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이 불가능한 이유 | 폴리 베르제르의 바 | 에두아르 마네

화려한 조명 아래,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사람들.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와인과 맥주병,

오렌지가 가득 담긴 크리스탈 그릇과

꽃이 꽂힌 꽃병이 놓여있고,

그 가운데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홀로 서 있습니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꽃장식과 커다란 팬던트 목걸이를 한 이 여인은

피곤한듯 공허한 표정을 하고서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요.

그 모습이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파리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산업 혁명으로 인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는데요.

새로운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가 확장되고

공원과 광장이 생기면서 카페도 증가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생활상을 담은 기념비적인 이 작품,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입니다.

이 그림은 마네가 죽기 1년 전에 그렸던 작품으로,

1882년 파리 살롱에 출품했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로 130센티미터, 세로 96센티미터의 이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실제 카페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이 곳의 이름은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폴리 베르제르입니다.

파리 도심에 위치한 폴리 베르제르는

오늘날도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극장으로만 운영되는 지금과 달리

19세기 말 폴리 베르제르는 일종의 유흥주점이었습니다.

당시 카페는 커피와 술, 간단한 음식을 먹고 마시며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교의 장소였는데요.

음악이나 춤, 단막극이나 서커스 등을 공연하는 카페를

카페 콩세르(Café concert)라고 불렀습니다.

1869년 문을 연, 폴리 베르제르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콩세르(Café concert)이죠.

마네는 당시 폴리 베르제르에서 공연을 즐기던

파리 시민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매우 빠르고 거친 붓터치는

현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고 있죠.

당시에는 신문물이었던

화려한 샹들리에와 동그란 전등 조명이

카페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고,

한 여성은 망원경을 들고는

초록색 신발을 신은 광대의 그네 묘기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습니다,

카페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데요.

검은 옷 일색인 손님들 사이에서

흰색 드레스와 노란 장갑 차림의 여자는 단연 돋보입니다.

그녀는 당시 여러 예술가들의 뮤즈이자 모델이었던

메리 로랑 (Mery Laurent)입니다.

그녀는 마네의 말년을 함께한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마네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한 장면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각 시대는 자신만의 자세와 시선, 몸짓을 지니고 있다.

현대의 생활, 즉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려라” – 샤를 보들레르

마네보다 11살 위였던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추함과 악함을 묘사한 시집 '악의 꽃'을 출간하면서

당대 예술인들에게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작품에 담으라고 조언했습니다.

보들레르는 고전적인 아카데미 화풍만이 인정받던 19세기 살롱에서

새로운 표현방식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작가들을 높이 평가했는데요.

마네도 그 작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보들레르는 당대 평론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마네의 재능을 인정하고 강력하게 지지했는데요.

마네는 보들레르의 지지에 힙이어

사람들의 비난에도 자유롭게 회화적인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현대의 생활, 즉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렸죠.

에두아르 마네는

사실 열렬한 사실주의 화가였는데요.

죽을 때까지 자신을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했죠.

살아있는 예술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이다
-구스타브 쿠르베

사실주의, 영어로는 리얼리즘이라고도 부르는데요.

구스타브 쿠르베, 장 프랑수아 밀레로 대표되는

사실주의 화가들은 예술이 피하고 있던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전 시대의 회화의 그림처럼

고상한 주제와 매끈한 화면은 물론

주관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을 거부했죠.

이전 시대의 회화의 목적은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감정이나 교훈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는데요.

때문에 역사나 종교, 신화 속 이야기가 화폭에 자주 그려졌죠.

하지만 사실주의 화가들은 역사나 종교 같은 고전적 미술 주제 대신

당대의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가감없이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네 역시 사실주의 화가들을 따라

예리한 시선으로 파리와 파리 시민들의 현대 생활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았는데요.

마네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각양 각색의 술병들이 있습니다

삼각형의 라벨이 붙은 영국 맥주 ‘바스’가 눈에 띄는데요. 

이는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당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교류하던 이 주점의 근대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신화나 역사가 아닌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주제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기법과

부르주아의 위선을 꼬집는 도발적인 내용까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 등 마네의 작품들은

대중에게 공개가 될 때마다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그림 역시 크게 논란 거리가 되었는데요.

먼저,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도덕적이지 않은 상황들을

버젓이 고급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 그림은 어떤 면에서 매우 독특한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폴리 베르제르의 어수선한 광경을 배경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종업원의 이름은 쉬종(Suzon)입니다.

그녀는 사람들로 가득 찬 홀 안에서 카운터와

큰 거울 사이의 좁은 공간에 홀로 서 있는데요.

여인 앞에 놓인 크리스탈 접시에 오렌지가 가득 담겨져 있는데요.

마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오렌지는 비유적으로 매춘을 의미하죠.

당시에는 카페의 손님을 상대로 은밀하게 매춘활동을 하는 것이 빈번했습니다.

그녀의 무표정은 바 위에 술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술과 함께 팔리는 상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논란의 주인공은 바로, 거울이었습니다.

어수선하게 펼쳐진 이 장면은

사실 거울에 비친 모습인데요.

대리석 테이블을 짚고 있는 여인의 손 뒤를 지나가는

갈색의 거울 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동시대 언론과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많은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거울이 만들어낸 파격적인 구도가 그 이유였습니다.

거울의 틀이 수평으로 바르게 놓여 있기 때문에,

종업원의 뒷모습은 그녀의 바로 뒤에 나타나거나

실제 자신의 모습에 가려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게다가 거울 속에는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가 그려져 있는데요.

그녀가 현재와 같이 정면을 응시한 상태라면,

논리적으로는 남자의 뒷모습, 종업원의 얼굴, 거울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

거울에 비친 남자의 얼굴의 순서로 놓이게 되어야 하죠.

하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여인의 앞 모습과 거울에 비쳐진 뒷모습이 엇갈린 각도에서 그려져 있는데요.

거울 속 여인의 뒷모습은 약간 구부정하게 보이고,

다른 사람이라 오해할 정도로 치우쳐 있죠.

이 그림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마네가 그린 폴리 베르제르의 바를 위한 습작(1881)을 보면

카페의 거울 앞에서 밖을 내다보는 남자의 모습은 자연스럽죠.

마네는 세잔의 정물화나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복수 시점(다시점)을 의도적으로 그림에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그림은 사실주의, 인상주의를 뛰어넘는

마네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최후의 걸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젊은 신세대 화가들로부터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요.

마네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신세대 화가들은

인상파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마네를 초청했습니다.

마네의 작품이 인상파가 그리고자 했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정작 마네는 스스로 사실주의 화가라 살롱전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하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인상주의의 아버지’, ‘근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연 에두아르 마네.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작품은

도전적이고 급진적인 동시에 미술계에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그림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들이 느껴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