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19) 연등의 화려함에 취해 힘든 삶 잠시 잊으시라
[경향신문]

세상 번뇌가 풍선처럼 떠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한 연등이 중생들의 소원을 품고 불어오는 바람에 꼬리표를 간절히 흔들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로 충만한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조계사에 빽빽이 들어찬 연등은 연꽃 모양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내 몸을 더럽히지 말고 수행하라’는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그 모양새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불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연꽃은 영어로 ‘Lotus(로터스)’인데 얼마 전에 타계한 김지하 시인이 제3세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터스상’을 1975년에 옥중에서 수상했다. 진흙탕처럼 부정부패한 박정희 독재정권에 연꽃처럼 저항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연꽃을 닮은 연등은 ‘가난한 자의 등불이 가장 밝게 빛나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아빠찬스 같은 공정하지 못한 어두운 사회에서 그 빛을 발해야 한다.
조계사는 일제강점기 서울 사대문 안에 세워진 최초의 절인데 종로 한복판,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자동차 경적, 매연에 공기도 맑지 않고 입지조건이 안 좋다. 산새들 지저귀고 청량한 공기에 여행코스로 찾아가는 심산유곡의 고즈넉한 여타 절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1971년 조계사 사진에는 교복 차림의 여고생 모습도 보이는데 하굣길에 들른 것 같다. 이처럼 조계사는 중생들이 찾아가기에 접근성이 좋은 ‘함께’하는 동네 절 같은 분위기다.
이런 조계사가 사치를 부리는 날이 있는데 부처님오신날 연등행사다. 2022년 오색찬란한 연등 사진 못지않게 1971년 연등도 그 위세가 대단하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로 중생들이 햇볕을 피하게 해주는 대웅전 앞마당의 회화나무가 연등을 자기 몸에 주렁주렁 걸어주고 있다.
400살을 훌쩍 넘긴 회화나무는 가톨릭 영화도 한 편 봤다. 한국 불교의 대표 사찰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2011년에 김수환 추기경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상영하자 가톨릭계에서 화답으로 부처님오신날에 법정 스님의 영화를 명동성당에서 불교 신자, 가톨릭 신자가 어우러져 보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게 내 마음의 연등을 밝혀 남들과 소통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 탄생일의 크리스마스트리와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화려함에 중생들이 취해 무자비한 세상의 힘듦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게 종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 아닐까?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받아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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