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 '신동'에서 '헐크'로 변신한 강동궁
박승희 선수는 당구계의 레전드인 고(故) 이상천 선수와 버금가는 실력으로 국내 당구계를 호령했다. 최정상급 실력자인 그는 전국대회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고등학생한테 결승전에서 패하는 이변의 희생자가 됐다. 그 이변의 주인공이 강동궁(42·SK렌터카위너스) 선수였다. 강동궁은 1996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당대 최고수 중 한 명인 박승희를 결승전에서 격파한 뒤 '당구 신동', '당구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는 성인이 된 후 당구계를 대표하는 파워 스트로크로 명성을 날렸다. 그래서 얻은 그의 별명이 '헐크'이다. PBA를 대표하는 강자인 강동궁이지만 그에게도 세 번의 큰 위기가 몰려왔다. 두 번의 위기는 자칫 당구 선수 생활을 접을 뻔했다. 혹독한 시련기가 지금의 강동궁을 만든 셈이다.

첫 위기...아버지의 최후 통첩 "이럴 바에는 당구 접어라"
강동궁의 어린 시절은 유복하지 않았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팔던 아버지가 당구장을 차렸지만, 할아버지를 모시고 부모님과 3형제가 당구장에 딸린 방에서 함께 지냈다.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10살 무렵 먼저 당구를 시작한 형이 흥미를 잃자 강동궁은 동생과 함께 큐를 장난감 삼아 당구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별다른 생각도 없이 당구를 치는데 어느 날 손님 중에서 '동생이 훨씬 잘 치네'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자 승부욕이 발동해서 좀 더 열심히 당구에 임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업을 마치면 바로 집에 와서 당구를 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루 8시간 이상 강행군하기 일쑤였죠."
희한하게도 당구장 손님들 대부분이 4구가 아닌 3쿠션을 즐겨 쳤다. 덩달아 강동궁도 3쿠션에 빨리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부산에서 선수 생활을 겸한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2학년 때인 1994년 선수로도 등록했다. 당시 학생 신분의 선수는 포켓볼의 김가영(하나카드) 선수와 강동궁뿐이었다.
강동궁은 고등학교 때까지 전국대회 우승과 준우승을 거머쥐는 등 성인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의 집안 사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만~30만원 정도의 대회 참가비조차 계속 집에서 지원하기가 버거웠다. 군에서 제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버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2002년 12월 무렵이었다. 강동궁은 지금도 당시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비록 학생 때 성과를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당구만 치면 결국 놈팡이밖에 더 되겠냐는 겁니다. 당시 당구로 생계를 잇기 어려운 환경이란 점을 선수 생활을 하신 아버님이 더 잘 아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죠. 그러면서 1년 정도 지나서도 큰 성과가 없으면 당구를 접고 다른 기술을 배우라고 하시대요. 저한테는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오직 당구 한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1년 만에 무슨 성과가 나오겠나 싶었죠. 당시로서는 너무 섭섭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결국 인생이 꼬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면서 당구를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반쯤 포기하다시피 한 강동궁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다가왔다. 아버지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은 5개월 뒤 'SBS 당구대제전'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가 뜻하지 않게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결승 상대는 당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대구 출신의 이승진 선수였다.
"저 자신도 우승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야말로 깜짝 우승이었죠. 그 우승이 계속 당구의 길로 매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인정하실 수밖에 없었죠. 만약 그때 우승을 하지 못했다면 제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아요."

두 번째 위기...스트로크 교정하다 선수 생활 접을 뻔
이후 강동궁은 국내 정상급 선수로 우뚝 올라섰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다시 깊어졌다. 해외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격차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강동궁의 고민은 국내에서부터 시작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그는 최성원·고(故) 김경률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자연스럽게 합숙 훈련이 이어졌다.
"3명이 합숙 훈련을 하는데 두 선수가 항상 공 배치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어요. 저는 좀 의아했죠. 웬만한 선수면 충분히 칠 수 있는 공 배치인데 왜 심각하게 의견을 주고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죠. 아는 공은 혼자 연습하면 충분하다고 여겨 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강동궁은 유럽의 정상급 선수들과 부딪치면서 최성원과 김경률의 고민을 뒤늦게 이해했다. 단순히 공을 맞히는 방법이 아니라 가능하면 편하고 간편하게 공을 제어해서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유도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었다.
"두 선수가 고민하던 배치를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공략하는데 그 방법이 완전히 같았던 겁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되도록 많은 회전을 사용하면서 타격을 하는 편이었어요. 편하게 포지션까지 염두에 두고 칠 수 있는 공을 바보처럼 어렵게 치고 있었던 거죠. 정상급 선수들은 되도록 적은 회전으로 간략한 스트로크를 통해 공의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쉽고 편하게 치는 공략법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나중에 알게 된 겁니다."
그 당시 강동궁의 스트로크 자세는 팔이 허리 바깥으로 굽은 채 손목까지 살짝 꺾인 모습이었다. 항상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특정한 몇몇 배치는 그 자세로 공략하기조차 어려워 곤란을 겪기도 했다.

