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아시아 최초로 진행하는 ‘포르쉐 이코넨, 서울-스포츠카 레전드(Porsche Ikonen, Seoul-Sportscar Legend, 이후 포르쉐 이코넨)’를 보기 위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찾았다. 과연 어떤 모델이 기다리고 있을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현장에 들어섰다. 독일어로 ‘아이콘’을 뜻하는 이름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포르쉐 18대가 나를 반겼다.
글│사진 최지욱 기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리한 ‘포르쉐 헤리티지 뮤지엄(Porsche Heritage and Museum)’은 나의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평소 접하기 힘든 클래식 포르쉐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코로나19 등 여러 이유로 아직 실현 못한 꿈이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왔다. 포르쉐가 박물관 컬렉션 일부를 서울로 가져와 전시했다. 당장 달려갔다.
그 시절 향수 가득한 헤리티지 존




‘헤리티지 존’에 들어서자, 포르쉐 배지를 처음 단 356을 비롯해 550 스파이더, 구형 911 등 클래식 포르쉐 7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차는 356A 스피드스터. 폭스바겐 비틀을 밑바탕 삼은 포르쉐 최초의 양산차다. 1열 시트 뒤에는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1.6L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최고출력 75마력, 최고속도는 시속 175㎞다.


356A 스피드스터 뒤에는 356C 카브리올레가 자리했다. 당시 포르쉐는 356을 연식에 따라 356(1948년)과 356A(1955년), 356B(1959년), 356C(1963년)의 네 가지로 나눴다. 356C 카브리올레는 네 바퀴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기본으로 끼우고, 70마력을 내는 공랭식 수평대향 1.6L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옵션으로 95마력을 내는 ‘SC’ 엔진과 오픈 톱도 마련했다. 356C는 1965년까지 생산한 후 911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718 포뮬러 2는 포르쉐 최초로 디자인과 제작, 레이싱까지 진행한 1인승 오픈 휠 경주차다. 718/2 RSK 섀시를 바탕으로 앞 차축엔 독립 서스펜션과 토션 바 스프링, 뒤 차축엔 코일 스프링을 넣었다. 운전석 뒤에는 수평대향 4기통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려 최고출력 155마력을 냈다. 718 포뮬러 2는 1960년, ‘쿠페 데 컨스트럭처(Coupe des Constructeurs)’에서 페라리와 로터스 등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했다.






911 삼총사를 구경하던 중 관계자가 문을 열어줘서 짧게나마 실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다이얼 5개로 구성한 계기판과 왼쪽에 자리한 키 박스, 드라이버 가슴을 향해 반듯이 뻗어 나온 운전대는 여전히 심장 뛰게 하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인테리어 소재가 요즘 차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아 더욱 인상적이었다.


헤리티지 존의 마지막 주인공은 550 스파이더. 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의 애마로 유명한 그 차다. 은색으로 칠한 낮고 둥근 차체, 조그만 앞 유리는 클래식하면서 매끈한 자태를 자랑했다. 강철 튜브 프레임 위에 경량 알루미늄 차체(약 550㎏)를 얹었다.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110마력을 내는 수평대향 4기통 1.5L 가솔린 엔진이 들어갔다.

550 스파이더는 경주차로도 활동했다. 1953년 5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치른 ‘아이펠(Eifel)’ 경주에 참가해 첫 우승을 거뒀다. 그 다음 달에는 르망 24시, 11월에는 ‘카레라 파나메리카나(Carrera Panamericana)’ 1,600㏄ 클래스에서 승리했다. 이듬해에는 카레라 파나메리카나 1,500cc 클래스 전체 3~4위를 차지했다.
한 시대를 대표한 레이스카 모음


포르쉐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가 모터스포츠다. 서킷은 물론 일반 도로,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넘나드는 ‘파리-다카르 랠리(Paris-Dakar Rally)’까지 다양한 경주에 참가해 이름을 날렸던 과거는 포르쉐가 자랑하는 유산이다. 포르쉐 이코넨은 당시 주역을 ‘모터스포츠 존’으로 소환해 이목을 끌었다.



첫 번째로 만난 차는 1970년에 등장한 908/03 스파이더. 무게는 단 545㎏으로, 완벽한 무게 배분을 위해 엔진과 운전석을 앞에 설치했다. 수평대향 8기통 3.0L 가솔린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350마력을 냈다. 최고속도는 시속 275㎞. 포르쉐는 908/03 스파이더를 총 12대 생산했는데, 그해 시칠리아 클래식과 뉘르부르크링 1,000㎞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타르가 플로리오 대회에서는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가장 관심 있게 본 경주차는 917/20. ‘분홍 돼지(Pink Pig)’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차다. 포르쉐는 공기역학 성능을 높이기 위해 917/20의 몸집을 키웠는데, ‘돼지 같다’는 놀림을 당했다. 이를 들은 레이스팀은 차체를 전부 분홍색으로 칠했다. 여기에 빨간색 점선 데칼을 더하고 독일어로 돼지고기 부위를 적었다. 경주팀의 은근한 유머 감각이 돋보였다.

참고로 1열 시트 뒤에는 600마력 V12 4.9L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360㎞에 달했다. 1971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출전해 사고로 리타이어하기 전까지 5위를 유지했다. 또한 예선전에서 ‘가장 빠른 레이스카’로 이름을 올렸다.


‘2017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출전했던 919 하이브리드도 전시했다. 포르쉐가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복귀하면서 공개한 프로토타입 경주차로, 대회 3연패 및 통산 19번째 종합 우승을 기록한 모델로 유명하다. 파워트레인은 V4 2.0L 가솔린 엔진과 에너지 회생 시스템 두 개를 묶어 최고출력 900마력을 냈다.

‘포르쉐 이코넨, 서울’은 4월 9~2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한다. 아시아 지역 가운데 최초다. 헤리티지, 모터스포츠, 이노베이션 등 세 가지 테마로 구성한 공간에 총 18대의 전설적인 스포츠카를 전시한다. 모바일 도슨트 프로그램, 미디어 아트, 레이싱 시뮬레이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입장료 1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