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장면을 보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나정이 아빠가 시티폰 주식에 왕창 투자하면서 “공중전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모습. 물론 슬프게도 올인의 결과는 폭망...

90년대 시대상이 반영된 이 드라마에서처럼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줄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던 공중전화는 2000년대 들어 휴대폰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주변에선 공중전화 부스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좀 심하게 방치되는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건 빨간 우체통도 마찬가진데 유튜브 댓글로 “쓰는 사람 거의 없는 공중전화, 우체통은 왜 철거 안하는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중전화와 우체통은 각각 휴대폰과 이메일, 메신저에 밀려 그 수가 급격히 줄고 있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통신·우편서비스인데다 비상시 활용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무미건조한 기능적 측면을 뺀다면 동전 채워가며 친구와 연인에게 공중전화를 걸고, 공들여 쓴 손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던 그때 그시절 감성을 느껴보는 경험이 이제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철 지난 공중전화, 우체통이 남아있는 이유

라떼 시절 90년대는 삐삐라 불리던 무선호출기와 공중전화의 전성기. 삐삐로 012486(영원히 사랑해) 같은 메시지 좀 쳐본 이들이라면 음성메시지 확인하러 공중전화 줄 서본 기억도 있을거다. 당시엔 영원히 발음에서 따온 012, 사랑해 글자 획수로 만든 486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표현하는 삐삐암호가 유행했다.

2000년 당시 공중전화 대수는 KT가 운영하는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무인제 전화만 14만대, 개인이 따로 구매해 운영하던 자급제 공중전화 39만대 등 총 53만대가 있을 정도로 많았다.

자급제는 가게 개업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이런 광고가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휴대폰 사용이 늘면서 점점 줄어서 2010년엔 총 13만대(무인제 전화 9만대, 자급제 4만대)로, 2022년 3월 기준으로는 총 3만5000대(무인제 3만1000대, 자급제 4000대)만 남아있다. 요금도 2002년 기본통화 3분에 70원으로 개편된 뒤 20년째 고정이다.

그렇지만 공중전화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를 둔 ‘보편적 역무’다. 쉽게말해 국민 누구나 언제 어떤 상황이든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전화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가 의무사업으로 정해놓은 거다.

KT링커스 관계자
"휴대전화가 100% 보급돼있다고 하지만 없으신 분들도 솔직히 있고요. 화재나 긴급사항 있잖아요 위험할 때 휴대폰 두고 나오는 경우도 있을 거고 비상용이라고 봐야겠죠. 휴대폰을 두고 나오면 요즘은 휴대폰에 금융정보가 다 들어있잖아요. 빌려달라고 해서 들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거의 잘 안 빌려줘요. 그럴 때 공중전화가 있으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거죠.

현재 공중전화는 정부가 2016년 새 우편번호 권역당 최대 5대로 부스를 제한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또 운영자는 기간통신사업자인 KT지만 공중전화 운영에 따르는 손실 100억원 가량은 SKT와 KT, LG유플러스가 90% 가량을 나눠서 부담한다. 하지만 전체 대수의 66%가 월매출 1만원 미만인데다 청소 관리가 잘 안되고, 통신3사의 손실보전금 부담이 소비자 통신비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있어서 공중전화 운영의 적정성 논란도 있다.

철거된 공중전화 부스는 ATM기와 결합해 재활용하는 사례가 700대 있고, 공기질 측정기용 900대, 전기차 충전(13대), 전기 오토바이 공유배터리 스테이션(80대)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체통 현황도 알아봤는데 1993년에 5만7000개가 넘었던 우체통 수가 엄청 줄어든 건 맞지만 그래도 전국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전국에 1만213개가 남아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
우편물은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보낼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일부 우체통들은 많이 없어지는 상황이긴 해요. 왜냐면 워낙 이용률이 옛날같지 않다보니까 근데 꼭 필요한 곳 같은 경우는 저희가 유지를 시키고 있고...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3개월 우체통 이용실적을 따져 철거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예 폐기되는 건 아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
"철거됐을 때 그 우체통이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고 할 때는 도색을 새로 해서 예를들면 신도시 같은 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생기면 우체통이 필요하잖아요. 그쪽에 설치를 하고요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100원짜리 동전 넣고 통화하다가 30원의 여유분이 남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올려놓고 가던 미덕이 있던 그 시절, 이제는 추억처럼 드라마에서나 확인하는 모습이겠지만 공중전화는 누군가에겐 아련한 기억으로, 또 누군가에겐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비상시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속도와 첨단이 강조되는 디지털 시대에 우체통의 역할도 줄어들겠지만, 경제논리에 따라 다 없애기보다는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당신도 취재를 의뢰하고 싶다면 댓글로 의뢰하시라. 지금은 “식당에서 파는 공깃밥은 왜 항상 1000원인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중이다. 구독하고 알람 설정하면 조만간 취재결과가 올라올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