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김이듬 시인·책방이듬 대표 2022. 3. 1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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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었던 일들, 거의 다 해보았다. 첫 번째는 낭독회와 북토크. 200여 회의 행사에 시인과 소설가 에세이스트 인문학자 화가 기자 배우 다큐멘터리 감독 등이 초대작가로 오셨다. 두 번째는 독서모임과 창작모임, 다양한 예술 감상회를 중심으로 한 동네 문화사랑방 만들기. 이 소규모 모임을 계기로 작가로 등단하신 분이 여럿 계시다. 누구든지 몇 편의 글이 될 경험과 상상력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또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그림을 빔에 띄워 놓고 다 같이 보고 이야기했다. 지인이 진행한 세계음악 감상회의 밤이 거듭되었다. 세 번째는 독립출판 제작. 2종의 종합문예지를 출간하고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배부했다.

2017년 책방을 열며 꿈꾸었던 세 가지 일을 가볍게 열거해 보았다. 후회 없이 정열적으로 진행해왔으나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전인권)라고 노래할 수만은 없다. 책방 운영은 독서가 유일한 취미인 사람에게도 당면한 ‘일’이다. 작은 문학공동체, 소규모 예술발전소, 동네 사랑방이라고 외쳐봐도 월세를 맞추고 이문을 남겨야 지속할 수 있는 세계이다. 뼛속까지 닿는 사람에 대한 믿음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사업인 것 같다.

햇수로 6년 동안 책방에서 수많은 사람과 직면했다.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 맘 맞는 지인들과 소통할 때와는 밀도, 차원이 달랐다. 거의 매일 책을 팔고 음료를 준비하며 이웃과 사귀었다. 그분들은 수박이나 오곡밥을 들고 오기도 했고 꽃 화분이나 의자, 자신의 그림, 음반, 책 등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친근하고 솔직한 친구가 되어갔다. 우정과 믿음이 찬란하게 깨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쉽고 달콤하기만 했다면 나는 이 일에 훨씬 깊숙이 매몰되었을까? “이 동네에 책방이 있다니! 너무 훌륭해요.” 종종 듣는 이런 말에 기뻐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공공기관의 공모사업에 책방행사 관련 지원서 쓰는 일이 익숙해졌는데 나는 더 불안하다. 올해 경기 고양시가 ‘친구야 책방 가자’ 사업을 펼쳐 동네책방들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는데 나는 복잡하다. 애초 ‘독립책방’을 지향했는데 책방을 열고 1년 6개월 이후부터는 국가의 공공지원사업 중에서 책방행사 관련된 사업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야만 책방행사에 주민을 무료로 초대할 수 있고 작가 특강료를 챙겨드릴 수 있었기에. 밤을 새워 기획안 짜고 섭외하고 서류를 만들고 정산하느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가 모호해졌다. 마치 내가 공공기관과 시민의 무임중개인 혹은 심부름꾼이 된 기분이었다. 자급자족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일상에 드리워진 가능성, 극한 업무, 돈 걱정, 유월에 나온다는 소상공인 지원금, 질병, 과도한 칭찬과 경멸, 이토록 불안정한 상황은 나에게 어쩌면 다행한 일이다. 이렇지 않다면 나는 살던 대로 살기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삶에서 끝없이 멀어지면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가는커녕 생활인과 작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스로에 대한 뒤늦은 자각.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미안한 기분.

어제는 한 학생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가 저번에 사려던 책이 절판본이라 팔지 않았는데, 어제는 그 책을 선물로 주며 다른 맘에 드는 책도 골라가라고 했다. “조만간 책방언니의 삶을 멈추게 될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나를 다독여준 벗들, 책방을 좋아하며 드나들었던 이웃들에게 나는 책을 가져가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줄 선물이라곤 책이 다인 게 아쉽지만 제일 좋아하는 사물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3월 18일에 열릴 행사 ‘봄날에 연애’가 마지막 낭독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날은 미지에서 시인 세 분이(양선희 이서화 장시우) 와서 최근에 나온 그들의 시집을 읽고 주민과 이야기 나눌 것이다.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안녕”이라는 말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아름답다. 340쪽 넘는 책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칼럼 제목으로 쓸 날이 온 게 조금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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