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 고흐, 이중섭은 왜 앙상한 소 그림만 그렸을까?


이중섭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거친 붓선과 강렬한 색감.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 불리기도 한 그는

자신만의 색감으로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데요.

그의 작품들을 보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떠오릅니다

바로 소가 많다는 사실이죠.

그의 작품 곳곳에는 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딘가 성이 나있으면서
동시에 앙상히 뼈만 남은 듯한 인상.

그만의 스타일로 그려진 소그림은

매우 독특한 기운을 풍기는데요.

그렇다면 이중섭은 왜 앙상한 소를 그렸을까요?

이중섭의 소그림은 유명합니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죠.

이중섭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바로

이 그림을 떠올릴 정도로

소는 이중섭의 대표상징이기도 합니다.

이중섭은 그림을 그리던 초기부터 소를 자주 그렸습니다.

하지만 초창기의 소그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중섭의 소그림과는 조금 다르죠.

일제강점기 유복한 조선의 부농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 ‘오산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오산학교는 민족학교로서

독립운동가들의 철학아래 지어진 학교였는데요.

그는 그곳에서 임용련이라는 미술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임용련은 1900년대 초반

미국 예일대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유럽유학을 다녀온, 당시로선 선구적인 서양화가였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큰 일을 해야한다는 사명 아래

조선으로 돌아와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

이중섭은 그런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요.

덕분에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화풍들을 접할 수 있었죠.

임용련은 이중섭에게

항상 무엇보다 연습과 노력을 강조했는데요.

어릴적부터 노력파였던 이중섭은

스승 밑에서 수많은 습작을 남겼습니다.

이 무렵 많은 습작을 그렸던 만큼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림의 대상이 필요하기도 했는데요.

그것이 다름 아닌 소였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들이 많았던

1900년대 초반 한반도.

소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가까운 소재였습니다.

연습 또 연습을 거듭하는 이중섭에게

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소재였죠

스승 아래에서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나가던 이중섭은

일본의 미술전에 자신의 그림을 출품합니다.

사실 당대 일본 미술계는 대단히 보수적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일본은

조선의 미술을 장려하고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예술활동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하지만 친일적인 심사위원

참가기준의 형평성 등을 통해

은연 중에 조선인들의 참여를 억압하고 있었죠.

대다수의 작가들은 심사 기준에 맞춰

기법과 형식, 소재까지 획일화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중섭은 달랐죠.

이중섭은 자신만의 강렬한 색과 선으로

황소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황소그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소, 그중에서도 한반도에서 가장 흔한 ‘황소’가

조선의 민족 정서를 대변한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미술계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이중섭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황소 그림을 탄생시켰습니다.

억압받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표현을 굽히지 않았죠.

이후 이중섭은 더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로 유학을 떠납니다.

또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예술을 접한

이중섭의 화풍은 더욱더 발전하게 됩니다.

더욱더 선과 색이 선명해졌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죠.

표현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작품 속에

한민족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빼앗긴 땅, 하지만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

더 강렬한 색과 더 힘있는 선으로

그림의 대상 속에 힘을 담기 시작했죠.

덕분에 이 시기부터 그의 그림은 더욱더

간결해지면서도 거친

그리고 힘있는 느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943년 일본의 권위있는 공모전에

’망월’이란 작품을 출품하여 특별상을 거머쥐는데요.

둥근 달과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과 소의 모습을 통해

조국의 비운과 현실, 그리고 희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1940년대 중반 이중섭은 조선 원산 땅으로 귀국합니다.

이 시기엔 결혼이라는 개인적인 경사와

광복이라는 국가적인 경사를 맞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이 닥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원산에선 공산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요

이중섭의 형이 대지주로 규탄받아

내무서에 갇혀 죽는 일이 발생했죠.

뿐만 아니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첫아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중섭이 아이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뛰어노는 아이들.

아무런 근심과 걱정없이

천도복숭아를 따먹는 아이들.

현실의 비극과는 멀리 떨어져

행복해보이는 아이들의 표정 속에

이중섭의 꿈이 담겨 있었죠.

하지만 이후로도 비극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것이죠.

비행기의 폭격으로 인해 이중섭의 집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쉴새없는 폭격속에서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부산 피난합니다.

이 시기 그는 남쪽에 친인척이 없어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했는데요.

부두에 나가 일을 하거나

선박에 페인트칠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했습니다.

그럼에도 추위를 이길 수 없어

가족들이 부둥켜 앉고 잠에 들곤 했습니다.

더 따뜻한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 아래

이중섭은 더 남쪽, 제주도로 피신하기로 합니다.

제주도에 이르러서야 이중섭은 조금 안정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그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 그림을 그렸죠.

이 시기에 그려진 <서귀포의 환상(1951)>을 보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바다, 아이들, 과일과 같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 밝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태양과 바다, 모래와 게

그가 바라본 제주도의 풍경은 희망에 차있죠.

하지만 행복도 잠시.

아내는 폐결핵을 앓게 되고,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리는 등 힘든 상황이 계속됩니다.

거기다 일본에 사는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죠.

결국 아내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는데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이중섭의 생활은

더욱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도 살 형편이 안됐죠.

하지만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핀 담배갑 속 은박지에

펜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은박지 안에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게 등 자신이

평생동안 그려왔던 소재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은박지 속 그림 하나하나에는

제각기 다른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연많았던 그의 삶 만큼이나

이야기 많은 그림들이 담겼죠.

특히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많은 작품을 담았습니다.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가족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죠.

계속해서 가족을 그리워하던 이중섭은

지인의 도움으로 밀입국해 1주일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했는데요.

불법체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가족의 설득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죠.

그가 한국에 돌아와 그린 <돌아오지않는 강>을 보면

어두운 색조에 황폐한 느낌을 통해 가족과의 이별로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한다 생각합니다.

이후 이중섭은 일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데요.

1955년 야심차게 준비한 개인 전시를

서울에서 펼칩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작품이 적게 판매되었고

심지어 판매한 작품대금은 거의 받지 못했죠.

낙담한 이중섭은 개인전이 끝난 후

자신의 남은 작품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몇몇 작품은 태워버리기까지 합니다.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모든 것을 포기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이중섭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소를 그립니다.

위풍당당하고 강렬한 소는 온데간데없고

늙고 지친 소 한 마리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말이죠.

1956년

이중섭은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40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시대의 정신을 담았던 예술가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격동의 한국사 속에서

때로는 민족의 자긍심을,

또 떄로는 개인의 슬픔과 행복을 그렸던 예술가.

이중섭은 불안했던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며

현재까지도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라 불리는데요.

선명하고도 앙상한 선과

강렬하고 거친 그만의 색감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앙상하지만 강인한 그의 소 그림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