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고통을 선택하라..진짜 삶이 보일지니

김유태 2022. 5. 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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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고통 / 폴 블룸 지음 /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1만7800원
온몸을 완전히 땅에 붙여 절하는 불교식 예법 `오체투지`의 모습. 저자는 종교와 문화 속에서 고통과 행복, 의미와 무의미를 사유한다. [매경DB]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건 재앙이었어. 인간이란 종은 불행과 고난을 통해 현실을 규정하지."

영화 '매트릭스' 스미스 요원의 대사다. 기계들이 인간의 가상세계를 창조하던 초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줬더니 모든 인간이 사망했고, 약간의 고통을 섞자 그제서야 가상세계 매트릭스가 작동했다는 뜻이었다. 발달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예일대 교수인 저자 폴 블룸은 신작 '최선의 고통'에서 이 대사를 인용하면서 '완벽한 세상'이란 없으며, 인간은 불행과 고난 위에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역설한다.

삶의 고통을 사유하는 책이 출간됐다. 인간의 현실사회에서 왜 고통이 필요한지, 또 그 고통의 의미가 뭔지를 추적한다. 모두 행복을 갈구하는 시대, 그러나 행복은 인간이 '꿈'과 달리 고통 위에 증축되는 무엇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한다. '인류는 고난을 선택하도록 설계됐다. 고통을 선택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고통을 선택하는 인간은 세계에 넘친다. 특히 종교가 그렇다.

모리셔스에서 열리는 힌두교 축제 참가자들은 뜨거운 석탄 위를 걷거나 꼬챙이로 자신의 볼을 꿴다고 한다.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고자 자해로 신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굳이 고대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런 풍경은 흔하다. 필리핀에선 가톨릭 신앙심을 증명하고자 채찍으로 자신을 학대해 피를 흘린다. 극단적인 종교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부동(不動)으로 구도를 이루려는 불교의 참선, 음식과 색욕을 금하는 이슬람교 라마단도 모두 고통에 근거해 종교의 교리를 추구한다.

굳이 종교뿐인가. 일상에서도 삶은 고통에 기반한다. 산소가 희박해 육체가 죽어가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탐하며 한계를 시험하는 이들이 있고, 혹자는 위장이 뒤틀릴 정도로 끔찍하게 매운 음식으로 자신의 혀를 자극한다. 이쯤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는 하나의 사실은 고통과 쾌락은 상당히 밀접한 감정이란 점이다. 지루한 운동과 맛없는 식사는 탄탄한 복근, 활기찬 노년을 얻기 위한 선택적인 고난이다. 더 큰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이란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특히 섹슈얼리티 측면에서도 고통과 쾌락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 고통이 쾌락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마조히즘은 사회 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양상이다.

육체의 쾌락 너머, 정신적 행복도 고난을 수반하곤 한다. 건강하고 재정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보통의 경우 그들은 그 행복을 유지하고자 더 많은 불안과 격정에 시달리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새벽 3시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분유를 타고, 지위와 돈을 얻고자 매일 출근하는 삶. 쾌락도 행복도 모두 각기 다른 크기의 고통 위에 쌓아올려진다.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길을 걷지만 현대인은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쾌락주의자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저자는 고통을 긍정하고 인정하는 반(反)쾌락주의를 긍정한다. 삶은 가치 있는 만큼 고통스러우며, 생의 여정에서 고난은 불가피하다. 인생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갈등 속에서 잉태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통과 고난을 거절한다면 인생이라는 필드에 던져진 현존재(하이데거)로서의 자아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통증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저자 주장의 본뜻은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쾌락을, 나아가 충만한 행복을 선사하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그 고통이 어떻게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 이후에 자신에게 맞는 '올바른' 고통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선택적 고난'이라고 표현하는데 올바른 시기, 올바른 방식, 올바른 정도의 고통은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설명해준다는 주장에 이르면 고통과의 친교가 그리 부정적인 것은 아니리라는 깨달음이 온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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