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 피카소도 깜짝 놀란 60대 공무원의 그림 실력ㄷㄷ

1900년대 초, 파리의 몽마르트.

당시 몽마르트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덕분에 거리에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과

그림을 사고파는 작은 상점들이 많았죠.

20대의 피카소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피카소는 명작들을 세상에 내놓으며

이미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는데요.

어느 날 피카소는 그림 상점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그림들은 매우 저렴했는데요.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지워버리고 캔버스로 쓸

가치 없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죠.

피카소는 그곳에서 그림 한 점을 발견합니다.

피카소가 발견한 그림은 단돈 5프랑.

현재가치로는 3만원정도의 금액이었죠.

현실과는 동떨어진 형태의 묘사,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들.

일반적인 생각에선 그렇게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피카소는 달랐습니다.

피카소는 그 그림을 보자마자 매료되었죠.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물의 형태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이미지.

그림에 매료된 피카소는

그 그림의 작가를 찾아다녔는데요.

다름 아닌 60대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앙리 루소였죠.

그는 60대의 노인이었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화가였습니다.

그를 보고 아마추어 화가라 조롱 받았고

전시도 제대로 치루지 못했는데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은

어떻게 인정받게 된 것일까요?

루소의 그림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불안정한 대상의 비율과, 어딘가 둔탁한 작품의 색.

그리고 혼란스러운 대상들의 배치.

그의 작품은 프로패셔널하고 정교한 화가들의 그림과는

조금 다르죠.

앙리 루소의 작품 세계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그의 어린시절은 늘 불안했는데요.

루소가 5살일 때 아버지가 파산하여

매우 궁핍해졌죠.

하지만 루소는 그런 상황에서도 미술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데생으로 상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루소의 가족은

미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루소를

전혀 지지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능에 대해서 인정이나 응원도 없었죠.

루소는 이런 부모에 대해 평생을 원망했고,

열등감과 성공에 대한 집착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미술에 대한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죠.

그의 불우한 생애는 그를 안 좋은 길로 이끌었고

절도로 징역형을 받을 만큼 삶을 비틀어졌습니다.

이십대 중반 무렵 루소는 파리의 말단 공무원인

세관원 자리를 얻게 되는데요.

가난한 삶이 이어졌지만, 루소는 어릴 적 이루지 못했던

미술에 대한 열정을 다시 피워냈습니다.

평일에는 세관원으로서 일하고,

유일한 여유시간인 일요일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선 루소가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요화가'라는 별명으로 그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독학으로 연습한 그의 그림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입체감은 잘 표현되지 않았고

구성상 중심이 없이 여러 요소가

동등한 비중으로 나열되어 있었죠.

주변 친구들은 루소를 세관원이라는 뜻의

두아니에로도 불렀는데요.

루소가 제아무리 그림을 그리더라도

화가가 아닌 세관원이라는 의미였죠.

하지만 루소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세관원과 화가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것에 빠져들었는데요.

바로 자연이었죠.

업무에 지친 하루하루 속에서도

매번 생기롭게 마주하는 자연들.

자연은 마치 루소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그럴수록 루소는 자연에 빠져들었죠.

이에 루소는 더욱더 자연을 찾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파리의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 등을 찾아갔는데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풍경과 함께

자연의 요소요소들을 깊게 살펴보기 위해서였죠.

힘든 일상이었지만, 그는 그런 순간순가들을 감사히 여겼습니다.

그렇게 본 것들을 일요일에 작품으로 그려냈죠.

이 시기 그의 그림들을 보면

그가 매료된 자연의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죠.

그는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작품활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886년,

파리 우체국의 기획전시장에서는 전에 없던 이색 전시가 열렸는데요.

당시 주목받던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냑 등, 신진 화가들이 주최한 전시였습니다.

전시의 제목은 앙데팡당 전이었는데요.

독립적, 자주적이라는 뜻을 지닌 'Indépendant' 의 프랑스식 표현이었죠.

앙데팡당전은 권위적인 기존 예술계에 도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별된 작품들만 전시가 가능한

기존의 예술계 방식에 대항했는데요.

앙데팡당전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양식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저 약간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전시를 할 수 있었죠.

