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대만에 우리가 얼마나 소홀했는지.."

한예경 2022. 4. 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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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단교 30년 회고록 낸
조희용 전 駐캐나다 대사
1992년 당시 1등서기관으로
단교과정 처음부터 지켜봐
한중수교 전날까지 일절 함구
존중·배려 결여로 상처 입혀
"특사 보내 양해구했더라면"
"대만은 한국의 독립 투쟁과 건국을 지원한 나라인데 우리가 30년 전 그런 대만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지금이라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불리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초 이야기다. 중화민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5000달러에 육박하며 우리나라의 두 배가량 되던 시절, 주중화민국 한국대사관에 서른다섯의 젊은 외교관 조희용 1등서기관(전 주캐나다 대사)은 양국 경제 교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도착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반 후인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대만과 하루아침에 단교하기로 결정한다. 양국 관계 단절을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대만에 발을 디뎠던 검은 머리 서기관은 그 후 중국·미국·캐나다를 돌아 2022년 흰머리가 성성한 퇴직 외교관이 되어 나타났다. 30년간 풀리지 않던 퍼즐을 하나하나 꿰맞추며 써 내려간 역사서 '대만단교회고: 중화민국 리포트'(도서출판 선인)를 들고서.

지난 21일 매일경제와 만난 조희용 전 대사는 "한·대만 단교는 한중 관계의 시작이니 동전의 앞뒤 면 같은 문제"라면서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에 대해 다양한 역사적 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한·대만 단교 30주년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운을 뗐다. 조 전 대사가 한중 수교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한·대만 단교의 역사를 30주년에 맞춰 들고나온 것은 단지 "대만에 대한 무언가 마음의 빚이 남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중화민국 외교부 부장으로서 단교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첸푸 전 대만 외교장관의 회고록 3권이 지난해 출간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조 전 대사는 창고에서 쾨쾨한 먼지 냄새를 피우고 있던 30년 전 자신의 업무 일지와 신문 등 자료를 꺼내들었다. 본부에 보고했던 보고서와 메모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뒀던 그는 앞서 출간된 첸치천 전 중국 부총리(당시 중국 외교부장) 회고록, 장팅옌 초대 주한 중국대사 회고록 등을 포함한 한·중·대만 3국 간 외교문서를 교차 분석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간 몰랐던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새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었고,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는데도 대만 측에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며 발뺌했다. 결국 한중 수교 직전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된 대만 정부는 우리 외교부에 크게 분노하며 당시 박노영 주중화민국 대사를 초치한다. 첸푸 외교부장과 박 대사 간의 험악했던 면담에 배석한 조 전 대사는 당시 면담 내용을 옮겨놨는데 첸 부장이 박 대사에게 "진작 떠났어야 할 사람"이라며 거짓말·기만행위에 대한 대가 등을 운운했다고 적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런 비난에 대해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 역시 일부만 사실로 드러났다. 실제 중국은 한중 수교 문안 타결 이후 한 달 만에 김일성 주석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고, 중국만 믿고 있었던 우리는 대만에 이 사실을 두 달 넘게 비밀로 하면서 한·대만 외교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이다.

책 서두에 김구의 '백범일지'를 인용한 조 전 대사는 "백범이 저격당한 후 병상에 있을 때 장제스 총통이 금전 지원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것은 두 나라 간의 연대감이 바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단교 당시 대만이 한국에 가장 섭섭하고 불만스러웠던 점은 언젠가 닥칠 단교 그 자체보다는 중화민국의 국격과 존엄에 크게 손상을 받았다는 점"이라며 "별 의미 없는 얘기지만 그때 우리 정부가 대만에 특사를 파견해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는 등 존중과 배려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국가 간 관계에서 존중과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귀에 남았다.

[한예경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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