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늦은 '탈시설' 정책, 윤석열 정부서 다시 퇴행?..장애인들이 말하는 "시설에서 나온 이유"

박하얀 기자 2022. 4. 7. 15: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늑장 추진’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윤석열 정부에서 퇴행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일 탈시설에 반대 입장을 밝혀 온 ‘전국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를 만나 “지역사회에서 복지서비스가 강화되기 이전에 선택이 아닌 강요로 시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인권 유린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후 ‘장애인의 탈시설을 조력하는 장애인 단체들이 부당 이득을 취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르내리고 있다.

장애인 탈시설은 정부가 2007년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도 명시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그로부터 14년 뒤인 지난해에야 나왔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사는 2만9000명의 탈시설을 2041년까지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장애인에게 탈시설은 어떤 의미일까. 시설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다가 나온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7일 들어보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배우면서 잘 살아지는 거”…장애인의 자립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발달장애인 박경인씨(28)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살았다. 시설에서 나온 23살 때까지 거친 시설만 6곳이다. ‘그룹홈’은 시설과 탈시설의 중간 단계인데, 박씨는 이곳에서 폭력 피해를 겪었다. 하지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한다.

박씨의 시선이 시설 밖으로 향한 건 22세 무렵이다. “활동가들이 그룹홈에 와서 장애인들에게 ‘인권’에 대해 알려줬어요. 그때부터 ‘안되겠다. 나도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자유가 없어서.” 박씨는 이듬해인 23세 때 자립을 선언했다.

시설에서 나온 이후에는 “맨땅에 헤딩”했다. 자립정착금은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이 모든 걸 박씨가 해내야 했다. 혼자서 재정을 관리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기 쉬웠다. 여기까지는 탈시설 반대론자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박씨는 “그때로 돌아가도 (시설에서)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단체 ‘피플퍼스트’를 알게 돼 필요한 치료를 받고 일상을 차츰 회복했다. 활동가들이 박씨가 살 거처와 주거 코치, 활동지원사 등을 알아봐줬다. “힘들어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비장애인도 부모로부터 독립했을 때 완전히 잘 사는 게 아니잖아요. 배우면서 잘 살아지는 거잖아요. 똑같아요.”

시설이 정한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잠을 잤던 박씨의 24시간은 이제는 오롯이 그의 ‘선택’들로 채워진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 활동가로 일하는 박씨는 올해 장애인 거주시설을 찾아 장애인들을 만날 계획이다.

시설에서 15년 동안 생활하다가 나와 자립해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공익옹호 활동가로 일하는 지체장애인 이수미씨. 이씨는 지난 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집회 현장을 찾아 정부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등을 요구하며 삭발했다. 이씨 제공


■“탈시설 정책, 더 늦춰져선 안 돼”

“참 이해 안 되는 게 젊었을 때 탈시설시켜서 (삶을) 누리게 하지, 50~60세가 넘어 탈시설을 시켜요. 청춘을 다 시설에서 보내는 거죠.”

탈시설 정책의 퇴행을 우려하며 열변을 토하던 이수미씨(60)는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중증 지체장애인인 그는 40대 초반일 때 경기도 성남의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해 15년을 지냈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해 집안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자 이씨의 돌봄을 전담해 온 어머니는 그를 시설에 맡겼다. 이씨는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시설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열댓명이 거주하는 시설에서는 작은 방 하나에 5명가량이 살았다. 초기에는 남성 장애인과도 같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 이씨는 “봉사자들이 와야 씻을 수 있었다”며 “(직접적인 신체)폭력은 없었지만 방임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2016년 시설이 재정난으로 폐쇄됐다. 또다른 시설이냐, 시설 밖의 삶이냐. 두 개의 선택지가 이씨 앞에 놓였다. “시설에서는 적응 기간을 겪어야 하잖아요. 그건 진짜 죽기보다 싫더라고요.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원장이 폭력성이 강한 사람이면 또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거고…” 무엇보다도 “‘65세가 지나면 요양시설로 넘어간다’는 말이 제일 두려웠다”고 했다.

자립지원 주택을 알아봤지만 서울과의 정보 격차를 절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거처를 마련할 돈이 없었고, 단기보호센터에 들어가 월세를 내며 1년을 지냈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에서 공부를 시작해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사이버대학 사회복지과에 진학했다.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월세집도 구했다.

이씨는 장애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 등은 자립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씨 자신도 과거 시설생활의 어려움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시설에서 오래 살다 보면 두려움이 큰 것 같아요. 정부의 지원책이 마련되고 부모가 힘을 조금만 보태주면 충분히 자립 가능합니다. 장애가 심하다고, 돌보기 힘들다고 시설에 맡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장애계는 올해 시작된 ‘장애인 탈시설 지원’ 시범사업을 윤석열 정부가 이어받을지 주목하고 있다. 시·군·구 10개 지역의 장애인 200명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김정하 프리웰재단 이사장은 “탈시설 장애인 지원주택 제도가 1년이 지나도록 입법 논의조차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정부의 로드맵을 보강해 장애인의 안전한 지역사회 생활을 보장한다면 부모들도 (탈시설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사자가 충분히 말할 수 있다면 자기결정이 중요한 요소겠지만, 자기결정을 행사하기 어려운 사람의 (탈시설 판단) 기준은 인권가치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발달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장애인 거주시설 근로자의 고용 보장 문제에 대한 정책적 해답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