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Report] 충암고등학교 윤영철
정상탈환의 주역
좌완투수에게 흔히들 일컫는, 야구를 좋아한다면 귀가 익도록 들었을 말이 있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비록 불같은 강속구를 뽐내는 유형은 아니지만, 여기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모셔와야 할 좌완 루키가 나타났다.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을 기반으로 칼 같은 제구를 선보이는 그의 매력은 그 어떤 파이어볼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를 상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이더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렵다는 표정을 짓거나, 생각지 못한 공의 궤적을 보고 탄식을 뿜어내거나. 상대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고 한숨이 짙어질수록 윤영철의 공은 위력을 더한다.
윤영철
출생 2004년 4월 20일 신체조건 189cm 87kg 출신교 충암중-충암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2021년 성적 21경기 78.2이닝 평균자책점 1.82 9승 1패 95탈삼진 13사사구 53피안타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erang Lee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2004년생 좌완 투수는 올해 처음 만나네요.
매번 보기만 하던 잡지였는데 나오게 돼서 영광입니다. 올해 출연하는 좌완 중 첫 번째라니 더 감사해요.
충암고 선수도 되게 오랜만에 만나요. 마지막이 104호(2019년 12월 호)에서 만난 LG 트윈스 강효종이에요.
재작년에 효종이 형이 인터뷰도 하고 <더그아웃 매거진> 유튜브 ‘아마존’ 코너 촬영도 했잖아요. 도입부에 저도 완전 짧게 나와요. 당시엔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어서 기뻐요.
#31년 만의 왕좌
충암고 야구부의 유구한 역사는 1970년에 시작됐다. 충암학원의 지원 아래 고교야구 무대에 이름을 올린 그들은 197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며 명가의 등장을 알렸고, 시간이 흘러 1990년 첫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황금사자기와 더불어 대통령배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2관왕을 달성한 것이다. 그 후 90년대 말의 암흑기와 재건을 거치면서도 몇 차례 전국대회 왕좌에 오르며 저력을 떨친 충암고. 유독 대통령배와는 좀처럼 다시 연을 맺지 못했으나, 지난해 31년 만에 비로소 역사를 다시 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엔 2학년 윤영철이 있었다.
우선 전국대회 2관왕을 축하해요. 제55회 대통령배 대회 얘기부터 나눠볼게요. 8월 23일 라온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 3회에 등판했어요.
마운드에 오르기 전 ‘다 이길 수 있다’라는 주문을 외고 올라갔어요.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니까요. (결승전의 부담은 없었나요?) 어차피 똑같은 한 게임이니까요.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던지려고 했어요.
등판하자마자 라온고 차호찬이 홈런을 때려냈어요.
솔직히 당황했는데, 마운드에 오른 첫 이닝이었잖아요. 바로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임했어요. (흔들릴 법도 한데 차분하게 투구를 이어갔어요.) 맞고 나서 제 실투임을 스스로 빠르게 인정했어요. 다음 상대부터는 더 정교하게 던지자는 각오로 풀어가다 보니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타 인터뷰에서 차호찬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라고 했어요.
강한 스윙을 하는 타자예요. 잘 맞는다면 항상 큰 포물선을 그리거든요. 홈런을 맞은 결승전은 라온고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어요. 첫 게임 때도 본인의 스윙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잘못하면 크게 한 방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7, 8회 모두 삼자범퇴를 기록했어요. 승리와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나요?
네. 8회쯤 되니까 무조건 이기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그래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아웃 카운트를 하나씩 잡을 때마다 들뜨기도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었죠. 긴장은 놓치지 않되 부담 없이 공을 던졌어요.
9회 말 투구 수 제한으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남겨두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어요.
제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웠죠. 어쩔 수 없지만 우승했잖아요. (하하)
본인의 첫 우승이자 모교에는 31년 만의 대통령배 왕좌 탈환이었어요.
전국대회에서 챔피언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쉽지 않은 일을 동료들과 해내서 너무 기뻤어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벅차고 행복해요.
#2021년은 충암의 해
31년 만의 우승으로 기세를 탄 충암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도전은 2014년 결승전에서 좌절을 맛봤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코 쉬운 대진은 아니었다. 협회장기 1위 팀 마산고전과 2021시즌 숙명의 상대 라온고, 그리고 서울권의 명실상부한 강호 덕수고까지 맞닥뜨렸다. 그러나 거칠 것이 없던 대통령배 챔피언은 차례차례 경쟁자들을 무릎 꿇렸고, 결승전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믿음으로 가득 찬 더그아웃은 상대의 기세를 누르기 충분했고 확신에 가득 찬 플레이로 정상을 향해 점점 다가갔다. 마침내 창단 이래 최초로 청룡기에서도 깃발을 펄럭이며 2관왕을 달성했다.
