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2) 비봉의 순수비 복제품으로 바뀌고 경관도 상전벽해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입력 2022. 1.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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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경향신문]

셀수스협동조합(조성봉 사진갤러리) 제공

북한산에는 비봉(碑峰)이 있다. 정상에 진흥왕 순수비라는 비석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제24대 왕인 진흥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한 인물로 유명한데, 자신이 넓힌 땅을 직접 밟아보고 그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다. ‘순수(巡狩)’는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고 돌아다니는 일을 뜻한다. 진흥왕 순수비는 북한산 외에도 경남 창녕, 그리고 함남 마운령과 황초령에서도 발견되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북한산 순수비는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것의 기념물이다. 진흥왕은 553년에 백제 땅이었던 한강 하류를 빼앗았으며, 신라는 이를 기반으로 100여년 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북한산에 비석을 세운 이유는 새로운 영토, 특히 한강 하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봉은 북한산 줄기의 서남쪽에 위치해 한강 하류는 물론이고, 맑은 날에는 서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순수비에는 총탄 자국이 많다. 6·25전쟁 때 감제고지인 비봉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아닐까?

비봉은 암벽으로 이루어져 웬만한 담력으로는 오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까지 순수비는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으로 알려져 있었다. 순수비의 진가를 판별한 이는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다. 1816년 김정희는 직접 비봉에 올라가 순수비임을 확인하고 세상에 알렸다. 김정희는 이듬해 한 번 더 이곳을 찾았으며, 자신이 감정한 내용을 순수비 옆면에 새겼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심각한 문화재 훼손이라 할 수 있다.

1971년(왼쪽)과 2021년(오른쪽)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바로 진품과 복제품의 차이다. 국보 제3호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은 순수비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여, 건립된 지 1400여년 만인 1972년 산 아래로 옮겼다. 현재 순수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사실 더 큰 차이는 비봉에서 조망하는 경관의 변화이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서울 서남부와 부천시 일대이다. 논밭만 펼쳐져 있던 곳이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였다. 하나도 보이지 않던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여러 개 놓였다. 상전벽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5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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