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딸 글이 "습작"? 서울대도 학술논문으로 제공

장경욱 입력 2022. 5. 16. 16:09 수정 2022. 5.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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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습작 수준 글을 두고 수사는 과하다"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주장 확인해보니

[장경욱 기자]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학술자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Industry 4.0 and Future of Korean Steel Sector"(4차 산업과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가 학술 논문으로 제공되고 있다.
ⓒ 서울대학교
지난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고교생 딸의 논문 대필 의혹 질문에 '습작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날 한동훈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질의에 답하면서 딸의 논문은 "고등학생이 연습용으로 한 리포트 수준의 짧은 글들"로 "2~3페이지, 많으면 6페이지의 영문 글을 모은 것이다. 습작 수준의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수사까지 말씀하는 건 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후보자의 딸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논문 여덟 편을 확인해 보니 2~3페이지 논문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4페이지 이상의 분량이고 10페이지 정도로 작성된 논문도 세 편 보였다. 이들은 목차 구성과 참고 문헌 표기 등에서 저널이나 학술대회 발표 논문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한 후보자 딸의 저술이 국내 학술 연구자들에게는 어떤 연구물로 유통되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학술 자료에서 한 후보자 딸 이름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다. 4차 산업을 주제로 쓴 한양의 연구물 "Industry 4.0 and Future of Korean Steel Sector"(4차 산업과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가 학술 논문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제목 위에는 '논문' 분류 표기가 있었고 아래에는 한 후보자 딸의 영문 이름이 공동 저자로 나타났다. 논문에는 총 10페이지라는 분량 표시와 더불어 '원문 이용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도 붙어 있었다. 한양의 저술이 국내 연구자들에게는 학술 논문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한양의 저술이 국내 연구자들에게 정식 논문으로 제공되는 사례는 더 있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전기전자학회(IEEE)의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양이 발표한 논문 두 편이다. IEEE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해당 학술대회의 '프로시딩(Proceeding)' 메뉴 아래에 한양의 발표 논문이 소개되고 있었다. 프로시딩이란 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 책으로 발간한 것을 말한다.

IEEE의 프로시딩은 국내 대학의 도서관에서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학술 자료에는 한양이 참여한 학술대회의 프로시딩이 전자책의 형태로 이용 가능했다.

국내 대학 연구자들에게 한 후보자 딸의 논문이 학술용으로 제공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 논문들은 표절이나 대필 의혹이 제기되었고, 논문 작성 당사자인 한양이 "학습한 것을 아카이브로 쌓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논문이 진지한 학술 논문들과 구분되지 않은 채 전공 분야 연구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것은 국내 학술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학문 연구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

아무리 특권층이라고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
 
 전기전자학회(IEEE)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IEEE 국제학술대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발표한 논문 두 편이 해당 학술대회의 '프로시딩(Proceeding)' 메뉴 아래에 소개되고 있다. 프로시딩이란 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 책으로 발간한 것을 말한다.
ⓒ IEEE
또한, 한양의 학회 발표 논문이 IEEE의 프로시딩에 수록되어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시딩에 실린 논문은 국내 다수 대학들의 교수업적평가에서 연구실적으로 인정된다. 지난 4월 교육부가 미성년 저자 논문의 전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프로시딩에 수록된 학회 발표 논문까지 대상으로 포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0년 나경원 전 의원 아들의 논문 부정 논란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 후보자의 딸과 마찬가지로 IEEE 국제학술대회에 포스터 논문을 발표했던 나 전 의원 아들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로부터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조사받았었다. 나 전 의원 아들의 경우 1페이지 분량의 발표 논문이고 프로시딩에도 실리지는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5페이지 분량에 프로시딩에까지 수록된 한 후보자 딸의 발표 논문은 명백하게 연구 윤리 검증 대상이다.

"혼자 아카이브한 습작물에 대해 수사를 언급하는 것이 과하다"는 한 후보자의 해명은 이들 논문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한 후보자의 딸이 대학을 거치지 않는 독자적 경로로 국제학술대회에 발표를 한 점도 매우 기이한 사례다. 우리나라 고교생은 부모가 공대 교수가 아닌 한 그런 학회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다.

설사 학회를 안다고 해도 학술대회에 등록 및 참가하는 방법, 논문을 발표하는 절차 등을 전혀 알지 못한다. 고교생이 대학이나 연구소와 연계 없이 IEEE에 논문을 발표하고, 심지어 단독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아무리 특권층이라고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 후보자 자녀의 입시 준비 과정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특권층에서도 전혀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대거 등장한다. 중학생이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해외 언론에 인터뷰 기사를 싣는 활동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고등학생이 단독으로 국제학술대회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약탈적 학술지라는 곳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 학술저널의 같은 호에 세 편의 논문을 동시에 올리는 것은 대학에 오래 근무한 교수로서도 처음 듣는 일이다.

외국인이 도움을 주거나 공저자로 참여한 것에 대해 대필이나 표절 등의 연구 부정 의혹은 타당해 보이며 고교생이 아카이브한 리포트라는 해명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는 없다. 의혹에 충분한 해명을 제시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몫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상상 못한 '아이비캐슬'이라거나 '국제캐슬'의 스펙 쌓기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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