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 미녀 천재 사기꾼, 꽃미남 무장강도..모두가 홀딱 넘어갔다 [왓칭]
범죄 콘텐츠가 이렇게 넘쳐나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TV를 틀면 사진과 영상자료에 덧붙여 희대의 범죄 이야기를 풀어 놓는 스토리텔링 형태의 범죄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는 연쇄살인마부터 엽기적 성범죄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들이 득시글댄다.
하지만 자료 화면에 지직대는 녹음, 관련자 증언 녹화가 오버랩되는 이런 다큐들, 조금씩 식상해질 때도 됐다. 그래서 범죄 실화에 상상력의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엮어내는 드라마들이 나왔다. 범죄가 다양해지는 만큼 소재의 영역도 넓어졌다. 제 정신이 아닌 범죄자의 진실과 거짓이 뒤범벅된 자서전을 한바탕 현란한 쇼 무대처럼 꾸며내기도, 아름다운 외모에 천재성과 현란한 말솜씨로 벤처 투자 열풍에 올라탔던 희대의 사기극을 서늘하게 펼쳐내기도 한다. OTT로 만나는 주옥같은 범죄 실화 드라마 네 편.
※OTT 바로 보기 링크와 동영상은 조선닷컴에서만 연결됩니다.
◇디즈니+ ‘드롭아웃’ : 금발, 미녀, 천재, 기업 사기꾼

난 그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꿨던 여자일 뿐이에요.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의료 스타트업 사기 사건을 다룬 드라마.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하는 미니멀한 패션 센스와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가진 젊고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 CEO, 간편하며 정확한 질병 진단 신기술, 현란한 언변과 PR기술에 현혹된 언론과 대중, 그리고 극적으로 날아올랐던 만큼 더 충격적이었던 몰락까지. 실리콘밸리 의료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CEO 엘리자베스 홈즈의 실화는 어떤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홈즈는 손끝을 바늘로 따서 피 몇 방울만 자사가 개발한 ‘에디슨 키트’에 담아 보내면 질병 진단이 가능하다며 약 90억 달러(약 11조원)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모두 사기였다. 애초에 그런 기술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언론보도와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거짓이 폭로되면서 45억 달러로 평가됐던 그녀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루퍼트 머독이 손실을 본 금액만 1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쁜 미친 여자에 특화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홈즈 역할을 맡았다.
◇넷플릭스 ‘마인드헌터’: 급증하는 연쇄살인… 미국 사회 환부 들여다본 프로파일러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자 간수야.
모두가 자신의 형기를 살아가지.
감옥은 니 마음 그 자체야.
베트남전쟁의 패배와 히피문화의 몰락, 연이은 오일쇼크로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악화일로였던 1970년대의 미국, 전에 없이 흉폭한 방식의 연쇄살인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1977년의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홀든 포드와 동료들은 형무소를 방문해 흉악범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조부모를 살해하고 친모 포함 8명을 죽인 에드먼드 캠퍼, ‘맨슨 패밀리’로 불린 범죄집단을 이끌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와 친구들을 살해를 사주했던 찰스 맨슨, 최소 27명의 대부분 남자아이를 강간 살해했으나 2명의 성인 피해자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던 웨인 윌리엄스 등 엽기적 살인마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등장한다.
요즘 영화 찍기보다 드라마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듯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제작했다. ‘세븐’ ‘파이트 클럽’ ‘나를 찾아줘’ 등 골수팬을 양산한 수작 영화들 뿐 아니라 ‘하우스 오브 카드’ ‘마인드 헌터’ 같은 시리즈에서도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입증한 역전의 명장이다.
◇넷플릭스 ‘클라르크’ : ‘스톡홀름 신드롬’을 만들어낸 꽃미남 무장강도

