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 안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형수

2015년 디시인사이드에 ‘교도소 일기’라는 만화가 올라왔다. 구치소 수감 경험이 있는 작성자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매우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해 인기를 끌었는데 유명 판사가 명작이라고 추천했을 정도로 숨 막히는 생활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가본 적은 없지만 이런 곳에 오래 갇혀있다 보면 누구라도 제정신이 아니게 될 거 같다.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간 기분일 텐데, 거기에 사형까지 선고받고 실제로 수십 년째 살게 된다면 어떨까. 유튜브 댓글로 “현재 대한민국 최장기 사형수는 몇 년째 수감 중인지 취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국내에서 가장 오래 감옥에 갇힌 사형수는 30년째 수감 중인 원언식이다.

이승의 지옥, 감옥에서 30년째 사형을 기다리는 이

사형수 원언식은 1957년생. 서른다섯 살이던 1992년부터 지금까지 30년째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2020년 촬영된 사진을 보면 옛날과 달리 이렇게 머리카락도 하얗게 세어 나이 든 티가 난다.

그가 사형수로 감옥에서 반평생을 보내게 된 건 원주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건물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무려 열다섯명을 숨지게 했기 때문. 당시 뉴스영상을 보면 범행의 참혹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대한지적공사에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이 방화를 한 배경에는 여호와의 증인에 빠졌던 아내 신모씨와의 갈등이 있다. 범행 직후 원언식은 종교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 아내 때문에 술 먹고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했고, 신씨는 시어머니, 남편과의 갈등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 도피처로 성경을 공부한 것뿐이라고 말했는데…. 종교든 고부갈등이든 범행을 쉽게 용서받긴 어려울 거다.

2005년 교도소 안에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원언식은 여러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끝에 살아났다. 그가 작년 한 매체와 주고받은 편지에 따르면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암을 유발한 것 같다고 적었다. 범죄에 대한 참회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풀기 위해 종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이달 초 그를 면회하고 온 목사에게 그의 근황을 물어봤는데 모범수라는 평가가 돌아왔다. 

김성기 세계로교회 목사
"건강도 좋고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는지 모범수입니다. (노역으로) 월급은 지금 15만원, 14만원 받고 선교비를 약한 곳에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기부지 기부”

사실 햇수로만 따지면 엄밀한 의미에서 최장기 수감자 타이틀은 사형수가 아니라 무기수의 몫이다. 최장기 사형수 원언식보다 더 오래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수감 중인 죄수는 오늘 기준 37년 9개월 동안 복역 중인 무기수다. 우리는 이 무기수의 나이와 범행 경력 등을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개인정보라며 밝히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
“개인정보 사항에 해당할 거 같은데요. 저희가 수형자 정보를 제공할 순 없거든요”

이들처럼 2020년 기준 사형과 무기징역으로 수감 중인 죄수는 각각 56명, 1320명에 달한다. 2011년 이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된 이는 단 3명뿐인데, 민간인 중에선 2014년 대구에서 배관공으로 위장해 옛 여자친구 부모를 살해한 장재진이고, 군인 중에선 강화 해병대 총격사건 주범 김민찬, 강원도 22사단에서 수류탄과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사망케 한 임도빈 등 2명이다. 우리가 잘 아는 희대의 살인마들은 1심에선 사형이 선고됐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케이스가 많다.

그렇다면 사형과 무기징역 말고 가장 길게 나올 수 있는 형량은 몇 년일까. 우리 형법은 유기징역에 대해 최장 30년, 형이 가중되는 때에는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아무리 형을 가중해도 50년까지 받기는 쉽지 않다. ‘N번방의 악마’ 조주빈도 ‘겨우’ 42년형을 받았다.

아니 근데 미국은 성폭행범에게 천년이 넘는 형량도 선고하는데 대체 우리나라는 왜 나쁜 놈들에게 형량을 낮게 때리는지. 분통이 나지만 법의 족보가 달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의 법체계는 독일의 영향을 받은 대륙법 체계인데 여러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장 무거운 처벌에 다른 벌을 가중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반면 영미법 체계는 각각의 범죄에 대한 형벌을 모두 더해 선고하는 병과주의라 사람의 수명보다 긴 형량이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나마 사형제와 무기징역이 있어 다행이랄까.

그러고 보니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 변론을 다음 달에 연다던데…. 사형이 정말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지, 평생 감옥에 가두는 종신형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가 관건이겠다.

당신도 취재를 의뢰하고 싶다면 댓글로 의뢰하시라. 지금은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 가격은 왜 이렇게 매년 크게 오르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 중이다. 구독하고 알림 설정하면 조만간 취재 결과가 올라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