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에 치이고, 짬뽕에 밀리고..한식, 한국인마저 점점 외면
양식·중식보다 배달 번거로워
서울서만 4년새 2700곳 감소
◆ 한식의 위기 ◆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옛날집낙원아구찜` 모습. 이곳은 서울식 아귀찜을 처음으로 개발한 유명한 한식 맛집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음식 배달이 일상화되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이충우 기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03/25/mk/20220325184807979fmbf.jpg)
지난 23일 정오 점심시간대. 3층짜리 '옛날집'은 단 1층만 운영하고 나머지는 문이 닫혀 있었다. 코로나19 유행 탓에 손님이 더 줄어들었다는 하소연이다. 배달로 돌려보려 했지만 아귀찜은 내장을 빼고 양념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 인건비가 많이 들고 배달 음식으로도 가격이 비싸 외면받았다.
옛날집을 56년째 운영하고 있는 윤청자 씨(82)는 "아귀찜은 서로 나눠서 먹는 음식이고 배달로는 편하게 먹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평일에는 사실상 배달 주문이 없다시피 한다"며 "주말에나 간간이 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한식(韓食)이 위기를 맞았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음식맛으로 유명했던 한식당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높은 인건비와 재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데다 배달 음식으로 적합하지 못해 시장에서 차츰 밀려나고 있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식당은 코로나19에도 꾸준히 증가해 2019년 4분기 14만5979개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15만573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한식 점포는 같은 기간 1373곳이 사라졌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는 "한식 특유의 반찬 문화와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 등을 정부 주도로 현대화해야 한다"며 "한식을 단순한 요리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서 재정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달문화 급속 확산에 백년노포도 문 닫는다
고령점주 코로나불황 직격탄
대통령 찾던 한식 맛집도
매출 70~80% 곤두박질
음식 뜨겁고 반찬포장 부담
한식당만 점포수·수익 줄어
배달로 활로찾은 양식·일식당
1년새 300여곳씩 늘어 대조
25일 서울 인사동 유명 한정식집인 '하나로회관'. 코로나19 이후 예약 손님이 줄어 매출이 그전보다 50%나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하나로회관 대표 김 모씨(67)는 "코로나 이후로 직원을 놀릴 수가 없어 도시락 배달까지 시작했는데 사실상 마진도 안 나오고 주문도 별로 없다"며 "자식에게 3대째 물려주어 자부심 있는 우리나라 전통 한식을 이어가고자 하는 꿈을 망설일 정도로 타격이 크다"고 토로했다.
예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 후 방문하려다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렸던 '선천집'도 손님이 80%나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선천집 매니저 정 모씨(51)는 "예전에는 식당에 찾아온 차로 인사동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주차장이 한산할 정도"라며 "한식은 배달음식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다간 우리나라에서 한식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식이 외식업에서 점차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 매출만 봐도 뚜렷이 나타난다. 25일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빅데이터 활용 외식업 경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2월 일반 한식당의 점포당 매출액은 1070만원으로 전월 매출액 1152만원 대비 7.1% 감소했다. 이는 일반음식점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같은 기간 양식당은 점포당 매출이 2068만원에서 2129만원으로 3% 늘었고, 일식당은 2320만원에서 2344만원으로 1%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코로나19로 배달음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한식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aT에 따르면 올 1월 외식업 매장 매출에서 한식 비중은 52.2%인 데 반해 배달앱 매출에서 한식 비중은 46.4%로 차이가 크다. 국이나 탕류가 많은 한식은 뒤처리가 불편해 배달을 꺼리기도 하고, 배달을 하면 한식의 장점인 '반찬 무한 리필'이 불가능하다. 배달 메뉴에서 한식 선호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자취생 박 모씨(22)는 "편하려고 배달을 이용하는데 치우기 불편한 한식보다는 간단한 햄버거나 스시 같은 음식을 자주 시킨다"며 "고기는 식당에 가서 직접 구워 먹는 게 낫고 한식을 배달시키면 반찬이 정량뿐인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한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 농식품부·한식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한식의 인지도는 2017년 64.1%였으나 2021년에는 55.9%로 8.2%포인트 감소했다. 한식당 만족도도 같은 기간 92.2%에서 88.6%로 떨어졌다. 한식당 재방문 의사 또한 92.4%에서 89.5%로 감소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엄 모씨(31)는 "곱창이나 국밥을 먹으러 한식당에 가면 손님은 사실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2009년 이명박정부가 한식재단을 설립하면서 야심 차게 '한식 세계화'를 추진했지만 불과 13년 만에 허울만 남은 셈이다.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로 뻗어가면서 한식을 찾는 외국인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한식 자체가 세계인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적인 '한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식을 현대적으로 분류하고 정의하는 체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식은 중국·일본과 다르게 체계화된 요리법이 없고 집안 대대로 구전하는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규민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한식의 체계나 분류를 명확히 해야지만 정부 지원이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중구난방인 한식 표기를 표준화해 '음식명의 세계화'부터 차근차근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아직도 해외에서는 떡볶이를 'Tteokbokki'나 'spicy rice cake' 등 여러 이름으로 혼용해 번역하면서 한식 인지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김정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부가세납부 4월말까지…코로나 및 산불피해 110만명 납부연장키로
- 美금리 0.5% `빅스텝` 빨라져…영끌족, 고정 VS 변동 손익계산은
- 연준 고위인사 "인플레이션 잡아야…체계적 금리 인상 예상”
- 5월부터 국제선 주100회 증편…"공항, 내년 100% 일상회복"
- 이제야 `탈원전 족쇄` 푸는 정부…원전 수명 다시 늘린다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AI가 실시간으로 가격도 바꾼다…아마존·우버 성공 뒤엔 ‘다이내믹 프라이싱’- 매경ECONOMY
- 서예지, 12월 29일 데뷔 11년 만에 첫 단독 팬미팅 개최 [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