 중요한 기록이 나왔는데 캐스터가 놓치면 대단함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챙기려고 노력한다. 지금도 선수들이 이른 시간 리바운드 4개, 어시스트 3개로 활약하면 혹시? 라는 생각을 한다.

Q.평소 소식 업데이트는?
일과 여과 구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쉴 때도 웬만한 경기는 다 보려 하고 있다. 경기가 많은 주말에는 최소한 하이라이트라도 챙겨보기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이게 다 준비하는 과정이라 어쩔 수 없다. 계속 챙겨보는 수밖에 없다.

Q.NBA 중계도 하고 있는데?
NBA 중계를 더 오래 했다. 2016년부터 해왔으니 꽤 됐다. NBA 중계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오히려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간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짧게는 두 시간 반, 길게는 세 시간이 걸리지만 말이다. 워낙에 이야깃거리도 많고 선수들이 화려해서 볼거리가 많아 그런 것 같다.

Q.4대 구기종목 중계를 다 해봤는데, 종목별 특징이 있다면?
농구는 아까 말한 것처럼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고 속도감을 따라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야구는 긴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 내공이 필요하고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배구는 리듬감이 있는 종목이라 서브를 받고 올리고 스파이크하기까지 계속 그 리듬감을 살려야 나가야 한다. 마지막 축구는 사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종목이다(웃음). 선수가 너무 많다. 필드 위에 무려 22명의 선수가 있다. 이름 부르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서인지 나는 축구 캐스터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Q.현장 중계 당일 루틴이 따로 있나?
나름의 루틴이 있긴 하다. 보통 경기 시작 두 시간 반 전에 체육관에 도착한다. 그 시간에 가서 딱히 할 거는 없지만, 불안하니까 미리 도착해두는 편이다. 그러고서 밥도 먹고 위원님이랑 중계 방향에 대해서 상의한 다음, 선수들이 나오면 당일 특이사항에 대해서 취재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 시작 15분 전에 무조건 화장실을 간다. 이게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Q.꼭 경기 시작 15분 전에 화장실을 가는 이유는?
예전에 한번 테니스 중계를 하러 간 적 있는데 2경기 연속 중계하는 날이었다. 테니스 경기도 꽤 긴 편에 속해서 첫 번째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참았던 화장실을 갔다. 근데 그날따라 화장실이 꽤 멀리 있더라. 그래서 두 번째 경기 시작에 맞춰 돌아오지 못했는데 당시 신입이라 PD님한테 굉장히 혼났다(웃음). 그 트라우마로 이후부터 경기 시작 전 한 번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는 웬만하면 경기 끝날 때까지 잘 움직이질 않는다. 농구는 하프타임 때도, 야구는 9이닝 다 끝날 때까지 안 움직인다. 이제 몸도 적응을 마쳤다.

Q.장거리 출장도 많아 몸 관리도 만만치 않을 텐데?
(캐스터란 직업이) 사실 몸도 대단히 힘든 직업이다. 가만히 앉아서 말하는 거라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중계를 한번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그래도 아직은 젊어서 괜찮은 것 같다. 쉴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 그리고 먹는 걸 잘 먹으려 한다. 취미활동이 마땅히 없어서 누워서 쉬는 게 최고다.

Q.목 관리도 따로 하는지?
그래도 타고나길 건강하게 타고난 것 같아서 특별히 관리하는 것은 없다. 목이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잠 잘 자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그리고 목을 풀기 위한 나만의 방법으로 출근길에 운전하면서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그러면 목이 다 풀린다.

Q.지침이 필요할 때마다 보는 영상이 있다고?
아직도 노트북 바탕화면에 저장해놓고 주기적으로 보는 중계 영상이 하나 있다. 내가 중계했던 영상은 아니고 선배 한명재 캐스터가 중계했던 경기다. 당시 같이 호흡을 맞춘 해설위원이 방송이 처음이고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던 터라 한명재 캐스터가 그걸 노련하게 끌고 가는 모습이 되게 인상적이고 감명적이다. 프로라면 막중한 책임이 있구나라는 것을 매번 볼 때마다 느낀다. 약간 고민이 되거나 지침이 필요할 때 틀어서 본다. 

 

Q.추승균 위원을 해설위원으로 데뷔시켰다고?
내가 데뷔시키지는 않았다(웃음). 다만 회사 내부에서 새로운 해설위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추천해드리긴 했다. 지도자로서의 경력도 출중하시고 마침 유튜브에서 인터뷰하신 영상을 보게 됐는데 해설자로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 위원님 첫 경기도 나랑 같이했다. 이쯤 되면 데뷔 경기 전문 캐스터다.
Q.현역 선수 가운데서도 은퇴 후 해설을 하면 잘하겠다고 생각이 드는 선수들이 있나?
지금 당장은 딱 두 명이 떠오른다. 김선형(서울 SK)과 이대성(고양 오리온). 두 선수 모두 말을 무척 잘하고 이대성 선수의 경우 예전에 NBA 객원 해설을 한 것을 봤는데 너무 잘하더라.

