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국'은 통화발행 따른 대규모 무역적자 불가피.. 韓은 감당 못해

임대환 기자 2022. 3. 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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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 한국은 왜 기축통화국 못 되나

韓, 세계 10위권 무역국가 불구 원화 국제거래 비중 2.0% 불과 요건충족 못해… 사실상 美 달러만 기축통화 인정

실제 무분별한 국채 발행땐 국가 신용등급 악영향 → 해외자본 유출·투기펀드 먹잇감 전락 우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기축통화국’이 뜨거운 이슈가 됐다. 이 후보의 발언대로 과연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된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국제 사회에서 기축통화는 사실상 미 달러화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기축통화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된 ‘교환성 통화’와 혼동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축통화란 =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축통화(key currency)는 여러 국가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국제 거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통화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국제무역결제에 사용되는 통화 △환율 평가 시의 지표가 되는 통화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되는 통화 등의 의미를 포함한다. 20세기 초까지는 세계 금융경제 중심이었던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은은 정의하고 있다. 사실상 기축통화는 미 달러화가 유일하다는 점을 중앙은행이 공식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후보의 기축통화국 발언은 기축통화와 SDR 교환성 통화를 혼동했다는 게 전문가 다수의 시각이다. SDR는 IMF 회원국이 국제수지가 악화했을 때 IMF로부터 무담보로 국제유동성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다. 1974년부터 SDR의 가치를 여러 나라 통화에 연결하는 ‘바스켓 방식’이 도입됐는데, 현재 미 달러화·유로화·영국 파운드화·일본 엔화·중국 위안화 등 5개 통화가 바스켓을 구성하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 원화가 이 통화 바스켓 교환성 통화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기축통화국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없는 이유 = 기축통화를 정의하는 데에는 앞서 말한 조건 외에도 △초강대국 △무역적자 △첨단 금융시장과 국가 신용도 등 여러 요소가 고려된다. 국제적으로 경제력은 물론, 정치·군사력까지 인정받는 국가의 통화여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원화는 세계 10위권의 무역국가이기는 하지만, 이들 요소를 대부분 충족하지 못한다. 기축통화는 경제적으로 ‘절대권력’을 갖는다. 그래서 ‘기축통화국’과 ‘초강대국’은 동전의 앞뒷면 같이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내할 수 있느냐 여부도 기축통화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기축통화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해당 화폐의 활발한 유통을 전제로 한다. 미 달러가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달러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무역흑자를 내 세계에 풀려 있는 달러를 흡수해 버리면 그만큼 달러 유통량은 줄게 되고 기축통화로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갖지만, 반대급부로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내해야만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트리핀 딜레마’라고 한다.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 교수가 1960년대 사용한 용어로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로 인해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말한다.

원화는 이런 기축통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오랜 기간 이들 요건을 충족하기 쉽지 않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제결제통화에서 달러 비중이 39.92%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로(36.56%), 파운드(6.3%)가 뒤를 이었다. 원화는 20위권 밖에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에 따르면 원화의 거래 비중은 2.0%(2019년 기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내할 체력을 보유하지도 못했고, 그 경우 국가 신용등급 하락도 걱정해야 한다. 발권력 동원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무려 16조 달러(당시 1경7000조∼1경8000조 원가량)의 화폐를 찍어 위기를 돌파했다.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경제·정치적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국채 발행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큰 차이가 있다. 미 국채는 달러화에 기반한 안정성으로 국제 채권시장에서 기준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중국과 같은 확실한 매수자가 존재한다. 지난해 1월 기준, 중국의 미 국채 보유규모는 1조950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국제 시장에서 원화 베이스 국채 수요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무작정 국채를 발행하게 되면 높은 금리와 채무 증가로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외자본이 유출되고 국제 투기펀드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 펀더멘털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돼야 명실상부한 기축통화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채무 논란 = 원화의 기축통화 논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국가채무 증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TV토론에서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언급하며 국채 발행 여력이 충분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빠르게 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 앤 반 프라그와의 화상면담에서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주요국 대비 양호하다”면서도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채무는 빠르게 늘어, 올해 국가채무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660조2000억 원)보다 1.6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IMF는 재정점검보고서에서 “한국의 2026년 일반 정부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6.7%로, 선진국 35개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디스 역시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며 “장기간 유지해 온 한국의 재정 규율 이력을 시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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