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나오는 드라마도 못보겠더라".. 인기 작가도 당한 전세사기 [사모당]
'루나파크' 홍인혜 작가 "부끄러워..자괴감에 어디 하소연도 못해"
"직접 경매에 들어가 살던 집 낙찰받았다" #사기, 모르면 당한다

“편하게 말하기까지 사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난 2015년 가을, 홍인혜(40)씨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렵게 마련한 서울 전셋집으로 압류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집을 구할 때 확인해 본 등기부등본에는 분명 별다른 빚이 없었다. 뒤늦게 알고보니 집주인은 채무 소송 여러 건에 걸려있었고, 세금도 잔뜩 체납한 상태였다.
집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인혜씨가 인내해야 했던 시간은 약 3년. 이 모든 경험을 작년부터 ‘루나파크’란 예명으로 웹툰 ‘전세역전’ 속에 실어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웹툰에 독자가 늘어갔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전세사기예방 웹툰도 함께 그렸다.
하지만 이 모든 고백이 쉽지만은 않았다고도 했다. 일이 터졌을 때 부모님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없길” 바라며 용기를 낸 인혜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장 아픈 한 마디... “잘 알아보지 그랬어”
-전세보증금을 잃게 됐을 때, 부모님한테도 말 못 했다고 들었어요.
”‘멍청해서 당했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도 아팠지만,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밀려오는 게 더 아파서 차마 말씀을 못드렸어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때 얻은 이명(耳鳴) 증세가 아직도 따라다녀요.”
-처음 전셋집 구할 때는 이런 문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요?
“네, 전혀요. 차라리 집을 대충 알아봤으면 덜 속상했을거에요. 등기부등본 확인은 물론, 집 구할 때 꼭 봐야할 체크리스트까지 작성해 들고 다녔죠. 집주인과 중개사가 ‘꼭 정부에서 나오신 분 같아요’란 말을 할 정도로 꼼꼼히 챙겼죠. 전입신고, 확정일자도 당연히 제때 받았고요.”

-그렇게 했는데도 왜?
“집주인이 약 5000만원 가량 개인 빚으로 소송 중이었고, 1억원대 세금이 밀려 있는 것도 큰 문제였죠. 제가 살던 집에는 근저당을 걸지 않은 채무들이어서 등기부등본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거죠. 부동산에서도 ‘요즘 보기 드문 융자없는 매물’이라고 엄청 강조했었거든요.”
-집주인은 어떤 분이었나요?
“여러분, 정말 ‘사기 칠 인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셔야 해요.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의 중년 여성 분이었는데, 얼굴만 보면 정말 제게 한 행동과 전혀 매치가 안 됐죠. 그래서 더 기가 막혔어요. 압류 통지서가 날라왔을 때도 집주인은 ‘내가 5000만원 때문에 집을 날리겠냐’며 큰소리를 쳤어요.“
-부동산 중개인은 뭐라던가요?
”딱 한 번 통화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나’ 하면서 허허 웃더라구요. 그게 끝이었어요. 거래 당시에 없던 일이니 우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반응이었죠. 제가 뭘 더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등기부등본에 문제가 없던 거니까...”
-보증보험(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따로 안 들었나요?
“이사 후 한 달째 가입을 알아보던 도중 압류 사실을 알게 됐어요. 퇴근하면서 우편함에 꽂힌 압류 통지서를 처음 발견하고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빨간 딱지’를 직접 봤으니까요.”