42세의 루소도「카니발 저녁, 1886」을 앙데팡당전에 출품했습니다.

신비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쌍의 연인이 밝게 빛나고 있는 그림이죠.

이 작품은 금세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아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림 속 나무들은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까운 나무와 먼 나무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죠.

인체의 비례나 자세도 이상해보였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양식이었죠.

때문에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서투르고 이상한 그림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이런 그림은 볼 필요도 없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소는 이런 비판적인 평가에도

매년 개최되는 앙데팡당전에 출품을 평생 이어갔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전업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세관원이면서 동시에 화가라는 이중적인 삶 대신

전업 미술가로서의 도전을 시작한 것이죠. 

전업 화가가 된 루소는 세관원 시절보다

그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샌가부터 독특하고 기존의 화풍을 따르지 않는 그의 스타일은

주변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는데요.

1900년대 초, 당시 이미 스타였던 피카소가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그림에 담긴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었죠.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을 구입해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에도 자신만의 철학을 따른 것이

루소의 그림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1908년, 20대 중반이었던 피카소는

60세가 넘은 루소를 적극 후원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피카소는 루소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비주류였던 루소가 늦은 나이에

예술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죠.

60이 넘는 나이에 뒤늦은 주류미술계 데뷔였지만

그의 자부심은 엄청났습니다.

“피카소와 나는 현존 최고의 화가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다녔죠.

이런 자신감은 '나, 초상-풍경, 1890'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건물만큼 엄청나게 크게 그려놓고

화가로서의 정체성도 당당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소는 정글을 주제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가 처음 정글을 그린 것은

1891년의 「놀라움」에서였습니다.

종이를 오려 붙인 듯한 호랑이가

수풀 사이에서 먹이를 노리고 있는 장면이죠.

이후에도 여러 정글을 그렸는데요.

재밌는 점은 루소가 정글 그림을 설명할 때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청년시절 징역을 피해 군복무를 했는데요.

이 시기 멕시코에서 복무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경험한 이국적인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루소는 멕시코에서 군복무를 한 적도

파리를 떠나 정글에 가본 적도 없었죠.

직접 보지 않은 것을 그렸다고 밝힐 수가 없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식물들은 모두 열대식물이 아닙니다.

온난한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었죠.

게다가 그림 속 식물의 모습이 잘못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속 바나나가 그 예인데요.

실제로 바나나가 자라나는 방향과 반대로 그림에 그려넣었죠.

식물원과 동물원, 도록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식물들을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오류들이 그의 미술을 이해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이국적인 느낌이었는데,

루소의 정글 그림이 그들에게 큰 영감이 되었기 때문이죠.

오히려 부정확한 대상들은

그림을 훨씬 더 환상적이고 몽환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가 제대로 예술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요.

기존의 원근법, 색 이론 등을 벗어난 그의 그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생동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꿈」(1910)은 루소의 대표작으로, 세간의 큰 찬사를 받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식물들의 색감입니다.

이 그림에 쓰인 녹색의 종류만 해도 50여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많은 색상을 적용했음에도 조화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색채와 형태의 배치가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중앙에는 소파에 누워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소파에서 잠이 든 여인이 정글에 온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정글에 어울리지 않는 소파를 배치하여,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죠.

 그림 속에는 의미를 알기 힘든 갖가지 요소들이 놓여 있는데요.

이러한 요소들은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루소의 예술세계를 가감없이 뽐냈죠.

루소는 정글그림을 통해, 세상의 굴레에 속하지 않는 기법과 철학을 마음껏 펼쳐나갔습니다.

루소는 피카소가 주최한 파티를 통해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간 어설프고,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이라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의 작품 세계는

독특함과 이색적인 걸작으로 인정받았죠.

아쉽게도 주류미술에 데뷔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루소는 생을 마감합니다.

30살이 다 되어서야 그림을 제대로 시작했고,

60세가 넘어서야 인정받은 화가에게 2년은 너무나도 짧은 순간이었죠.

하지만 그의 독특한 화풍은 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그의 스타일은 많은 예술가와 창작자들에게 영감이 되며 오마주되었죠.

현대에는 다양한 광고나 디자인 속에서도

.그의 작품세계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데요

여러분들은 루소의 작품 속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