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떤 차를 운전할 때 ‘재미있다’고 느낄까? 호쾌한 가속 성능, 짜릿한 배기음에 주로 희열을 느낀다. 아마 이 기준으로 바라보면, 토요타 86은 가래떡처럼 심심한 스포츠카다. 그러나 시선을 옮기면 다른 차엔 없는 비장의 무기가 즐비하다. 가벼운 몸무게, 낮은 무게중심, 후륜구동 섀시가 대표적이다. 최근 등장한 차세대 GR86은 이런 가치를 이어가되, 전에 없던 매콤한 장비를 제법 더했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토요타

토요타가 뒷바퀴굴림(FR) 경량 스포츠 쿠페, GR86을 공개했다. 86 앞에 붙은 ‘GR(가주 레이싱)’ 배지가 신선하다. 토요타의 고성능 브랜드로, ‘형님’ 수프라에 이어 86에도 GR의 영혼을 녹였다. 참고로 현재 토요타 GR 라인업은 GR수프라, GR86, GR야리스, GR코롤라 등 네 가지 차종으로 나눈다.
①Since 1982

86의 역사는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E86으로, 본래 5세대 코롤라의 가지치기 차종이었다. 3도어 소형 해치백 형태의 후륜구동 모델로, 만화 ‘이니셜 D’에서 주인공 후지와라 타쿠미의 애마로 유명세를 탔다. 직렬 4기통 1.6L 가솔린 엔진의 성능은 평범했지만, 가벼운 차체와 차동제한장치(LSD) 더한 뒷바퀴 굴림 섀시를 무기로 굽잇길에서 마니아를 열광케 했다.

이후 토요타는 2012년 86을 독자 모델로 부활시켰다. 스바루와 공동개발을 통해 각각 토요타 86, 스바루 BRZ로 출시했다. 2도어 쿠페 보디에 수평대향 4기통 2.0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얹고 뒷바퀴를 굴렸다. 이 모델 역시 성능제원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가벼운 차체와 낮은 시트포지션, 6단 수동변속기를 무기로 남다른 운전재미를 뽐냈다. 후륜구동 스포츠카 교보재란 표현이 가장 어울릴 듯하다.
②‘옥의 티’였던 외모 업그레이드

그러나 기존 86은 ‘훈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째진(?) 눈매, 90년대 향수 가득한 세상 칙칙한 인테리어가 대표적이다. 반면, 신형은 요즘 트렌드에 걸맞다. 언뜻 재규어 느낌 물씬한 곡선 위주의 실루엣,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8인치 디스플레이가 좋은 예다. 스포츠카를 원하지만, 최신 장비 또한 양보하기 싫은 요즘 젊은이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구성이다.

헤드램프는 GR수프라처럼 ‘L’자 주간주행등과 ‘반짝이’ LED를 품었다. 거대한 그릴은 상어 가죽에서 영감을 받아 입체적으로 디자인했다. 속도감 물씬한 옆모습도 눈에 띈다. 길쭉한 후드와 뒷바퀴 쪽에 쏠린 캐빈으로 역동적인 비율을 완성했다. 앞바퀴 펜더 뒤엔 숨구멍을 뚫어 공기역학 성능을 개선했다. 가로로 길게 이은 LED 테일램프도 요즘 트렌드에 부합한다.

GR86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264×1,775×1,310㎜. 이전보다 24㎜ 길고 10㎜ 낮다. 휠베이스는 2,575㎜로 5㎜ 키웠다. 다른 브랜드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어떨까? BMW M2가 각각 4,468×1,854×1,410㎜, 포르쉐 카이맨이 각각 4,379×1,800×1,295㎜, 재규어 F-타입이 각각 4,482×1,923×1,311㎜다. GR86의 작은 체구를 확인할 수 있다.
③제대로 보강 공사한 인테리어

GR86은 과거 이니셜 D에 열광했던, 이제는 배나온 중년이 된 아재들만 유혹하지 않는다. 2개의 USB 포트, 듀얼 존 에어컨, 음성인식 기능, 무선 애플 카플레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버튼으로 ‘요즘 20대’도 겨냥한다. 6방향 전동 조절 시트와 알칸타라로 감싼 뒷좌석을 통해 ‘고급화’에도 신경 썼다. 또한, 스피커 개수는 8개로 키우고 200W 서브우퍼를 더했다.



