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비용 감당하랴, 회사 눈치 보랴..휴가는커녕 "야근하며 시술" [난임 디스토피아(하)]

윤지원 기자 2022. 1.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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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도 선별도 다 놓친 정부 '투트랙' 지원책

[경향신문]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 지원은 보편적이어야 할까, 선별적이어야 할까. 현재 정부는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전 연령대에게 시술비를 지원한다. 동시에 특정 소득 이하 가구엔 별도 지원금을 얹어준다. 언뜻 모두에게 혜택을 주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수혜적 지원 체계도 갖춘 것 같지만 현장에선 양쪽 다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보편적이라기엔 시술비 부담이 크고, 선별적이라고 하기엔 사각지대가 넓어 빠지는 대상이 많다. 저출산 해결이나 전 국민 생식 건강을 지킨다는 관점에서 난임 지원은 전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정부 정책은 어정쩡한 상태인 것이다. 여전히 난임 시술은 회당 평균 100만원을 웃도는 ‘비싼’ 치료다.

박수희씨 부부는 동탄에 사는 맞벌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꾸준히 직급을 쌓아 40대 이후 결혼한 박씨와 남편은 신혼 초만 해도 일상에 늘 여유가 있었다. 2019년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뒤부턴 매사에 아껴 쓴다. 건강보험을 적용받고도 시술 때마다 최소 200만~300만원이 나가기 때문이다. 3차례 임신에 실패한 지금까지 쓴 돈은 총 1000만원이 넘는다. 아직 병원에서도 난임 이유를 찾지 못해 큰돈이 들어가는 시험관 시술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박씨는 “월소득 구간이 높다고 해서 난임 시술 비용이 부담이 안 되는 게 아니다. 국가적인 저출산 극복 어젠다가 있는데 왜 소득 구간을 정해놓고 일부만 더 돈을 지원받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난임 지원 정책은 투트랙으로 나뉜다. 건강보험은 나이에 따라 시술비 50~70%까지 적용된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중위소득 180% 이하인 저소득층 대상으로 시험관시술 기준 회당 40만~110만원을 별도 지원한다. 이러한 지원 체계는 저소득층 대상으로 회당 150만원씩 지원을 시작했던 2006년 이래 현장 요구를 받아 끊임없이 확대되며 만들어졌다.

■건강보험 비급여 많아 지출 커

건보 적용해 전 연령대 비용 지원
특정 소득 이하 땐 ‘별도 지원금’
보편적이라기엔 시술비 ‘큰 부담’
선별적이라기엔 ‘사각지대’ 넓어
1회당 본인 부담 비용 150여만원
건보 횟수·차감 방식에 ‘불만’ 커

건강보험이 적용되어도 여전히 시술 비용은 비싸다. 34세 김소영씨는 “시험관 시술비가 비싸서 인공수정 시술을 먼저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임신에 실패해 앞으로 돈을 더 쓰게 생겼다”고 말했다. 시술비가 비싼 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난임 시술의 건강보험 급여화 이후인 2019년 1~8월 난임 부부가 시험관 시술(신선배아) 회당 평균적으로 쓴 돈은 153만원이었는데 이 중 36%가 비급여였다.

비급여 항목 가운데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없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항목도 많다. 남는 배아를 냉동하고 보관하는 비용이 대표적이다. 통상 배아 하나당 30만원의 보관비를 따로 내야 하는데 난임 부부들은 여분이 나오면 무조건 보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식한 배아가 끝내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 되기 때문이다. 착상, 임신 유지, 유산 방지에 들어가는 주사들 중에도 비급여가 많다. 35세 임영란씨는 “착상과 임신 유지를 위해 맞는 프로게스테론은 1대당 1만5000원꼴인데 길게는 몇 달을 맞아야 해서 비용 부담이 크다”며 “이식된 배아가 출산하기까지가 한 사이클인데 중간에 정부가 관리를 끊어버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적용 횟수나 차감 방식에 대한 현장의 불만도 크다. 건강보험은 신선배아(난자 채취 후 배양된 배아를 이식하는 시술)는 9회, 동결배아(배양한 배아를 냉동 보관한 뒤 해동해 이식하는 시술)는 7회만 적용되고 그 이후 회차부턴 비급여다. 이호연씨(31)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동결 이식밖에 안 되는 나에겐 신선배아는 남아돌고 동결배아 횟수는 거의 소진 상태”라며 “굳이 회차를 나누어 관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적용 횟수가 배아 이식까지 못 가는 경우에 차감되는 부분도 대표적 불만 사항이다. 난임 부부를 돕는 시민단체 관계자 A씨는 “건강보험 적용 횟수를 채취가 아닌 이식 기준으로 바꿔야만 고령, 고차수 임신부들의 시술비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난임 원인의 절반은 남성 쪽에서 나오지만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비뇨기과 검사 역시 지원이 부족하다. 김선혜 이화여대 교수는 “현재 남성 쪽 시술은 여성이 시험관 시술을 시작해야만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여성 배우자가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시술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치료비 대느라 야근도 거부 못한다

난임자 ‘연 3일’ 휴가 도입했지만
전국 사업장 0.5%서만 사용 실적

비싼 시술비를 대느라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신정우씨(44)는 회사 근처에 있는 난임 병원을 다니면서 총 7번의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법적으로 주어진 연 3일의 난임 휴가는 사실상 쓸 수 없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출근 전인 새벽에 진료를 받거나 연차를 반차로 쪼개어 쓰는 식으로 일과 치료를 병행했다. 몇 해 전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갖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유산했다. 업무 특성상 새벽 한두 시까지 야근을 하는 날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있는데 이때 시험관 시술이 겹치면 임신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신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신씨는 “비싼 시술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무리한 야근 지시가 있어도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7년 난임 진료자를 위해 연 3일의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시술 회차마다 최소 1~2일의 휴일이 필요한 상황에서 연 3일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마저도 자유롭게 사용하는 회사가 많지 않다. 국가통계포털(KOSIS)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80만개 사업장 중 난임 휴가 실적을 보유한 사업장은 전체 0.5%인 4000여곳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관련 국민청원에 대해 “난임 휴가가 현장에 잘 안착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정부는 실시간 현황 파악도 못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정부 지원금이 나가기 때문에 현황을 관리하지만 난임 휴가는 급여를 사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에 정부가 별도 현황을 보고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난임 휴가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연차휴가 소진율도 2019년 기준 평균 72.4%에 그치는 상황에서 난임 휴가는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들의 난임 휴가 제도는 공무원과 비교할 때도 차이가 크다. 공무원의 경우 연간 횟수 제한 없이 난임 시술이나 진료를 받을 때마다 최대 4일 휴가를 쓸 수 있고 난임치료를 위해 최대 2년간 질병휴직도 준다. 사랑아이여성의원 조정현 원장은 “그간 난임은 질병의 개념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만혼으로 인해 난임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보편적 복지 차원으로 휴가나 휴직 제도를 만들어 유연성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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