최고의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엔
최악 중의 최고가 되고 말겠어!
“난 강도예요. 여러분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죠. 지겨운 인생에서 자랑할 만한 이야기. 여러분은 지금 클라르크 올로프손과 함께 있어요.” 곧 도주할 은행강도같지 않은 여유로운 표정과 말투. 클라르크는 줄을 섰던 여자에게 말한다. “이 재미없는 사람들과 남을거야. 아니면 몇 시간만 내서 클라르프 올로프손을 경험할래?” 여자는 그를 따라나선다.
피해자인 인질이 가해자인 납치범에게 감화돼 동조하고 변호하는 이상 심리 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부른다. 이 용어의 기원은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벌어진 무장강도·인질 사건. 범죄 현장이 생중계되면서 주범인 클라르크 올로프손은 잘 생긴 외모와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순식간에 대중을 사로잡고, 그에게 매혹된 인질들은 오히려 경찰에 맞서 범인들을 보호하려 한다.
드라마는 클라르크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했다. 범죄자의 자서전은 진실과 거짓이 뒤얽혀 있기 마련. 그가 저지르는 범죄는 기발하고,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그에게 보이는 애착은 기괴하다. 마돈나,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던 감독 요나스 오켈룬드는 진지하게 진실을 좇기보다, 화려한 패션과 다채로운 색감, 펑키한 음악이 가득한 한 판 쇼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클라르크를 연기한 빌 스카르스고르드는 스웨덴의 배우 명문가 출신. ‘굿 윌 헌팅’ ‘어벤져스’ 등의 영화로 익숙한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가 아버지이고, 형제들도 모두 배우다. 빌은 공포영화 ‘그것’에서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비주얼의 피에로를 연기했었다. 이 드라마에선 반항아 같은 매력과 악마적 말솜씨로 고약한 악당인데도 미워하기 힘든 실존 인물의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창조해낸다.
극중 올로프손은 당당하고 뻔뻔하게 말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니라 올로프손 신드롬이라니까!”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 상류층 허위 폭로한 뉴욕의 미녀 사기꾼

난 성공을 위해 노력했어. 내 성취는 내 노력의 대가야.
내 얘기에 집중해봐.
혹시 알아? 너도 나처럼 똑똑해질지.
아마 안 되겠지만. 꿈은 클수록 좋은 거니까.
2010년대 중반, 애나 델비(줄리아 가너)는 미국 뉴욕 사교계의 수퍼스타였다.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독일 백만장자 상속녀. 거침없는 언변, 명품 옷, 고급 식사와 호텔, 자가용 비행기. 화려한 ‘셀카’로 사람들을 홀릴 줄 아는 소셜미디어 최적화 셀러브리티. 하지만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패션, 예술, 부동산, 금융, 테크기업의 뉴욕 최상류층 인사들이 그의 거짓말에 앞다퉈 돈을 뜯겼다. 드라마 속 델비는 시청자를 향해 말한다.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애나 델비는 걸작이야.”
애나 델비의 본명은 애나 소로킨, 2017년 검거 때까지 약 4년간 피해액은 우리 돈 3억원을 조금 넘는 27만5000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대중은 잘나고 고고한 뉴욕 상류층이 델비의 거짓말에 속절없이 당했다는 이야기에 열광했다.
드라마는 형무소에 수감된 델비를 면회하며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여기자 비비안 켄트(애나 클럼스키)의 이야기를 오가며 사기 행각을 흥미진진하게 재연해나간다.
‘어쩌면 그녀는 돈이 너무 많아서 그 감각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라(Maybe She Had So Much Money She Just Lost Track Of It)’라는 제목의 2018년 뉴욕 매거진 제시카 프레슬러 기자의 기사가 이 시리즈의 기반. 미국의 데이터 분석 업체 차트비트에 따르면, 이 기사는 2018년 이 업체가 분석한 전세계 약 6000만 건의 기사 가운데 가장 많이 본 기사 순위 6위였다.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 판권 대가로 실제 인물 애나 소로킨에게 32만달러를 지불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자신의 사기 이야기를 팔아 저지른 사기 피해액보다 오히려 더 큰돈을 챙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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