대통령배에서 4경기 3승 18.2이닝 14탈삼진을 기록했어요. 우승과 함께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는데요.
정상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상까지 받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사실 수상 욕심이 아주 조금 있었거든요. 형들이 있어서 기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막상 제가 받으니까 좋더라고요.
대통령배가 끝난 후 곧바로 청룡기가 시작됐어요. 어떤 자세로 임했나요?
대통령배 때는 동료들 모두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뭉쳤어요. 그래서인지 더그아웃의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고, 어떻게든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죠. 우승을 한 번 하니까 청룡기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두 대회 중 청룡기에서의 성적이 더 눈에 띄어요. 4경기 12.2이닝 동안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어요. 잘 풀린 경기를 꼽자면요?
원주고랑 만났을 때요. 어렵게 이기긴 했지만 제가 의도한 피칭을 해서 만족스러워요. (가장 만족스러운 게임이었나요?) 아뇨. 만족스러웠던 건 아무래도 덕수고와 맞붙었을 때예요. 덕수고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라이벌 의식 비슷한 게 있어요. 이겨서 좋았죠.
마지막 군산상고와의 결승전에서도 등판했어요. 이때도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는데요.
7회 1아웃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이닝을 마무리 짓고 나서 되겠다는 직감이 왔죠. 우리 학교가 다른 전국대회에선 성과를 많이 냈는데, 유독 청룡기와 인연이 없었어요. 청룡기 첫 우승이라는 타이틀에 제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2021년은 어떤 해였어요?
제게 2021년은 정말로 행복한 한 해였어요. 원하는 대로 잘 풀렸고 전국대회 2관왕도 했고요. 다 가졌어요.
#마운드 위의 지휘자
운영철의 글러브 안은 누구보다 분주하다. ‘어떤 공을 구사할까?’ 요리조리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저학년 때부터 수많은 등판 경험을 쌓아온 그의 머릿속엔 매 순간의 대처 매뉴얼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떻게 수 싸움을 할지, 허를 찌르는 공은 무엇일지, 뭘 던지는 게 가장 승산이 클지. 그가 악보를 선택하면 필드 위의 다른 8명의 선수는 자세를 가다듬고 연주를 준비한다. 뒤이어 마운드 위의 지휘자가 공을 던지며 악장이 시작된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등판해왔어요. 2학년 땐 결승전에 서기도 했고요.
감독님께서 제구가 좋은 투수 위주로 등판시켜주세요. 제구 면에서 합격점을 받아 자주 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마운드에 오르면 항상 믿어주시고요.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한다고 해요. 타자를 휘어잡은 본인의 구종을 하나씩 소개해볼까요?
체인지업이 제일 자신 있어요. 제 체인지업은 우타자를 상대할 때 몸의 바깥쪽으로 떨어지거든요. 직구랑 타격 타이밍이 달라서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고요. 슬라이더는 빠르게 꺾여서 땅볼 유도에 효과적이에요. 자주 듣는 칭찬 중 하나가 슬라이더 각도거든요. (웃음) 그리고 몸쪽으로 과감하게 들어갈 수 있는 패스트볼까지 이 세 가지가 주 무기예요. 그 외에 커브랑 투심도 간간이 활용하고, 커터도 연습하는 중입니다.
특히 제구력이 눈에 띄어요. 제구를 잡기 위해 꾸준히 해온 노력이 있나요?
언제나 포수의 미트를 보고 던지는 걸 최우선으로 두고 노력해요. 만약 공이 의도한 대로 미트를 향하지 않는다면, 일부러 정반대 방향을 노리고 던져서 가능한 원하는 지점에 꽂는 식으로 거리를 좁혀나가요.
뛰어난 운영 능력으로 극찬을 받고 있어요. 지난 호에서 덕수고 심준석도 탐나는 능력이라고 했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투수를 했어요. 지금까지 많은 타자를 상대해 본 게 큰 도움이 됐죠. 중학생 때까지는 투타 겸업을 했는데, 타석에서의 경험도 투수로서 도움이 되고 있어요. 타자가 ‘이 순간에는 어떤 공이 오겠구나’라는 예상을 하잖아요. 그럼 저는 역으로 다른 공을 던지곤 해요. (심리 싸움을 상당히 잘하네요.) 정신력이 흔들려서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어요.
스스로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중학생 때도 여러 번 개인 수상을 했잖아요.
