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중국과 원유 대금 위안화 결제 허용 논의 중"..달러 패권에 균열 생기나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2022. 3. 1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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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원유 저장 탱크.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 일부에 대해 중국 화폐인 위안화로 결제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중국과 활발히 논의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모든 원유 수출 대금을 미국 달러화로만 받고 있는 사우디가 사우디산 원유의 25%를 사들이는 중국에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 경우 국제 석유시장에서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사우디와 중국 사이의 위안화 표시 원유 계약 논의가 지난 6년 전 처음 시작된 이후 지지부진했으나 올해 들어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사우디의 불만이 커지면서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는 미국이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데다, 바이든 행정부가 역내 최대 맞수인 이란과의 핵협상 복원을 추진하면서 불만이 커졌다. 특히 미국의 안보 공약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는 지난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갑작스럽게 완전 철군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중국은 사우디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원하고 핵 프로그램에 관한 조언을 제공해 왔으며,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큰 관심을 쏟는 네옴 신도시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등 공을 들여 왔다. 사우디는 올 하반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초청한 상태다.

중국은 사우디에서 하루 평균 176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해 사우디의 최대 고객으로 올라섰다. 중국은 하루 약 620만배럴에 달하는 사우디 원유 수출 물량의 25%를 수입하고 있다. 이 물량이 위안화로 거래될 경우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가 강화되면서 전세계 원유 거래의 80%를 차지해온 이른바 ‘페트로달러’의 지위에는 흠집이 생긴다. 사우디는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의 위안화 결제뿐 아니라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통해 일명 ‘페트로위안’으로 불리는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거래 허용도 고려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사우디는 중동 최대의 미국 동맹국이다. 전통적으로 양국은 안보와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교환해왔다. 사우디는 1974년부터 자국이 판매하는 모든 원유 대금을 달러화로만 받고 있고, 사우디 화폐인 사우디 리얄화도 달러화에 연동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수압파쇄법(프래킹)을 이용해 셰일가스를 생산하면서 세계 1위 석유 수출국으로 발돋움했고, 1990년대 초 하루 200만배럴에 달했던 미국의 사우디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말 기준 하루 50만배럴로 축소됐다. 게다가 2018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 암살을 지시한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지목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전화통화를 할 때 배석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당국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역학관계가 극적으로 변했다”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변했고, 중국은 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사우디에 다양하고 수익성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면 중국에 대한 사우디의 영향력을 제고하고 중국의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가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의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 경우 수십년 동안 달러가 기축통화로 군림해온 달러 중심 금융 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사우디에 이어 다른 산유국들도 결제 통화의 다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 소재 국제안보분석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로 달러화 약화에 관한 저서를 낸 갤 루프트는 “원유시장, 더 나아가 전체 글로벌 원자재 시장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보장하는 보험 증권”이라면서 “벽에서 벽돌이 빠지면 벽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가 실제로 중국 수출 원유의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백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 수출 결제를 달러화에서 위안화로 전환할 경우 사우디 경제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빈살만 왕세자 참모들 사이에서도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달러화에 비해 위안화가 안정성과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원유 수출 계약을 위안화로 할 경우 사우디 정부의 재정 전망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미국 고위 당국자는 과거에도 사우디가 미국과 긴장이 높아지면 비슷한 아이디어를 꺼냈다면서 사우디가 위안화를 받고 원유를 팔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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