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놀라운 승차감&아쉬운 트렁크, 제네시스 4세대 G90
“4세대 제네시스 G90(지나인티)를 소개합니다.”
제네시스가 신형 G90를 선보였다. 2세대가 아닌 4세대로 소개하며 ‘에쿠스 핏줄’임을 드러냈다. 신형은 국산 최고 기함다운 호화 장비가 여럿 눈에 띈다.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 발마사지 기능,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뱅앤올룹슨 3D 오디오, 능동형 후륜 조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제네시스, 로드테스트
Since 1999년 4월
①에쿠스
G90의 뿌리는 현대자동차 에쿠스다. 1999년 4월, 국산 최고급 세단 타이틀 앞세워 데뷔했다. 본래 다이너스티의 후속 차종으로 미쓰비시와 함께 개발했지만, 방향을 틀어 상급 모델로 등장했다. 각지고 우람한 차체와 V8 4.5L 가솔린 엔진, 3년/6만㎞의 보증기간, 국산차 최초의 VDC(차체 자세 제어장치), 리무진 버전 등 기함다운 다양한 가치를 앞세웠다.
②‘신쿠스’(뉴 에쿠스)
2009년 3월 출시한 2세대 에쿠스는 미쓰비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앞 엔진‧뒷바퀴 굴림(FR) 구동계와 곡선 위주의 매끈한 디자인, 프리 세이프 시트 벨트, 차선이탈 경보장치, V6 3.3~3.8L 가솔린 람다 엔진, V8 5.0L 가솔린 타우 엔진 등을 달고 확실한 독자 모델로 거듭났다. 이때, ‘현대차 엠블럼 쓰지 않는 현대차’는 에쿠스와 제네시스 두 차종뿐이었다.
③EQ900
2015년 12월,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로 독립시켰다. 이와 함께 에쿠스의 후속 EQ900(이큐 나인헌드레트)를 제네시스 브랜드로 편입했다. 수출명은 G90였지만, 한국에선 에쿠스의 상징성을 녹이고자 EQ900로 출시했다. 이 때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제조 실력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강건한 차체와 완성도 높은 디자인, 상시 AWD가 좋은 예다.
①익스테리어 – 역동적이고 우아한 차체
기존 에쿠스와 G90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중장년층이 타깃인 F세그먼트 세단은 역동적인 분위기를 담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G90는 우아하고 기품 있되, 속도감도 물씬하다. 낮고 넓게 깔린 차체는 7시리즈처럼 역동적이면서 S-클래스 못지않게 우아하다. 과하게 스포티한 앞모습은 뒤쪽의 두툼한 C필러로 묶으면서 기함다운 품위를 지켰다.
그래서 오너 드라이브와 쇼퍼 드리븐의 성격을 교묘히 가로지른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5,275×1,930×1,490㎜. 이전보다 70㎜ 길고 15㎜ 넓다. 높이는 5㎜ 낮췄다. 휠베이스는 3,180㎜로 20㎜ 키웠다. G90 롱 휠베이스 모델은 차체가 190㎜ 더 넉넉하다. 범퍼까지 바짝 밀어낸 앞바퀴와 길쭉한 보닛 덕분에, 플래그십 모델이지만 역동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클램쉘 후드도 포인트. 보닛 절개선을 없애고 펜더와 하나의 패널로 엮었다. 그래서 군더더기가 없다. 도어와 트렁크 패널 등의 단차도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헤드램프는 ‘라인’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두께가 얇다. 마이크로 옵틱 렌즈 기술을 녹인 결과다. ‘Two Lines’ 테마는 뒤쪽에서도 이어진다. 단, 자 대고 ‘쭉쭉’ 그린 듯한 테일램프가 썩 조화롭진 않다.
차체 컬러는 총 12가지. 한라산 그린과 카프리 블루, 바릴로체 브라운, 발렌시아 골프, 마우이 블랙 등 신규 색상이 눈에 띈다. 이 중 블랙 컬러는 기존과 달리 반짝이는 펄을 덜어냈다. 마치 올레드 TV가 검은색 표현하듯, ‘진짜 검정’에 가까운 컬러감이 돋보인다. 그러나 실제 G90는 어두운 계열보다 베르비에 화이트(무광) 등 밝은 컬러를 더 잘 소화했다.