한 적은 있죠. (하하) 중학교 3학년 땐 세계청소년야구대회 대표팀에 발탁됐어요. 3위로 마무리해서 아쉬웠지만, 태극 마크를 달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어요.
서울고 전다빈과 라이벌로 언급되고 있어요. 심준석도 라이벌에 가장 가깝다고 말했고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아무래도 같은 왼손 투수인 전다빈이요. (전다빈과 친분이 있다고요.) 초등학생 때 대표팀 훈련을 같이했고요. 중학생 때도 연습 경기 때 자주 만났거든요. 교류가 잦았어요. 가끔 연락도 주고받는 사이인데, 야구 얘기는 서로 안 해요.
지난 시즌 총 1,123개의 투구 수를 기록했어요.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나요?
동계훈련 때 러닝도 정말 많이 했고요. 근력 운동도 병행하며 체력 훈련을 꾸준히 해 왔어요. 아픈 곳도 없었고 많은 공을 던질 수 있음에 감사하죠.
2021시즌을 앞두고 세운 목표는 모두 달성했나요?
평균자책점 1점대와 탈삼진 100개를 목표로 삼았어요. 방어율은 성공했는데 탈삼진은 95개를 기록했거든요. 100개를 채우지 못해서 아쉽지만, 팀이 계속해서 승리를 거뒀고 그만큼 더 많은 등판 기회를 받았기 때문에 만족해요.
고등학생으로서 마지막 시즌을 남겨두고 있어요. 어떤 각오로 임할 생각인가요?
작년에 평균자책점 1.82를 기록했어요. 0점대로 더 낮추고 싶어요. 삼진을 더 많이 잡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1순위는 방어율을 낮추는 거예요.
#더욱 빛나길
지난해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두 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였다. 아직 2학년이기 때문인지, 눈에 띄기 좋은 파이어볼러가 즐비하기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실적만 보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벌써 제 실력으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 가고 있는 인물이다. 3학년이 되는 올해는 화제의 중심에 서서 10개 구단 팬들이 주목하는 이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이름 꼭 기억하자. 바로 ‘윤영철’이다.
올해 원투펀치로 활약한 선배 이주형이 NC 다이노스에 지명됐어요. 내년엔 최고참으로서 팀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부담은 없나요?
이번 시즌 주형이 형과 전국대회 2연패를 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형이 마운드를 잘 지켜줘서 든든하기도 했고요. 부담감은 없어요. 우리 팀에 충분히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많거든요. 저는 제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거고 동료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이제 학교를 대표하는 3학년 투수가 되잖아요. 본인을 알리는 시간을 한번 가져볼게요.
저는 우선 스포츠 자체를 좋아해요. 탁구도 치고 볼링, 축구, 농구 등 가리지 않고 다 즐겨요.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만나서 해요. 또 다음은 노래를 자주 들어요. 장르는 힙합을 좋아하고 애쉬 아일랜드의 음악을 주로 들어요. 성격은 보기보다 밝은 편이에요. 내성적이지만 친해지면 활발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두린이라고 밝혔어요. 다른 팀으로 갈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요.
두린이지만 뽑아주신다면 어디든 가서 열심히 해야죠. (웃음)
프로가 된다면 가장 하고픈 일은요?
드래프트까지 아직 멀었으니 상상이 잘 가지 않아요. 만약 프로가 된다면 1군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기왕이면 상도 받아보고 싶은데, 너무 먼 미래 같아요.
2022년을 맞아 새해 소망이 있다면요?
첫째로는 2023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는 것, 둘째는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고 싶어요.
오늘 인터뷰 어땠어요?
우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곳에 나올 수 있어서 기쁘고요. ‘윤영철’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습니다. 다음엔 고교 선수가 아닌 프로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출연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마디하고 인터뷰 마칠게요.
우선 지난 시즌에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2022시즌에도 충암고 많이 사랑해 주시고 경기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부모님께도 한마디 하고 싶어요. 형이랑 저 둘 다 야구를 해서 지원하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꼭 프로에 입단해서 보답할게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더그아웃 리포트’에서 앳된 얼굴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저마다 가진 성격도, 표현하는 방법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딱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야구 얘기만 하면 모두가 눈이 반짝이며 진심을 쏟는다는 거다. 이들의 무대인 고교야구는 어쩌면 프로 무대보다도 더 열정적인 곳일지도 모르겠다. 목이 쉬도록 끊임없이 함성을 내뱉고, 흙먼지 속에서도 온몸을 던지는 어린 소년들. 공 하나에 울고 웃는 그 순수함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열정이 더 밝은 빛을 볼 수 있길 소망한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0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0호 (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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