물론 GR86의 매력은 ‘요즘 장비’보다 재래식 감성에 있다. 노면과 시트 사이 거리가 손바닥 한 뼘 남짓에 불과한 시트포지션, 손맛 자극하는 핸드 브레이크, 우뚝 솟은 6단 수동 기어레버가 좋은 예다. 주행모드는 노멀, 스포츠, 스노우, 트랙 등 4가지. 트랙모드에선 계기판 중앙에 RPM 타코미터를 띄우고, 오일 및 냉각수 게이지, 랩 타이머를 보기 좋게 표시한다.
④배기량 높인 신형 파워트레인

엔진도 새롭다. 토요타는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의 배기량을 1,998→2,387cc로 키웠다. 최고출력은 기존보다 28마력 높은 235마력. 그 결과 0→시속 100㎞ 가속을 7.0→6.1초로 줄였다(MT 기준). 특히 토요타는 D-4S 이중분사 기술을 재조정 해, 엔진 압축비를 12.5:1로 높였다. 흡기 매니폴드는 토크를 선형적으로 분출하도록 개선했고, 연료 시스템은 선회 시 안정적인 연료 흐름을 위해 새로운 펌프 디자인을 품었다. 또한, 고속 워터 펌프와 5단계 수냉식 오일 쿨러로 냉각 효율을 개선했고, 신규 머플러와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을 더해 짜릿한 배기음도 완성했다.
⑤고강성 경량 보디 구조

늘어난 출력을 보완하기 위해 GR 팀은 86의 섀시를 꼼꼼히 보강했다. 우선 앞 서스펜션과 차체 사이에 대각선 크로스 멤버를 더했다. 앞 타이어의 하중 전달을 개선하고 비틀림 강성 또한 키웠다. 엔진룸은 벌집 모양 디자인에서 사선 프레임 구조로 바꿔 안정성을 높였다. 또한, 새로운 풀-링(full-ring) 구조를 통해 후면 강성을 키우고, 구조용 접착제의 적용부위를 늘렸다. 아울러 고강도 스틸과 알루미늄 소재를 차체에 전략적으로 배치해 밸런스를 높였다.
그 결과 GR86의 차체 비틀림 강성은 이전 세대보다 50% 더 강력하며, 공차중량은 구형과 같은 1,270㎏에 불과하다. 참고로 현대차 벨로스터 N의 공차중량이 1,385㎏이며, 위에 언급한 BMW M2가 1,590㎏, 포르쉐 카이맨이 1,440㎏, 재규어 F-타입이 1,650㎏이다. 즉, GR86은 이들보다 엔진 출력이 낮지만, 한층 가벼운 무게를 앞세워 후륜구동 경량 스포츠카의 본질적인 재미를 추구했다.

새로운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도 눈에 띈다. GR 엔지니어는 스티어링 기어박스 마운트를 변경하면서 기어비를 다시 조율해 정밀성을 높였다. 또한, 앞 서스펜션은 새로운 리바운드 스프링을 맞물려 핸들링 성능을 향상시켰고, 늘어난 출력에 대응하기 위해 스트럿 스태빌라이저 바를 서브프레임에 직접 연결했다. 짜릿한 코너링을 위한 토센 LSD도 기본으로 물렸다.
총평

모든 면에서 진화한 토요타 GR86. 40년 동안 쌓아온 86 고유의 가볍고 민첩한 섀시를 이어가되, GR 배지에 걸맞은 출력 보강을 통해 ‘화끈함’을 더했다. 무엇보다 부자들의 전유물처럼 자리한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평범한 월급쟁이도 구입할 수 있는 합리적 가격으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반갑다. 토요타 GR86. 올 상반기, 한국 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