②인테리어 – 낯설지 않은 구성…신선함은 떨어져
실내는 ‘파격’보단 ‘익숙함’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두 개를 엮은 디스플레이 구성, 동반석까지 길게 뻗은 송풍구 등이 좋은 예다. 여전히 한 세대 전 S-클래스와 싸우는 듯 익숙하다. 그러나 조작부의 감촉과 전반적인 소재 품질은 압도적이다. 색감 배치도 감각적이다. 특히 G80과 달리 중앙 모니터를 앞쪽으로 당겨 얹어, 조작하기 수월하다.
과거 국산 기함은 느끼한 나무 장식을 ‘덕지덕지’ 발랐다. 실내 고급감을 높이는 데 원목만한 소재도 없으니까. 그러나 이번 G90는 고리타분한 편견을 엎었다. 기어레버 주변부는 알루미늄으로 감쌌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엔 신문지 등 폐지를 친환경 공법으로 재가공해 만든 ‘뉴스페이퍼 스타라이프 우드’를 심었다. 또한, 한국 전통 공예의 ‘상감 기법’을 응용한 ‘메탈 지-매트릭스 패던 가니시’도 눈에 띈다.
핵심은 뒷좌석. ‘무드 큐레이터’ 기능이 대표적이다. ‘바이탈리티’ ‘케어’ 등 4가지 모드로 나눈다. 무드 램프와 오디오, 실내 향기, 시트 마사지, 전동식 커튼을 승객의 감정 상태에 맞춰 통합‧제어한다. 특히 오른쪽 좌석에서 ‘REST’ 버튼 누르면 안마의자처럼 누워서 발마사지까지 받을 수 있다. 고양이 ‘꾹꾹이’보단 압력이 제법 세다. 이외에 모든 도어는 버튼 하나로 열고 닫을 수 있다. 물론 고장을 대비한 손잡이도 마련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시트 쿠션이 조금 단단한 편이다. 앞좌석도 마찬가지인데, 유럽 지향 성격이 묻어난다. 조금 더 푹신한 감각을 앞세우면 어땠을까. 또한, 디자인 영향 때문인지 머리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트렁크 기본 용량은 410L에 불과하다. 과거 SUV 이상으로 넓었던 에쿠스 시절과 비교하면 무척 아쉽다. 4명이 골프백 4개 싣고 여행가는 건 어려울 수 있다. 멋진 스타일을 조금 타협하고 좀 더 보수적으로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참고로 벤츠 S-클래스와 아우디 A8 트렁크 용량이 505L, BMW 7시리즈가 515L다. 이전 세대 G90는 484L.
③파워트레인 및 섀시 – 드디어 제네시스에 에어 서스펜션이!
이번 G90는 3세대 플랫폼을 깔았다. 전동화 파워트레인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새 골격이다. 기존보다 무게 중심을 낮추고 경량화도 실현했다. 공차중량은 가솔린 3.5 터보 AWD 20인치 휠 기준 2,110㎏. 경쟁 차와 비교하면 어떨까? 메르세데스-벤츠 S 450 4매틱 롱이 2,140㎏, BMW 740Li xDrive가 2,045㎏, 아우디 A8 L 55 TFSI 콰트로가 2,165㎏이다.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도 들어갔다. 주행성능 부분에서 따로 언급하겠지만, 일반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또렷한 승차감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더 똑똑하다. 고속에선 차고를 낮추고 험로에선 훌쩍 높인다. 또한, 급경사로 내리막에선 앞 서스펜션을 최대한 높이고, 감쇠력을 단단하게 바꾼다. 주차장을 빠르게 내려갈 때 범퍼가 바닥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외에 능동형 후륜 조향 기술도 있다. 저속에선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4°까지 비틀고, 고속에선 같은 방향으로 2°까지 튼다. 덕분에 5m 넘는 초대형 세단이지만 회전반경이 중형차 수준으로 작고, 고속도로에선 든든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파워트레인은 V6 3.5L 가솔린 터보 한 가지. 8기통 타우 엔진과 6기통 람다 자연흡기 엔진은 이번에 빠졌다. 8단 자동기어와 맞물려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m를 낸다.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은 선택 사양으로 마련했다. 정부공인 복합연비는 AWD 20인치 휠 사양이 8.3㎞/L, 2WD 19인치 휠 모델이 9.3㎞/L다.
