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생일까지 챙기는 대기업 오너들..3세 경영인, 뭔가 다르네

이유섭 2022. 4. 1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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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장대' 제조업계 새 바람
수평·소통 행보 직원에 인기
생일 맞은 직원 찾아가 축하
익명 보장된 게시판 만들고
노사협의체 구성 먼저 제안
"강한 리더십보다 효과 크다"
'상명하복과 위계질서, 사무직은 정장·현장직은 유니폼.'

철강, 중공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제조업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다. 정보기술(IT)·플랫폼 산업과는 달리 지금도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경직된 근무 형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굴뚝산업의 리더십과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30·40대 젊은 오너 3세들이 변화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LS전선에는 최근 구본규 대표이사(부사장·43)의 제안으로 온라인 익명게시판이 만들어졌다. 구 대표는 고(故) 구태회 명예회장 손자이자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이다. 구 대표는 익명게시판을 개설한 이유로 "직원들 의견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사 '검열'을 우려한 직원들에게 담당 임원이 '절대로 글을 쓴 사람을 추적하지 않겠다'는 글을 먼저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 대표는 올해 초 취임한 후 지금까지 지방 사업장 등 현장을 10차례 방문했다. 거의 매주 간담회를 열었다는 의미다. 그는 "LS전선의 모든 직원을 만날 때까지 현장 방문을 계속할 것"이라며 "조직문화든, 사업 결과물이든 내가 아니라 직원들이 만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극적인 소통 행보는 LS엠트론에 있을 때부터 유명했다. LS엠트론에는 생일을 맞은 직원을 알려주는 게시판이 있는데, 구 대표는 시간 날 때마다 해당 직원 자리에 직접 가서 축하를 해주곤 했다. LS 관계자는 "구 대표가 LS전선으로 옮길 때 LS엠트론의 MZ세대 직원들이 아쉬워했다"며 "앞으로 LS전선 임원들이 구 대표의 수평적 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쫓아가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철강업체 세아홀딩스의 이태성 사장(44)도 젊은 직원들의 지지를 받는 오너 3세로 불린다. 이 사장은 세아를 창업한 고 이종덕 명예회장 손자이자 2013년 해외 출장 도중 심장마비로 작고한 이운형 전 회장의 아들이다. 이 사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지주사에도 직원들의 고민과 고충을 들을 창구가 필요하다며 먼저 노사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현재 운영 중이다. 임직원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는 인사관리(HR) 설명회나 문화 행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사내 카페·사무실에서 먼저 직원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그는 '정직·열정·실력'이란 회사 핵심 가치를 지키는 것을 중시한다. 매년 회사 가치를 가장 잘 준수한 직원 3명을 뽑아 트로피·특별휴가·휴가비 등을 제공한다. 이 사장은 '내 자녀가 입사했으면 하는 회사'라는 말이 상대방에게 가장 듣고 싶은 칭찬이라고 꼽았다.

정기선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 사장(40)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회사 생활을 현대중공업 대리로 시작한 그는 유학 후 재입사해 울산 본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할 때도 회사 주변 밥집이나 술집에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사장이 된 후에도 말단 직원 의견까지 듣는 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사업이 조선·에너지·건설기계라는 '제조업 중 제조업' 성격이다 보니 과거처럼 하향식 의사 결정으로 조직이 경직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 관계자는 "정 사장은 젊은 세대가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세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장남인 김동관 사장(39)이 이끄는 한화솔루션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기존에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나뉘었던 직급을 지난달부터 '프로'로 통합했다. 이런 시도를 한 것은 한화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유일하다. 평소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강조해 온 김 사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한화솔루션은 사무실에서 '자율 좌석제'를 가장 먼저 시행한 한화 계열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전통 제조업계 오너 3세들도 할아버지·아버지 시절의 '강한 리더십'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며 "수평적 소통 행보에는 중후장대 기업의 리더로서 젊고 유능한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는 고민도 깔려 있다"고 전했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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