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0> 고려시대 청동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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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처음 수저질을 배울 땐 숟가락부터 시작한다.
젓가락은 사용법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숟가락이 유동식(씹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죽이나 스프)을 먹기에도 제격이다.
부산박물관 고려시대실엔 숟가락 자루가 S자로 멋지게 휘어지고 숟가락 면이 버들잎 모양인 청동 숟가락과 젓가락이 전시돼 있다.
청동 숟가락이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배경은 뭘까? 식생활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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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처음 수저질을 배울 땐 숟가락부터 시작한다. 젓가락은 사용법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숟가락이 유동식(씹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죽이나 스프)을 먹기에도 제격이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숟가락 문화가 발달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숟가락을 사용하지만, 젓가락이 주연이고 숟가락은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박물관 고려시대실엔 숟가락 자루가 S자로 멋지게 휘어지고 숟가락 면이 버들잎 모양인 청동 숟가락과 젓가락이 전시돼 있다. 전국 어느 박물관을 가도 고려시대실에 청동 숟가락이 많이 전시돼 있다. 숟가락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유적에선 별로 나오지 않는다. 고려시대에 무덤과 해저에서 많이 확인되고 12세기 이후 무덤에서 출토량이 많아진다. 숟가락 면이 닳은 흔적이 보이는 숟가락도 출토되는 것에 미뤄보아 당시 실생활에서도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청동 숟가락이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배경은 뭘까? 식생활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려 사람들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을 주로 했다. 그러다가 수렵과 목축에 능했던 요·금과의 교류, 몽골의 지배로 식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 몽골인의 영향으로 고기를 식용으로 받아들이고 소 도살법과 요리법도 배웠다. 고기를 이용한 국물 요리 조리법도 몽골의 영향이 크다. 곰탕도 원나라 지배 아래 있을 때 들어온 ‘공탕(空湯)’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국’이 주요한 부식으로 식생활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긍의 고려도경에 기술된 것처럼 ‘멥쌀이 있으나, 찹쌀은 없다’는 것도 숟가락의 필요성을 더했다. 찰기가 적은 메진 곡물 밥을 젓가락으로 먹긴 곤란했을 거다.
정작 숟가락을 전해주었던 중국의 사정은 우리와 다르게 전개됐다. 8세기 이후 화북 지역은 물론 양쯔강 인근까지도 가을밀 농사가 성행하면서 국수와 만두 같은 밀가루 음식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기름을 많이 사용한 조리법까지 더해지면서 기름기를 덜어낼 수 있는 젓가락이 숟가락보다 훨씬 유용한 도구로 대접받았다. 일본에선 손에 들기 편한 가벼운 나무 그릇을 사용해 숟가락의 쓰임새가 그리 크지 않았다. 나라와 헤이안 시대부터 끈기 많은 차진 쌀이 재배됐기 때문에 굳이 밥알이 달라붙어 불편한 숟가락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청동 숟가락은 국이 빠질 수 없는 조선의 식탁에서는 필수적인 도구였고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가장 일반적으로 선택된 무덤 부장품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여전히 한국 식생활의 기본 상차림인 밥 국 반찬을 먹는 역할 분담을 위해 줄곧 식탁에 올라온다. 고려시대 유려한 S자 청동숟가락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맛을 이어주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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