Q.최근 KBL의 주요 굵직굵직한 행사를 대부분 진행했다. 리그 간판 캐스터로 입지를 다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웃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주변 도움이 컸다. 미디어데이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더라도 각 구단 선수들과 감독들이 참여를 잘해준다. 그냥 나는 잘 묻어갔다. 다들 적극적으로 답변해주는 덕분에 편하게 진행했다. 

 

Q.올 시즌 올스타전도 중계를 맡았다.
재작년 인천서 열린 올스타전 중계에 이어 두 번째였다. (나도) 전날에 내려가 선수들이 리허설하는 것을 거의 다 지켜봤다. 그러고서 숙소에 돌아와 선수들 한 명 한 명 어떻게 소개할지 새벽까지 고민하고 멘트를 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 선수들한테 또 감동을 받았다. 스타 선수들 모두 너나 할 거 없이 리그 발전에 큰 사명감을 가지고 이번 올스타전에 임했다. 몸은 피곤해 보였지만, 언론 매체나 협회가 요청하는 모든 요구 사항에 다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유로 리그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잘 될 거라고 믿는다.

Q.9년 차 베테랑 캐스터가 됐다.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감이 커진다고?
(나도) 농구계의 한 일원으로서 KBL이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능력과는 별개로 매년 책임감이 더욱 커진다. 캐스터는 캐스터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현장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거다. 선수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중계하는 만큼 멋진 장면이 나오면 크게 환호하고 선수들의 땀과 열정을 제대로 포장해서 팬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Q.본인의 최대 강점은?
뭘 하지 않으려는 것? 꾸며낼 생각 없이 스포츠 경기 자체에서 나오는 감동과 환희에 감정을 더 극대화해줄 수 있는 한마디를 던져주는 점이다. 이는 조미료 한 스푼 정도의 느낌이다. 또 중계를 하면서 스토리와 관계성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주고자 한다. 예를 들면 누구누구가 학창 시절 동기였고 같은 시기 상무를 나왔는지. 농구팬들의 ‘덕심’을 자극할 수 있는 멘트를 꼭 넣어주고자 한다.

Q.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항상 마지막 수훈선수 인터뷰를 잘 마치고 나서야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지 못한 날에는 중계를 아무리 잘했어도 퇴근길이 찝찝하다. 특히 자주 인터뷰를 하는 선수가 아닐 때 더욱 그런 마음이 커진다. 그 선수에게는 그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고 영광스러울 테니까 선수와 팬들한테 모두 기억에 남을 만한 인터뷰를 만들어주려 한다. 사실 선수를 울렸을 때 제일 뿌듯하다.

Q.선수를 울린 적도 있나?
지난 시즌으로 기억하는데 (창원) LG 한상혁 선수가 군 전역 후 오랜만에 활약을 해서 인터뷰 도중 울었다. 그럴 때마다 퇴근길이 즐겁다.

Q.원주 DB 정준원 선수에게는 항상 고맙다고?
같은 대학 08학번 동기다. 사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초창기 기댈 곳도 없던 내게 동기라고 중계석까지 직접 찾아와 많이 챙겨주고 제일 반갑게 인사해줬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고 올 시즌 활약도 좋지만, 앞으로 더욱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후배 캐스터나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다면?
종종 질문을 받는다. 사실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준다. 아직은 그 나이에 더 경험해야 할 것들이 많고 중요한 것들이 많기에 현실적인 조언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대학생 이상이 되면 현실적으로 말해준다. 어쨌든 캐스터한테는 목소리가 무기이고 목소리로 승부를 봐야 하기에 기본기를 먼저 갖추라고 말한다.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목소리가 먼저다. 힘들겠지만 발성법부터 천천히 고치면서 힘겨운 트레이닝을 거쳐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웃음).

Q.인생 목표는?
스포츠 팬으로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올 시즌 KBL 25주년을 맞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힘닿는 데까지 일하면서 40주년 또는 50주년까지 마이크를 잡고 싶다. 50주년까지는 조금 욕심인 것 같으니 40주년까지는 꼭 해보고 싶다(웃음). 동시에 항상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사람으로서 정신적으로 매사 젊게 살고 싶다. ‘고인물’은 싫다(웃음).

Q.팬들에게 한마디.
늘 부족하지만, 항상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중계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사진_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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