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등장하는 순간 세계가 숨을 죽였다"

거인(巨人) 이어령이 남긴 발자취는 깊고 또 넓었다. 박정자 연극배우,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이문열 소설가, 정중모 열림원 대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나다순)가 들려주는 ‘이어령과 나’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
인생 자체도 당신이 설계한 대로 연출하셨다
▶연극배우 박정자
2005년 연극 ‘19 그리고 80′ 때 내가 ‘굴렁쇠 소년’ 윤태웅을 캐스팅하니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그러면서 막상 공연장엔 못 오셨는데 어느 모임에서 나한테 신신당부했다. 아드님처럼 생각하신 것 같다. 정말 좋은 청년이니까 윤태웅을 배우로 잘 이끌어달라고. 어떤 사정으로 구경은 못 오셨다. 늘 한번 저한테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하곤 그 약속을 못 지키셨다. 윤태웅을 내가 연극 무대로 불러왔다는 데 대한 고마움을 나를 볼 때마다 말씀하셨다. 저런 분이 끝내 잊지 않으시는구나, 그렇게 분주하고 하실 일도 많고 생각도 많으실 텐데 그 고마움을 잊지 않으시는 어른이시구나.
나도 좀 가까이하고 싶은데,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멀었어. 좋아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고 관심사도 다양했고. 곁을 잘 주시지 않는 분이셨다.
이어령 선생이 2019년 12월 ‘이상의 집’에서 강연하실 땐 나는 시를 읽으러 갔다. 그날 마지막으로 뵈었다. 내가 낭송을 하고 나니 “시는 저렇게 읽는 거야, 낭송은 저렇게 하는 거야”라며 칭찬해주셨다. 시 제목은 기억이 안 나네. 누구나 다 그렇게 회고하겠지만, 암 투병 중이신데도 당신이 입을 여시면 그 열정,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식이 정말 보고(寶庫)잖아 보고, 그걸 펼쳐놓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호기심이 넘치지만 군더더기는 없는 학자의 모습이었다. 그런 어른이 가시니까 어깨가 허전하다.
배우 윤태웅에게는 그것이 데뷔작이었다. 오디션을 봤는데 ‘굴렁쇠 소년’이라는 걸 알고 바로 캐스팅했다.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등장한 순간은 전 세계가 숨을 죽이고 본 장면이었잖나. 정말 고요했지. 걔가 모자부터 티셔츠, 반바지, 운동화까지 하얗게 하고 나와서 굴렁쇠를 굴리던. 이어령 선생은 그렇게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연출을 하신 분이었다(※”잔디밭 위에 쓴 詩처럼 靜寂으로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순간”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분의 인생 자체도 당신이 설계한 대로 연출하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관 시절 ‘박물관 문화 상품에 청자 문양을 넣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내가 한 항렬 아래인 친척이지만 공직에 있으면서 한 번도 사적으로 나를 대한 적은 없었다. 내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을 할 때 문화부 장관을 하고 계셨다. ‘박물관 문화 상품에 청자 문양을 넣는 게 어떠냐’는 등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를 무척 많이 줬다.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고 아이디어도 많아 놀랄 때가 많았다. 가야 특별전 할 때는 전시장에 가야금 음악을 틀라는 아이디어도 냈다. 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긴 뒤 특별 강연을 해 달라고 초청을 했는데 청중이 가득 들어차 복도에까지 서서 들을 정도였다.

55분 동안 말씀하시고선 내게 '이 선생 아이디어는 뭐지? 뭘 생각해왔지?'라고 물으셨다
▶이문열 소설가
문화부 장관 취임했을 때 뵀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장관 되시고 한 달도 안돼 전화가 왔다. 연배로 보나, 나와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는 분이 먼저. “일주일 시간을 주겠다. 나에게 줄 아이디어 좀 생각해보시라. 이문열씨이니까 1시간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 선생님 아이디어가 많았다. 55분 동안 듣고 5분 남았을 때 나에게 “이 선생 아이디어는 뭐지? 뭘 생각해왔지?” 물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생각이 넘치고 특유의 번뜩하는 발상을 많이 했던 분이다. 남이 못 본 걸 찾아내는 관찰력 같은 게 비범했다. 다 같은 사물 에서도 작은 차이 찾아내서 논리화하는 능력이 놀라웠던 분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 같은 경우에도 절묘하지 않나.
당시 이어령 선생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얘기했다. 번역이나 해외 출판 지원 기금 같은 게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번역원도 지원 사업도 없었다. 문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문화부장관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1990년 이전에 가까이했다. 암 투병하고 돌아가실 무렵인 최근 근황에 밝지를 못하다. 이래저래 특별한 인연이 닿진 않았다. 1980년도에는 이 장관님이 자주 민음사를 찾아왔다.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하고 서울대 문리대 동기니까.

