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맞는 링컨 기념관..미국 '통합' 염원은 여전히 미완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2022. 5. 3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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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리석 석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안에서 이른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수도 워싱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념물인 링컨 기념관이 30일(현지시간) 헌정 100주년을 맞이했다. 미국 통합의 상징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09~1865)을 기리는 이 기념관은 지난 100년 간 수없이 많은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된 장소였고, 한해 800만명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미국 통합의 상징인 이 기념관 안에 설치된 링컨 동상은 여전히 분열된 미국을 지켜보고 있다.

미 연방의사당에서 동쪽으로 약 3.2㎞ 떨어진 포토맥 강변에 자리잡은 링컨 기념관은 1922년 5월30일 헌정식을 가졌다. 3만8000t에 달하는 대리석과 석회암으로 지어진 이 기념관은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해 거대한 기둥이 둘러싼 직사각형 건물로 세워졌다. 기념관 안에는 의자에 앉아서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링컨 대통령의 모습을 형상화한 175t짜리 대리석 동상이 있다. 기념관 내부 벽에는 1963년 11월19일 게티스버그 연설과 1865년 3월4일 재선 취임 연설 등 링컨 대통령의 가장 유명한 연설의 핵심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링컨 기념관이 건립된 곳은 포토맥 강변의 습지였다. 육중한 석조 건물을 세우기 위해 철제 파이프 122개를 박은 다음 콘크리트를 채워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약 5만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헌정식은 워런 하딩 당시 미국 대통령, 27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다음 대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링컨 대통령의 아들인 로버트 토드 링컨, 저명한 흑인 문인이자 교육가인 로버트 루서 모턴 터스키기대학교 총장 등이 주요 연설자로 나섰다. 특히 모턴 총장은 링컨 대통령이 1963년 1월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한지 59년이 흘렀지만 미국 사회에서 여전한 차별과 배제를 지적했다. 모턴 총장은 역사적으로 미국에 도착한 두 척의 배가 자유와 속박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을 싣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 도착한 메이 플라워호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싣고 온 노예선이었다. 모턴 총장은 그 이후로 자유와 속박의 원리는 미국인들의 영혼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백 분리가 엄존했기 때문에 헌정식에 초청된 흑인들은 백인들과 함께 앉지 못하고 따로 분리된 구역에 앉아야 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링컨 기념관이 29일(현지시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반사의 연못’에 비춰지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흑인 노예를 해방하고, 남북전쟁으로 쪼개질 뻔 했던 미국의 통합을 지켜냈지만 암살범의 총탄에 맞아 생을 마친 링컨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 기념관은 지난 100년 간 수없이 많은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된 장소였다. 특히 자유와 통합 등 링컨 대통령이 강조하고 실천한 정신을 반영하듯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는 이벤트가 많이 열렸다. 1939년 4월9일 미국 출신 오페라 가수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매리언 앤더슨은 컨스티튜선 홀에서 연주회를 하려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링컨 기념관 앞에서 7만5000명을 모아 놓고 연주회를 열었다. 그로부터 24년 뒤인 1963년 8월28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약 25만명이 운집한 링컨 기념관에서 유명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2013년 8월28일 링컨 기념관에서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 5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을 했다. 1994년 발표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포레스트가 헤어졌던 연인 제니와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이 촬영된 장소도 이곳이었다.

링컨 기념관은 미국 대통령들이 각종 행사를 위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5월3일 링컨 기념관 내부에서 폭스뉴스와 화상 타운홀 미팅을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열의 정치’를 구사했고 연방 법률상 링컨 기념관 내부에서는 청중이 모이는 행사가 금지돼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 전날인 지난해 1월19일 링컨 기념관 앞에서 코로나19로 숨진 미국인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발표했고 취임식 날 밤에도 링컨 기념관 앞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헌정 100년이 지난 지금 링컨 기념관은 교육과 관광, 시위와 명상, 운동과 산책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인들은 저마다 링컨 기념관에서 흑인 노예제와 남북전쟁의 역사를 애도하고, 링컨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이상과 통합을 기억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링컨 기념관에 설치된 링컨 동상은 지난해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맞은 편에 보이는 연방의회 의사당을 습격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봤다면서 이 기념관이 헌정 10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미국은 링컨이 살았던 시절만큼이나 분열돼 있다고 지적했다.

링컨 기념관이 100주년을 맞은 30일은 미국의 전몰자 추도기념일인 ‘메모리얼 데이’다. 1865년 5월30일 남북전쟁(1861~1865)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로 지정해 1·2차 세계대전 등을 포함해 군사 작전에서 사망한 모든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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