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도 유대인' 러 외무 주장은 엉터리.."뒷받침 증거 전무"

강영진 2022. 5. 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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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WP, 할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추정 뒷받침 증거 전무
히틀러 아버지가 고친 자기 세례 기록에 히틀러 성 첫 등장

[부쿠레슈티=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려 한 남성이 푸틴 대통령을 히틀러로 묘사한 그림을 들고 있다. 2022.02.25.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신나치 세력 제거를 내세웠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신이 나치 독일의 인종 청소 피해 민족인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았다며 푸틴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해왔다.

이와 관련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1일 이탈리아 TV와 인터뷰에서 "젤렌스키가 유대인 혈통이라고 해서 우크라이나의 나치적 성격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히틀러도 유대인 혈통이라고 한다. 혈통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명한 유대인들은 가장 강한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이라고 말한다. 어느 집이나 별종은 있다고 하지 않나"라고 재반박했다. 라브로프의 주장에 이스라엘이 격분하기도 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3일(현지시간) 히틀러가 유대인 혈통이라는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음을 밝히는 기사를 실었다.

히틀러가 유대인 혈통이라는 주장은 히틀러의 아버지가 혼외자로 태어났고 히틀러의 할아버지는 알려진 적이 없다는 점에 근거한다. 히틀러 본인 혈통의 4분의 1이 유대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모계 혈통을 따랐다.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 히틀러 할아버지에 관한 정보가 사라지면서 그가 유대인 혈통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나치 치하 폴란드 정부 수장이던 히틀러의 개인변호사 한스 프랑크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결과 처형된 7년 뒤 그의 기록이 출판됐다.

"교수대 앞에서"라는 책에서 프랑크는 히틀러의 사촌이 유대인 혈통 폭로를 위협함에 따라 히틀러의 가계를 추적했다고 주장했다. 프랑크는 히틀러의 친할머니 마리아 안나 쉬클그루버가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1837년에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를 출산했다고 주장했다. 쉬클그로버는 당시 42살이었다.

알로이스의 세례 기록에 "불법적으로"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어 아버지(히틀러의 할아버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프랑크는 히틀러의 할머니와 할머니가 일한 가문(프랑켄버거 가문으로 알려짐) 사이에 오간 편지에 따르면 그 가문의 19살 난 아들이 히틀러 할머니를 임신시켜 그 가문에서 히틀러 아버지의 양육비를 댔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할머니가 프랑켄버거 가문이 아들이 히틀러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속여서 양육비를 받아냈다고 프랑크에게 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히틀러 할머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40년 전에 사망했다.

역사가들은 대부분 프랑크의 설명에 오류가 많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1998년 히틀러 전기 "자만심"을 펴낸 이안 커쇼는 "1830년대 그라츠에 프랑켄버거라는 유대인 가문이 없었다. 프랑켄라이터라는 가문이 있었지만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 히틀러의 할머니 마리아 안나는 레오폴트 프랑켄라이터라는 정육점 주인 밑에서 일했던 때 빼고는 그라츠에 살았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고 썼다.

또 프랑크가 주장한 것처럼 혼외정사가 있었고 양육비를 댔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도 발견된 적이 없다. 프랑켄라이터 가문은 너무 가난해서 양육비를 댈 형편이 못됐다. 무엇보다 히틀러 아버지 알로이스가 태어날 당시 히틀러의 할아버지였다는 프랑켄라이터 가문의 아들은 10살밖에 안된 나이였다.

히틀러를 협박했다는 사촌 빌리암 패트릭 히틀러는 미국에 온 뒤로도 히틀러가 유대혈통이라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역사가들은 또 오스트리아 그라츠는 1860년대까지 유대인 거주가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었음을 지적한다. 다만 심리학자 레오나르트 작스가 2019년 당시 그라츠에 소수의 유대인이 살았다는 증거를 제시해 유대인이 전혀 살지 않았다는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유럽연구저널에 출판됐다.

히틀러 아버지 알로이스가 5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가 요한 게오르크 히들러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히틀러는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했었다. 알로이스가 9살 되던해 어머니가 숨졌고 알로이스는 어머니의 성인 쉬클그루버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으며 요한 게오르그의 남동생 요한 네포무크 히들러 농장으로 보내졌다.

많은 역사가들이 요한 게오르크 또는 요한 네포무크가 히틀러의 할아버지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스캔들이 의식해 공개되지 않았다. 요한 네포무크는 히틀러 아버지 알로이스가 태어날 당시 결혼한 상태였다. 요한 네포무크는 알로이스에게 유산을 남겼다. 요한 네포무크는 또 근친상간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어머니 클라라를 낳았다.

요한 게오르크가 사망한 지 거의 20년이 지난 뒤 39살이던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가 교구목사에게 말해 자신의 아버지가 요한 게오르크 히들러라고 세례기록을 고쳤다.

이 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공식 기록에 성이 히틀러로 기록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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