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밀고 나타나자 부동산중개업소 사장님이 달려나옵니다.
김복남 사장님
"오~래 하셨어요. 오~래 오래 오래 하셨고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이렇게 늘 왔다 갔다 하면서…정말 본받아야 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다…하루종일 내가 듣기로는 은행가는 시간 빼놓고는 하루종일…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이 할아버지 동네에서 꽤 유명한 분인 거 같습니다. 마른 몸으로 폐지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미는 이분. 경기도 안양에 사는 폐지 할아버지, 올해 일흔일곱살 이상일 할아버지입니다.
폐지 주워 600만원 기부한 기부천사 할아버지
이상일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이렇게 동네 구석구석 쓰레기더미를 헤치며 폐지를 줍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폐지를 팔아 19년 넘게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할아버지는 30년 넘게 교도관으로 일한 전직 공무원입니다.
이상일 할아버지
"봉사는 그거 그러니까 그 봉사라는 거는 70년대 그 이후 전서부터 했었죠… 내가 교도관생활을 하면서 출소자들이 버리고 가는 옷 같은 거야 담요라든지 옷이라든지 뭐 이런 거를 전부 빨아가지고 이제 이런 장애인 시설이나 보육원 뭐 이런 데다가 많이 전해줬죠”
기부를 시작한 건 어머니 가르침 덕이라고 해요. 온 가족이 배를 곯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어릴 때는 그런 어머니가 못마땅했죠. 그래도 가르침은 오래 남았습니다.
이상일 할아버지
"그래서 아 우리도 배가 고파서 맨날 이래 멀건 물이나 마시고 보리개떡 하나 남은거...이렇게 하나 먹는 때 이 놈들은 이거 먹으면 되지 뭘 그러냐 하고 그래도 하나씩 나눠 먹어야 된다 네 배 불러가지고 다 먹으면 만 먹으면 안 된다 니가 배가 고플 때는…”
교도관 생활을 그만둔 뒤부터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기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벌 때는 하루 5만~6만원까지 벌었지만 요즘은 하루 1만5000원에서 2만원 정도로 수입이 줄었다죠. 건강이 나빠져 오전에만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는데다가 폐지 줍는 사람이 많아져 수거량이 뚝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186kg의 폐지를 주워 24,000원을 벌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폐지로 번 돈을 매일 이 통장에 저축합니다. 통장의 맨 앞면에는 할아버지의 다짐이 담겨있습니다.
이상일 할아버지
“내가 하는 넝마주이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아 청렴정직근검절약하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이웃이 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봉사하기 위함이다”
할아버지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최근에는 울진 화재에 30만원,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2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올해 목표는 작년 기부액인 600만원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통장에서 돈을 빼 기부를 할 때가 제일 기분 좋다고 말합니다.
이상일 할아버지
"제일 좋죠. 통장에서 내가 돈 뺄 때가 제일 저거하지(좋지)”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뒷면에 있는 학을 보여줍니다.
이상일 할아버지
"내가 지금도 학을 내가, 손재주가 없으니까 학을 못 접어요…이거를 1000개를 모아가지고 올 연말에 1000개 이제 모아가지고 그러면 종이학 1000개 접는 거나 이거 1000개나 다 그렇지 그래서 이제 이거 10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먼저 지금 한 500개를 모았어”
PD
"그럼 또 기부하실 거예요?”
이상일 할아버지
"그렇지 이제 그거 기부하려고”
학 1000개를 모아 이루고 싶은 할아버지의 소원은 어려운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세상이래요.
500원짜리가 1000개가 모이면 할아버지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기적처럼 찾아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