◇경매, 문제 해결 아닌 고통의 시작
-일단 강제 경매 절차로 집이 팔리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던 것 아닌가요?
“원칙적으로는 맞죠. 앞서 말했듯 전입신고일, 확정일자를 제대로 받아 돈을 돌려받을 1순위 채권자였거든요. 문제는 집주인이 당해세와 각종 국세를 잔뜩 미뤄놨던거죠. 이 세금들은 제 보증금보다 선순위 채권이거든요.”
-집값이 비싸게 낙찰되면 세금 등을 내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 않나요?
“그렇게 됐어야 했죠. 실제 첫 경매 때 집이 제대로 팔려서 그게 가능했어요. 하지만 집주인이 ‘헐값에 팔 수 없다’며 공탁금까지 걸고 연기, 취소를 반복하며 낙찰 과정을 막았죠. 그렇게 2년 가까이 버티더라고요.”
-경매가 지연되면서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막막했어요. 그 사이 세금에 가산세가 붙었거든요. 가뜩이나 1억원대 고액체납이라 약 2000만원까지 추가로 눈덩이처럼 가산이 붙었죠. 집주인은 이를 갚을 의지도 전혀 없었고요.
이런 매물은 경매에서 아무도 사고 싶어하지 않아요. 결국 잘 안 팔리는데 세금만 계속 불어나는 집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졌죠.”
-돈은 돌려받았나요? 문제는 어떻게 해결됐나요?
“직접 경매에 참여해 집을 샀어요. 이 지옥문은 내가 직접 닫겠다고 생각했죠. 있는대로 돈을 끌어모아 혼자 독학으로 경매에 뛰어들었어요. 하필이면 집주인 세금 문제 때문에 일반 경매가 아니라 공매로 진행돼 더 애를 먹었죠. 비용 손해도 많이 봤고요.”
-혼자서 경매를 배워 낙찰까지 받는 건 쉽지 않았을텐데...
“저 같은 세입자들이 경매 정보를 얻을 곳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일반 경매 온라인 카페를 찾았죠.
그곳에선 저 같은 선순위 세입자를 쉽게 내보내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었어요. 그분들이 나쁜 건 절대 아니에요. 법적으로 문제 없고,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문제죠. 하지만 저처럼 나쁜 집주인 만나 문제가 생긴 당사자로서는 참 서글펐습니다.”
-경매에 뛰어들어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경매 과정에선 좀 공포스러울 정도로 집이 오픈돼요. 일단 각종 경매 사이트와 블로그 등 수십 군데에 문제 생긴 매물로 우리집 사진, 주소가 공개되죠. 이걸 본 법무사무소, 경매업체, 대부업체 등 곳곳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우편물을 보내요. 하루 수십통씩 우편함에 꽂혀요. 제 집이 그냥 만천하에 상품이 되는거죠.”

◇스스로 치유를 위해 그린 ‘웹툰’
-전세사기 경험담 웹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사실 처음엔 스스로를 위한 게 더 컸어요. 제 웹툰 보시면 당시 상황 서술하는데만 긴 분량을 썼거든요. 그만큼 길고 복잡하고, 누군가 붙잡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며 이해받고 싶은데, 남의 일에 그만큼 관심 갖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주변 분들에게 털어놓는 일이 어려웠나요?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부끄럽고, 무섭고, 막막했어요. 말 하면 경악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오는데 거기서 마음이 무너졌죠. 남의 입으로 내 문제를 들으니 진짜 망했구나 싶은 거에요. 그래서 전세사기 관련 드라마 장면, 기사들 절대 안 봤어요.
예방을 위해서는 추천해도, 비슷한 피해 겪으신 분들에게 공감용으로 제 웹툰을 적극 추천드리지는 않는 이유에요. 위로가 됐다, 마음이 힘들어서 나중에 보겠다 등 실제 독자 반응도 반반으로 갈렸죠. 저는 후자의 심정이 어떤지 너무 잘 알아요. 직접 겪었기 때문이죠.”
-전세사기 피해 이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8년 결국 집 사는데 성공했어요. 드디어 내 일상이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동안 마음놓고 휴가 한번 못갔어요. 어느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현타(현실자각 타이밍)가 오더라구요. 나 없는 사이 경매가 개시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늘 불안하게 했었습니다. 두루마리 휴지조차 대량 구매가 망설여졌어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데 내가 짐을 늘려도 될까.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집에 매여 살아야 하고, 당장 내일의 계획을 세우기 두렵다는 게 가장 힘들었죠.”
-지옥문이란 표현이 무섭네요.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전세사기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시를 썼어요. 그렇게 쌓인 게 한 3~40편 됐죠. 그 중 10편을 응모했는데 ‘두두’라는 시로 등단을 하게 됐어요. 마침 경매 문제가 다 마무리 된 직후였죠.”
◇전세사기, 예방은 ‘불편함’ 직설
-길고 긴 전세사기 터널을 지나면서 깨달은 예방법이 있을까요?
“좀 더 불편함을 말하기 쉬운 사회가 돼야 막을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전셋집 문제를 겪은 당시엔 전세보증보험을 드는 것 자체도 흔한 일이 아니었죠. 집주인 개인 채무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도 아무도 안 알려줬고요. 설사 알려줬다고 해도 이 부분을 확인시켜달라고 세입자가 요구하기도 쉽지 않죠.
집주인들 입장에서도 집 계약은 신뢰의 문제잖아요. 그런데 이런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집주인 분들까지 단체로 매도당할 때가 있는 게 안타까워요. 상호 간의 신뢰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서로 명확히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세입자도 안심되고 아무 문제 없는 집주인 분들까지 괜한 오해 받지 않을 테니까요.”
인터뷰가 끝난 뒤 인혜씨는 직접 그린 ‘좋은 전·월세 구하기 체크 리스트’를 선물이라며 보내줬다. 전월세 사기 방지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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