④주행성능 – 결이 다른 승차감
에어 서스펜션의 진가는 어렵지 않게 엉덩이로 느낄 수 있다.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들어간 ‘80’ 라인업과 확실한 차이가 있다. 오돌토돌한 노면을 포근하게 감싸는 맛이 일품이다. 도로와 단절된 듯한 기분이 묘한데, 속도를 높일수록 안정감도 든든하게 키운다.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룬 현대차그룹의 섀시 설계 능력에 에어 서스펜션이 방점을 찍었다.
단절된 느낌을 주는 덴 정숙성도 한 몫 한다. 가장 진보한 소음저감 기술인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NC-R)’ 덕분이다. 타이어 구를 때 올라오는 바닥 소음과 반대 위상 주파수를 스피커로 송출해 희석시킨다. 또한, 설계 과정에서 모든 좌석의 주파수별 음향 감도를 측정‧분석했다. 개선 필요한 부위의 구조를 바꾸고 보강재를 더해 이전보다 완성도를 높였다.
흡차음재 적용 면적 또한 남다르다. 더욱이 2열 쿼터 글라스를 포함한 모든 창문을 이중 접합 차음유리로 틀어막았다. 그래서 주행 중 음악 틀지 않으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조용하다. 수준급 능력 갖춘 서스펜션과 새로운 플랫폼, 뛰어난 정숙성이 맞물린 결과, 비로소 유럽 플래그십 세단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올라갔다.
다루기도 편하다. 같은 3.5L 터보 엔진 쓰는 GV70과 지향점이 다르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모두 힘을 한껏 뺐다. 380마력을 과하게 쏟아내지 않고 부드럽고 느긋하게 힘을 붙인다. 대신 운전자가 원할 땐 확실하게 표정을 바꾼다. 에어 서스펜션 덕분에 일반 모드와 스포츠 모드 사이의 간격을 더 벌릴 수 있었다. 지루함만 앞세운 뒷좌석 사장님을 위한 기함은 아니란 뜻이다. 오너 드라이브와 쇼퍼 드리븐 성격을 적절히 아우른 점이 괜찮았다.
⑤총평 - 라이프스타일 제안하는 제네시스
제네시스 G90. 주행 성능에서 유럽 기함들을 한 발자국 더 앞설 가치는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G90의 가치는 의외로 차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네시스는 단순히 신차를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G90 고객에 걸맞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바로 ‘구독 서비스’다. 와인, 꽃, 커피 등 구매 고객에게 원하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령, 커피 정기구독을 선택하면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제네시스만의 블렌딩 원두를 월 2회씩 배송 받을 수 있다. 와인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면, 매월 다른 맛의 술을 집에서 맛볼 수 있다.
집 꾸미기 좋아하는 고객은 꽃 정기 구독 서비스를 선택해도 좋다. 제네시스에서 직거래 농가를 계약해, 각 농가에서 시즌에 따라 갓 수확한 신선한 제철 꽃을 플로리스트가 손질해 월 1회 배송해준다. 무뚝뚝한 나, 차 사고 매월 아내에게 꽃 선물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처럼 G90를 소유하면 누릴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조사가 제안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동차 제조 능력이 상향평준화된 시장에서 제품만으로 승부하기보다, 이런 전략에서 차별점을 느낄 수 있다.
보증기간도 넉넉하다. 차체, 일반부품, 엔진, 동력전달 계통 주요 부품은 5년/12만㎞ 무상 보증기간을 제공한다. 또한, 5년/12만㎞ 주요 소모품도 무상으로 교환해준다. 가령, 엔진오일 세트 12회, 에어컨 필터 6회, 브레이크 패드(앞) 1회, 와이퍼 블레이드 3회, 브레이크 오일 1회 등의 소모품을 지원하기 때문에 5년간 유지비 걱정 없이 운용할 수 있다.
<제네시스 G90>
좋아요
①압도적인 뱅앤올룹슨 오디오 성능
②구름 위 달리는 듯한 승차감
③계기판에 있어 보기 편한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싫어요
①410L에 불과한 트렁크 용량
②다소 답답한 실내 머리공간
③어색한 테일램프…차가 작아 보인다.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