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부지런한 귀룽나무 새 잎, 꽃보다 예쁘더라
요즘 숲에서 보통 나무들은 이제 막 잎눈을 틔우거나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푸른 잎을 다 내서 펼치고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귀룽나무다. 요즘 숲에서 거의 한여름처럼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으면 귀룽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귀룽나무는 다양한 나무가 자라는 숲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무다. 지난 주말 서울 남산둘레길에서도 상록수를 제외하면 잎이 온전히 푸른 것은 귀룽나무가 유일했다. 이 나무는 주로 계곡가, 물이 흘러 습기가 충분한 곳에 자란다. 키가 10∼15m까지 자라고 지름도 거의 한아름에 이를 수 있는 큰 나무다. 우람한 메인 가지에서 사방으로 줄기를 늘어뜨려 큰 우산 같은 수형을 만든다.

이렇게 시원한 나무그늘을 만드니 일단 멋있고 여름에 참 좋다. 북한산 구기동 코스를 오르다 구기계곡 삼거리에서 승가사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아주 근사한 귀룽나무를 만날 수 있다. 마침 나무의자도 있어서 누구라도 그 그늘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서울 남산·북한산은 물론 안산·청계산 등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다. 청계산에 올랐다가 의왕 청계사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계곡을 따라 제법 큰 귀룽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룽나무는 4~5월 또한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확 눈길을 끈다. 꽃차례는 밑으로 처지는 원뿔 모양이다. 열매는 둥글고 여름에 검게 익는데 벚나무에 달리는 버찌 비슷하다. 귀룽나무는 벚나무 무리와 같은 속(Prunus)이다. 귀룽나무를 금방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꽃이 달린 꽃차례 아래쪽에 특이하게도 잎이 달린다는 것이다.

귀룽나무라는 이름은 구룡목(九龍木)이라는 한자 이름에서 유래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궁궐의 우리나무’에서 “귀룽나무란 이름은 ‘구룡’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하얀 꽃이 피면 뭉게구름 같다고 ‘구름나무’라고 부른다.

소설가 신경숙도 귀룽나무를 좋아한 모양이다. 수필집 ‘자거라 네 슬픔아’에 ‘귀룽나무 아래서’라는 글이 있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자주 오르내리는 산길에 귀룽나무 한 그루 있다. 어찌 드넓은 저 산에 귀룽나무가 한 그루뿐일까. 아마 산길 여기 저기에 수많은 귀룽나무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귀룽나무 한 그루’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그 나무 곁을 지나고 그 나무 밑에서 쉬고 그 나무를 올려다 보느라 고갤 쳐들었던 세월이 어느덧 십여 년이 되어가다보니 그 귀룽나무를 친밀하게 느껴서다. (중략) 그 귀룽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초봄이다. 새 혓바닥같은 연두색 잎사귀가 돋아있는 귀룽나무의 자태는 누가 봐도 독보적이다.>
‘새 혓바닥같은 연두색 잎사귀’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딱 요즘 귀룽나무 잎 모습이다. 신경숙은 이 글에서 “사람관계에서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이름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친밀감의 정도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며 “나무의 이름이 ‘귀룽’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산에 가기가 싫다거나 산에 올랐다가도 그만 돌아가고 싶을 적이면 그 나무가 떠오르곤 했다”고 했다. 귀룽나무를 한번 알아본 후에는 신경숙처럼 이 멋진 나무를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나무 심을 곳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귀룽나무를 심으려고 벼르고 있다. 먼저 귀룽나무 자리를 잡고 나머지 나무들을 주변에 배치할 생각이다. 어느 정도 습기만 확보하면 추위는 물론 음지나 공해도 잘 견딘다고 하니 정원수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고 하니 금상첨화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은 한 글에서 귀룽나무가 너무 빨리 크게 자라 작은 마당엔 심기가 어려울 지경이지만 너른 공원 같은 곳에는 너무도 좋은 나무인데 왜 많이 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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