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훈련 교관이 말했다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야"[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2)]

글·사진|올렉산드르 구젠코, 번역·정리|정유미 2022. 5. 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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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편집자 주> 우크라이나 북부 전선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전열을 재정비해 동부 돈바스 지역 점령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물러간 지역에서는 민간인 대상 전쟁범죄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피란 생활을 하고 있는 올렉산드르 구젠코(28)에게서 두번째 편지가 왔습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구젠코는 전쟁 전에는 키이우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으며 현재는 르비우에서 외신 기자들의 취재를 돕고 있습니다.

르비우의 향토방위군 신병 훈련소에서 신병들이 청바지와 스포츠 재킷 차림으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르비우 주민들에게도 봄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구시가지 외곽에 있는 스트레이스키 공원을 거닐고 있다. 공원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직 꽃이 채 피지 않은 잿빛 나무 위로 양파 모양의 돔이 빼꼼 솟은 교회와 눈이 마주친다. 정교회 건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태의 돔은 차분함, 친숙함, 안정감의 상징으로 동부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그리워할 만한 느낌을 준다.

교회는 우크라이나가톨릭대학(UCU) 한가운데 있다. 대학은 겉으로는 고요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억제할 수 없는 활기로 가득 차 있다. 회의실, 강의실, 복도는 인도적 지원을 위한 창고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내외의 봉사 단체와 시민들로부터 온 원조 물자들은 이 기관의 임시분배센터를 거쳐 필요한 곳으로 이동한다. 일부 물자는 학생과 교수들이 직접 만든다.

벙커로 변한 대학의 어떤 문 뒤에는 작업장이 있다. 수십 개의 3D프린터가 24시간 내내 돌아가며 응급의료장비를 찍어내는 첨단기술연구소이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는 2학년 카리나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학생들이 40명”이라고 귀띔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시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구소는 요즘 상처 부위를 벌리는 데 사용하는 수술용 의료 장비인 개창기를 제작한다. 이전까지는 군의 응급구조원들이 사용할 지혈대를 생산했다. “3D프린터 제조 공정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기 때문에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검증에 검증을 거친다고 자원봉사자 안드레이가 말했다.

르비우에 있는 우크라이나가톨릭대학에서 3D프린터로 만든 지혈대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이 전쟁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모두 수비수인 것은 아니다. 공격수들도 있다. 디마(19)와 세바(18)는 ‘사이버 공격수’로 참전한다. 세바는 “군사훈련을 받은 적 없다. 제가 잘 아는 분야로 위험에 처한 우리나라를 돕고 싶다”고 사이버 공격수로 활동하는 이유를 밝혔다. 사이버 전사들은 대부분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해커와 동일하지만 인프라 파괴가 목적이 아니다. 언론통제 때문에 전쟁이 시작된 후 우크라이나인들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러시아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려 생각을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한 번에 러시아 시민 한 명만’이라고 생각해요.”

해킹을 통해 연락처를 수집한 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정보를 신중하게 담은 메시지를 보낸다. 이들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5만개의 연락처를 수집했다. 자신의 모바일 기기가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안 러시아인들로부터 분노의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이들이 제작한 앱은 러시아 당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그들은 이 사실이 사이버전이 성과를 냈다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르비우의 향토예비군 훈련소에서 신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기 위해 모여 있다.


싸우기를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2022년 4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무기를 들고 입대하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합병과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교전(돈바스 내전)이 발발한 이후 꾸준히 군사력을 강화해왔다. 지난 2월 말 전면전이 발발하자 많은 민간인들이 군사적 경험이 많은 동료들을 따라 입대했다. 우크라니아 육군이나 국토방위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은 전투에 임하기 전 최대 18개월 동안 상당히 강도 높은 복무를 거친다.(우크라이나는 돈바스 내전 이후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복무 기간은 육군과 공군은 최대 1년, 해군은 1년6개월이다) 반면 새로 창설된 향토방위군과 같은 기관은 군대 조직에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유연한 일정을 운용하며 신병들이 보다 빨리 전쟁에 투입되도록 한다.

18세 이상은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향토방위군 지부에 가입할 수 있다. 향토방위군은 복무하는 지역을 꿰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매우 귀중한 자산이며 지역에 발을 들인 러시아군에게는 악몽과 같다. 러시아군이 침공한 2월24일 이후 향토방위군이 소총, 탄약, 군수품을 얻는 과정은 상당히 간소화됐다. 싸울 수 있고 제정신이기만 하면 군에서 받아주는 것이다. 신병 등록 즉시 훈련이 시작된다. 교관은 전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맡는다. 보통 돈바스 전쟁 참전 경험자들이다.

르비우의 향토방위군 신병 훈련소에서 신병들이 응급처치 과정에 대해 배우고 있다.


르비우의 한 향토방위군 훈련시설을 방문했다. 하루 최대 100명 가량까지 훈련시킨다. 20명마다 교관 한 명이 배정된다. 신병들은 응급처치 과정부터 배운다. 교관은 “전쟁터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관은 전투원들이 전투에서 직면하는 위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며 설명했다. 공격, 사격, 다른 종류의 포격, 폭발, 지뢰 등. 그리고 나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상처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수강생들 중 한 명을 뽑아 부상자를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단계별로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응급처치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와 옆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응급처치를 하는 중에 사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총과 탄약을 능숙하게 다루도록 하는 훈련이 이어진다. 노장 군인이 교관으로 나섰다. AK-47소총을 분해·조립해보고 무기의 성능, 사양 등을 듣는 신병들의 눈에는 엇갈린 감정들이 서려 있었다. 새로 얻은 지식을 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긴장과 흥분, 부상과 파괴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야외 제식 훈련에서 일부는 나무 대용품을 받았다. 신병들이 군복 대신 입고 있는 청바지와 스포츠 재킷이 전쟁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 생활을 침범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르비우의 향토방위군 신병 훈련소에서 신병들이 소총과 탄약사용법 과정에 대해 배우고 있다.


바로 근처에서 다른 훈련이 있었다. 검문소에서 자동차를 검사하는 방법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로 각 지방 모든 출입구에 검문소를 세웠다. 국경 내에 설치된 검문소들 각각은 향토방위군이 지키고 있으며, 때로는 군대의 다른 부서와 협력하기도 한다. 훈련은 신병들에게 의심스러운 행동을 포착하고, 적절히 반응하도록 가르친다. 그들의 임무는 우크라이나 도시에 진입하려고 잠복 중인 러시아군의 신원을 확인하고 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검문소에서 러시아군이 잠입하려다 적발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안전하고 순조롭게 처리될 때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검문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심지어 죽을 뻔하기도 했다. 전쟁에서는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해진 규칙이 없다. 모든 것은 그 순간 개인의 판단에 달렸다.

훈련을 졸업하기 위해 신병들이 충족해야 하는 특정한 기간이나 요건은 없다. 사실 졸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배움과 실전 사이는 너무 모호해서 어디서부터가 배움의 끝이고 실전의 시작인지 모른다. 끔찍한 그리고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향토방위군은 이전에 받은 훈련이 많든 적든 나가 싸워야 할 것이다. 아마 이것이 이 전쟁수업의 분위기가 꽤나 긴장되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수업에 참여한 모두는 세부 사항을 빠짐없이 숙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쓸데없는 잡담이나 농담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한다. 그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나라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올렉산드르 구젠코

글·사진|올렉산드르 구젠코, 번역·정리|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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