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700원→3225원→상폐"..'개미 피눈물' 금융범죄 수배자 왜 못 잡나

박수현 기자 2022. 6.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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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중 FTA가 타결됐던 2014년 말. 코스닥 상장사 씨그널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4년 하반기 700원 이하에 머물던 주가는 연말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해 이듬해 9월4일 주당 3225원을 기록했다. '가상화폐 열풍'에 버금가는 상승폭이었다.

그 배경엔 대표 김모씨를 비롯한 기업사냥꾼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채와 저축은행 대출금 등으로 자금을 동원해 회사를 인수하고 허위 공시로 주가를 부양, 부당 이득을 챙겼다. 결국 씨그널엔터는 주가 급락 끝에 2018년 5월4일 상장폐지됐다.

씨그널엔터의 상장폐지로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는 1만 명이 넘는다. 이 사건으로 임원 홍모씨 등 3명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실형과 억대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1심 재판 도중 보석으로 풀려난 후 도주했고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던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이 부활했다. 수사권이 없어 '반쪽 부활'로 꼽히던 협력단 대신 합수단을 통해 서민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경제범죄에 빠르게 대처한다는 취지다. 수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국가경제에 타격을 주고도 거리를 활보하는 자본시장 교란범들을 잡아 처벌하는 데 합수단이 우선적인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조작으로 억대 수익 가로채는 기업사냥꾼…피해 떠안는 개인 투자자
13일 법원 등에 따르면 김씨의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2020년 7월17일 1심 선고기일을 연기한 뒤 이날까지 기일을 지정하지 못한 상태다. 김씨가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고 2년 가량 소재불명 상태여서다.

김씨 등 4명은 2015년 9월 '중국계 투자회사가 씨그널엔터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내용의 허위 공시 등으로 주가를 부양해 부당이득 171억원을 취득한 혐의로 기소됐다. 씨그널엔터는 수십명의 연예인을 관리하고 드라마 '비밀의 숲' 등을 제작하며 2017년 매출이 256억원에 달하는 회사였다.

한·중 FTA로 중국 투자가 봇물을 이루던 당시 국내 엔터사의 중국시장 진출은 주식시장에 큰 호재였다. 씨그널엔터도 중국 투자사에 인수된다는 내용의 허위 공시와 보도자료로 주가가 대폭 올랐지만 끝내 상장폐지됐다. 상장폐지 직전 해인 2017년 9월30일 기준으로 씨그널엔터의 소액주주 비율은 99.99%(1만935명)이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 사건의 피해자 A씨(50)는 "전처가 결혼 생활 중에 당시 살던 집의 월세 보증금에 대출까지 받아 씨그널엔터에 수천만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다"며 "당장의 생활비도 없어져 생계가 어려워졌고 투자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에는 이혼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금융범죄를 저지르고 자취를 감춘 사람이 김씨만은 아니다. 희대의 기업사냥꾼으로 꼽히던 H씨 일당은 2014년 8월 코스피 상장기업 디지텍시스템스를 인수한 뒤 회삿돈 17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이 회사는 인수 직전 1년 매출이 2000억원을 넘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디지텍시스템스는 횡령으로 재무상황이 열악해져 인수 2년 만에 상장폐지됐다. 이 범행으로 재판에 넘겨진 공범들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H씨는 수사망을 피해 도주했다. H씨는 2007년 자동차 용품 제조업 등을 하는 코스피 상장기업 A사를 인수한 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도 받고 있었다.

몇몇 사건에선 '등장인물'이 겹치는 일도 다반사다. 씨그널엔터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홍씨는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에서 본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홍씨는 고등학교 선배였던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에게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를 소개해준 인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자본시장 교란사범이 죗값 치뤄야…'자유로운 시장'·'공정한 규칙' 실현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인식에 잊을만하면 대규모 피해를 유발하는 사태가 재발한다. 남부지검 합수단은 루나·테라 폭락 사태를 '1호 사건'으로 수사 중이다. 루나·테라는 지난달 중순 가격이 98% 가량 폭락해 국내 투자자 약 28만명의 피해를 유발한 가상자산이다.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이 참여했고 갑작스럽게 가격이 하락한데다 개발사 대표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점에서 씨그널엔터 사건을 닮아있다.

지난 2일 기준으로 테라·루나로 피해를 보고 남부지검 합수단을 찾은 투자자는 총 104명, 피해액은 101억원으로 파악됐다. 이 사태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등은 사기,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피소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 언급한 '자유로운 시장'과 '공정한 규칙'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장 교란 사범들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합수단의 부활도 자본시장 교란 사범에 대한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를 통해 '주가조작은 반드시 적발·엄단된다'는 시장 규율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는 평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범죄는 계획적인 경우가 많아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해외로 도피할 계획을 세우거나 국내에 은신처 등을 만들어 두는 방식으로 도주를 준비해 상대적으로 검거가 어렵다"며 "합수단이 집중적인 수사를 하면 검거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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