절대 병원에 안 들어가시고 끝까지 당신이 내야 될 책들에 온 힘을
▶정중모 열림원 출판사 대표
이어령 선생님이 조금 더 세상과 소통하는 책을 내는 작업을 함께하고자 했다. 그래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같은 책을 밀어붙였다. 선생님이 낯뜨거워서 안 하려고 하는 거였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딸 이야기 해서 책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안 내려 하셨다. 선생님은 딸 고(故) 이민아 목사 때문에 세례를 받았지만, 이민아 목사처럼 절대적인 신앙의 삶을 살 수 없다 생각했다. 선생님은 항상 신앙의 문턱에서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고, (문턱을) 절대 넘어가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 제가 예배를 보러 교회에 갔는데 목사의 지난 설교 제목이 ‘이어령의 회심’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문자 드렸다. “선생님 여기 지난주 설교 제목이 이어령의 회심입니다”했더니 선생님의 마음이 열렸다. 그래서 내게 됐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낯설어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은 하나 남겨놓아야 한다. 객관적인 시점에서 선생님 바라보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래야 선생님에 대한 객관적 인상이 남을 것 같았다. 선생님도 마음을 넓히고 마지막 정리에 응해주셨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이민아 목사님에게 아마 미안해서 쓰신 글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과하고 한편으로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메멘토 모리’는 오랜 시간 선생님이 병상에서 끝까지 완성한 책이다. 선생님은 당신의 언어로 사신 분이잖아요. 책에서 시작해서 책으로 마무리하신 것 같아요. 절대 병원에 안 들어가시고 끝까지 당신이 내야 될 책들에 온 힘을 다 쏟으셨죠.
이어령 선생의 신간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가 곧 나온다. 3월 15일이 딸 이민아 목사 10주기라 거기에 맞춰 시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서문을 지난 22일 전화로 불러주셨다. “네가 간 길을 이제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헌팅턴비치는 이민아 목사님이 살았던 곳이다. 시집 4부가 따님에 대한 시들이었다.
늘 우리 모두 앞에 있던 ‘진정 시대를 앞서간 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명과학자
황망하다. 이어령 선생님 관련해 글을 써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글 끄적이면서 먼저 떠오른 단어가 ‘창의’ 였다. 이어령의 다른 이름은 창의였다. 우리 현대사에 그분만큼 창의적인 분이 계셨을까. 다른 사람을 댈 수 없다. 가장 창의적인 분 아니셨을까.
선생님이 남긴 키워드는 ‘광화(光化)’. 2~3년 전쯤 얘기하셨는데, 광화는 그야말로 세상을 빛나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이 가진 가장 큰 힘이 광화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세상을 밝게 만들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게 마음에 남는다. 우리나라가 큰 나라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창의성과 도전정신 그런 것들로 한국 사람들이 세상을 밝게 만들 거라는 얘기였다. 굉장히 희망적인 말씀이었다.
자연과학자로서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져온 데는 이어령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서울대에서 이화여대로 옮긴 이후 학내 행사에서 퇴임하신 이어령 선생님을 뵈었다. 개인적으로 인사드린 적은 없었는데, 저한테 다가오셔서 “(당신이) 이화에 와서 좋아요”라고 하셨다. 그게 굉장히 힘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연과학에 머물러도 됐을 텐데 ‘통섭’을 주장하면서 ‘생물학이나 하지 왜 나서냐’는 시선을 받던 시기다. 그럼에도 이어령 선생님께 격려를 받은 듯해서, 선생님 뒤따라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해봐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어령 선생을 ‘시대의 지성’ ‘우리 시대의 스승’으로 묘사한다. 절대 모자라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진정 시대를 앞서간 분’이라는 표현만큼 잘 어울리는 표현이 또 있을까. 선생님은 늘 우리 모두를 앞서가셨다. 훨씬 연세가 높으신데 모니터 몇 개씩 놓고 둘러보시면서 작업하셨다. 모든 선생님의 삶에서 미래를 맞이하는데 거침이 없으셨다. 말 몇 마디로 앞서가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셨던 것 같다.
이어령 선생님이 화두로 던졌던 ‘디지로그’(digilog)라는 개념이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디지털 아날로그 공존하는 세상을 보신 거다. 굉장한 혜안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설명하는 미래학자들이 있다. 마치 과거와는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만든 디지로그라는 표현은 절묘하게 ‘절대로 그런 세상은 없다’고 지적한다. 미래는 과거의 관성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미래가 펑하고 갑자기 새로운 공간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과거가 현재라는 찰나를 거쳐서 그 관성으로 미래로 나타나. 저는 그것을 선생님 디지로그 개념으로부터 이해했다. 남다르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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