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릴 양떼처럼 죽였다".. 모리오리족의 비극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고립된 섬 채텀제도에는 수세기에 걸쳐 모리오리족이 살았다. 그러나 1835년 12월, 이들 2000여명은 총과 곤봉·도끼로 무장한 900여명의 마오리족에 습격당하며 몰살당했다.
마오리족은 모리오리족을 살해해 많은 시체를 요리해 먹었고, 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삼았다. 모리오리족의 한 생존자는 “마오리족이 우리를 양떼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당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종족이 모두 1000년경에 뉴질랜드로 이주했던 폴리네시아 농경민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같은 조상을 둔 이들 두 집단은 헤어진 후 몇 세기에 걸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발전했다.
모리오리족이 이주한 남쪽 채텀제도는 먹고살 것이 풍부했다. 이들은 특별히 정교한 기술이 없어도 맨손이나 곤봉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조개류, 바다표범 등을 먹거리로 삼았다. 한랭한 기후여서 수집과 채집 위주로 발전하고 기술도 점점 단순화되며 후퇴한 것이다.
반면 북쪽으로 이주한 마오리족은 기후가 따뜻해 더욱 집약적인 농업에 매달리며 기술혁신을 이루었다. 농작물을 기르고 예술을 창작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가 발달했다. 잉여농산물을 생산해 저장하고, 정교한 의식용 건축물도 지었다. 막대한 수의 성채도 세웠다.
똑같은 조상 사회로부터 갈라졌지만 두 종족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고, 결국 기술의 발전을 수용한 마오리족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소개한 두 종족의 잔혹한 충돌 이야기의 핵심은 ‘혁신’이다. 혁신이 국가의 흥망성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유통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과 더불어 오징어게임·BTS 등 K-콘텐츠의 활약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낸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한국 유통산업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규모에 걸맞은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규제와 정치권력에 있다.
세계는 혁신 기업들의 각축장이다. 이들은 혁신적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로 무장해 세계 경제를 선도한다. 그러나 한국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국내 혁신 생태계가 침체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로 떠나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들도 늘고 있다. 국내 1세대 화장품 구독서비스 업체 미미박스는 미국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로부터 초기투자를 받은 뒤 본사를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비건화장품 브랜드 멜릭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사운더블헬스, 디지털 광고서비스 기업 뉴코애드윈드 등도 최근 미국이나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본사를 옮기거나 이전중이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한국 유통시장에 개입해 온 정치권력도 산업을 후퇴시키고 있다. 제윤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0월 국정감사와 기자간담회를 통해 영세 프랜차이즈 업체인 바르다김선생이 가맹점에 대해 불공정거래를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밀어내기식으로 재료구입을 강제하고 김밥의 주재료인 쌀에서 30% 이상 이윤을 남겨 폭리를 취한다는 내용이었다. 제 전 의원은 을지로(乙을 지키는 길)위원회 소속이었는데, 그는 이 회사를 “약탈적 사회의 증거”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바르다김선생이 쌀에서 얻는 이윤은 5% 수준이었고 브랜드 가치 유지에 필요한 대표적 재료만 필수품목이고 나머지는 권고품목이었다.
사안의 본질은 ‘후원금’에 있었다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제 전 의원은 비례대표가 되기 전인 2016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주빌리은행(금융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이재명 의원이 당시 공동은행장)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
이때 8개 프랜차이즈 회사 대표들과 모임을 갖고 후원금을 요청했는데, 이 중 한 곳이었던 바르다김선생이 결과적으로 후원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 전 의원 측은 후원 거절과 가맹점 갑질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업체는 보복성 갑질이라며 억울해 했고, 결국 피해는 죄없는 가맹점주들에게 돌아갔다. 어디 이뿐인가. 정치권의 후원금 요청에 돈을 보냈다가 범죄인이 된 기업인이 한둘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 거는 유통기업들의 기대가 크다. 정치권력의 외압과 이를 차단할 강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모리오리족의 비극은 현대 세계와 고대 세계를 막론하고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한다. 비뚤어진 국수주의 프레임을 깨고 규제를 철폐해 기업들이 마음놓고 혁신할 장을 마련해 줄 새 정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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