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산''명량''노량'..영웅의 탄생

유창엽 2022. 4.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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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는 7월이면 영화관에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1592년 5월∼1598년 12월) 기간에 거둔 3대 대첩중 하나인 한산도대첩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되는데요.

배우 박해일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한 '한산:용의 출현'. 이 영화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두번째 작품으로, 2020년 9월 촬영을 마치고 지난해 여름 개봉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져왔습니다.

2014년 1천700만 관객을 모은 김 감독의 첫번째 영화 '명량'은 여전히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노량:죽음의 바다'도 지난해 촬영을 마친 상태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1545년 4월 28일 오늘날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사대부가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재(詩才)에도 특출했으며 정의감과 용감성을 겸비하면서도 인자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무과에 급제한 뒤 두번이나 백의종군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일본 수군과 맞붙은 해전에서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이라는 이른바 3대 대첩의 위업을 달성했는데요.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 초반인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55척으로 왜군 73척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말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을 유인해 학의 날개를 펴듯 둘러싸고 거북선을 통한 화력을 퍼부어 47척을 침몰시키고 12척을 빼앗았습니다. 이른바 학익진(鶴翼陣) 진법을 구사한 것입니다.

조선 수군은 사상자는 있었으나 전선 손실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대첩은 일본 수군의 주력을 거의 격파해 그들의 수륙병진계획을 좌절시켰습니다. 또 육지에서 잇단 패전으로 사기가 떨어진 조선군에 승리의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산도대첩은 진주대첩(1차 진주성 전투, 1592년 10월)·행주대첩(1593년 2월)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립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대첩을 거둔 지 5년 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 16일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 해협인 명량(鳴梁, 울돌목)에서 명량대첩을 거뒀습니다.

조선 수군은 13척으로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일본 수군 133척을 상대로 해 승리했습니다. 이번에는 일(一)자 모양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서는 '일자진'(一字陣) 진형으로 왜군을 공격해 31척을 격침했고 왜군은 도주했습니다. 이로써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의 서해진출을 차단, 전세가 조선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했습니다.

명량대첩 후 1년 2개월이 흐른 1598년 11월 18일과 19일 양일간 경남 남해도와 하동 사이 해협인 노량(露梁)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진린(陳璘) 도독의 명나라 수군이 200여척으로 일본 수군 500여척과 맞붙었습니다.

조명 연합군은 본국으로 철수하던 일본 수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19일 새벽 일본 수군 200여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척은 이순신 함대에 나포됐으며 나머지 패잔선은 도주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달아나는 왜군을 추적하던 중 총환을 맞아 숨을 거뒀습니다. 장군은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거둔 노량대첩으로 정유재란은 막을 내렸습니다.

정유재란(1597년 8월∼1598년 12월)은 일본과 명나라간 임진왜란 강화회담이 4년만에 결렬됨에 따라 조선을 재차 침공, 주로 한반도 하삼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 일대에서 일어난 전쟁을 말합니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일부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행사는 별세한 직후 시작됐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충무공 탄신일을 국가적 행사로 격상한 데 이어 1967년 1월 16일 문교부령으로 4월 28일을 충무공탄신기념일로 제정, 공포했습니다.

유창엽 기자 변정현 인턴기자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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