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실증된 과학기술만이 고령자에 도움 준다

입력 2022. 6. 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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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미래사회연구단 선임연구위원

고령화로 인한 복지서비스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도 복지비용의 상승을 둔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서 기술의 활용이 제시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에서 고령자를 위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고령사회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효과적 정책수단으로 제시되었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은 정부정책의 중요한 화두였고, 과학기술은 그 두 가지 열매를 동시에 가져다 줄 수 있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그 이후 고령자를 위한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사업들이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실버산업 또는 고령친화산업으로 불리는 신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십수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러한 논리와 기대는 여전하다.

그러나 고령자의 삶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고령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한 인지능력 강화나 신체보조를 위한 기기 개발, 주거환경 개선에 관한 기술과 제품개발 등에 관한 연구개발은 진행되었으나, 그 결과가 적용된 제품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물론 연구개발 결과의 상용화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럴만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왜 시장이 열리지 않는 것일까? 왜 정부가 기대한 대로 기술에 대한 재정투입이 상용화로 전개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과연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이나 고령친화산업 정책에서 시장형성을 위한 전략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고령사회문제에 관련한 기술개발 사업들은 대체로 R&BD, 다시 말해 비즈니스를 아우르는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장은 공적급여 시장에 국한되어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돌봄사업, 장기요양보험서비스 등에서 제공되는 돌봄서비스에 기술을 적용하거나 혁신적 제품을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공적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요와 공급 두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수요자가 정부의 돌봄서비스 대상자 또는 이를 제공하는 기관에 국한된다. 소위 '액티브 시니어' 라 불리는 대다수 고령자의 다양한 수요는 공적시장에서 수용하기 어렵다.

공급 측면에서 본다면 정부의 재정투입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공적시장은 고령자를 위한 기술과 제품의 사회적 확산통로로서의 기능이 있으나, 고령인구 전반의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의 확산 통로라고 보기에는 너무 좁다. 고령사회문제에 개입하는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에서 민간시장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시장형성전략이 드러나지 않는다.

둘째, 개발된 기술의 시장성을 판단할 지식기반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은 돈 없는 사람은 정부지원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돈 있는 사람은 살 것이 없어 못 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고령자 관련 산업의 현실이다.

시장성의 기본 요건은 좋은 제품의 개발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무엇이 고령자에게 적합하고, 유용하며, 건강하고 안전한 삶의 유지에 효과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의 정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고령자의 신체적·심리적·행동적 특성에 대한 이해와 고령자 삶의 조건(주거환경, 교통시스템, 돌봄 및 의료시스템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고령자를 위한 기술개발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봇, IoT 를 활용한 스마트 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등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 그 자체가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발된 기술과 제품의 실용성과 안전성이 증명될 수 있는 실증의 장이 필요하다. 그래야 제품으로서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고령화 대응정책의 선행 사례로 회자되는 일본과 유럽에서 실증지원사업, 실증클러스터 구축 등이 정책사업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여기에는 공적시장의 모형뿐만 아니라, 민간시장으로의 확산,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모형이 적용된다.

기술이 아니라 지식, 실제 생활환경에서 실험과 검증을 반복하면서 얻어낸 지식이 산업을 키우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고령화 대응을 국정의 우선과제로 제시한 새 정부는 기술개발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시장 활성화 전략을 세우고 실증기반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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