강동궁은 고민 끝에 국가대표를 이끌던 김정규 코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구계에서 '똘이장군'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김정규는 이상천과 어깨를 겨룰 만큼 실력자이면서 당구계 최초로 체계적인 비디오 분석법을 도입한 선구자이다.
"김 코치님이 스트로크 자세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형태가 아니라 일직선으로 나가는 형태로 바꾸자고 제안을 해줬어요. 그래서 자세 교정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자세를 바꾸기 전에는 고수들이 항상 강조하는 '큐의 무게로만 던져줘라'라는 개념을 몰랐어요. 그런데 자세를 바꿔 연습하다 보니 비로소 그 뜻을 몸으로 이해할 수가 있었죠."
하지만 그때부터 강동궁은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2년 동안 극심한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진의 악순환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큐를 놓을 생각까지 들었다.
"한 마디로 제 당구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예전에 어떻게 쳤는지 감각을 통째로 잊어버려 경기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예요. 시스템보다는 감각에 의존하는 당구를 구사했는데 균형이 모두 무너져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김 코치님을 찾아가 당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코치님은 당연히 만류하셨죠."
끝이 보이지 않았던 부진의 터널은 2012년 8월 '인천광역시장배 전국 3쿠션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이후 2013년 구리 월드컵대회에서 대망의 월드컵 첫 우승에 이어 2015년에는 가장 권위가 높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최성원과 함께 세계팀3쿠션선수권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스스로 벽을 깨고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급 선수로 진화한 것이다.

세 번째 위기...PBA 진출 후 압박감으로 다시 찾아온 슬럼프
대한당구연맹 소속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강동궁은 PBA 출범을 앞두고 갈등을 겪었다. 앞서 두 차례나 당구 프로화 시도가 좌절되는 경험을 기억한 그는 프로리그 출범을 반겼지만 성공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정상급 선수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당시 탑랭커 선수들과 논의한 결과 각자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PBA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서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이번에는 그래도 가능성이 엿보였어요. 만약 실패하더라도 당구장을 개업해 입에 풀칠하면 되겠다는 배수진을 깔고 PBA 참가를 결정하게 됐죠."
마침 세계 4대천왕 중 한 명인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선수도 전격적으로 PBA 진출을 선언했다. 그러자 당구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쿠드롱-강동궁'의 결승전 모습을 기대하면서 모두가 두 선수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렸다.
"쿠드롱 선수와 비교되기 시작하자 저도 모르게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컸나 봅니다. 모든 공을 더 정확하고 신중하게 치려다가 실수가 되풀이되면서 경기가 풀리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2점제라는 새로운 룰 때문에 수비를 염두에 둔 공들이 상대방의 뱅크샷 기회로 이어지는 낭패를 겪기도 했죠.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힘 배합을 달리하다가 리듬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됐습니다. 사실 제가 뱅크샷도 약한 데다 세트제도 그렇고 서바이벌 제도마저 낯설어 부담이 더 됐던 것 같아요."
2010년에 겪었던 악몽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묻어나온 자신감으로 상대 선수를 위축시켰던 상황이 정반대로 엄습했다. 상대적으로 약한 선수를 만나도 불안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 순간 상대 선수의 눈빛에서 저를 경계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느끼는 자신감이 보이더라고요. 말 그대로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습니다. 나중에는 시합 자체가 무서워졌고 사람들을 피해 숨고 싶을 정도로 위축됐어요. 심지어 초보자처럼 예비 스트로크를 할 때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상황까지 왔죠. 다시는 절대로 우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완전히 무너졌어요."
또다시 찾아온 강동궁의 위기는 기적과 같은 역전승이 부활의 실마리가 됐다. PBA 개막 이후 5차 대회를 거치는 동안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6차 대회 'SK렌터카 PBA챔피언십' 32강전에서 김임권 선수를 만났다.
세트 스코어 2 대 2. 11점제인 마지막 세트에서 김임권이 치고 나가 마지막 1점만 남겨놓았다. 강동궁의 득점은 불과 3점에 그쳤다. 패색이 짙던 순간 절박한 심정의 강동궁이 맹추격에 나서자 김임권이 3이닝 공타로 주춤거렸다. 그 틈을 노려 결국 강동궁이 11 대 10으로 대역전에 성공하고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 기세를 이어 강동궁은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 선수를 꺾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슬럼프도 벗어났다.

동탄의 개인 연습장 항상 북적..."노하우 공유하고 싶어"
강동궁은 경기도 화성시에 개인 연습장을 마련했다. 아담한 빌딩 1층에 '강동궁 빌리어드 라운지'라는 간판도 버젓이 걸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헐크로 형상화한 강동궁 캐릭터가 외곽 벽을 장식하고 있다. 실내는 그를 후원하는 프랑스 쉐빌로뜨의 테이블 3대가 놓여 있다.
그의 라운지에는 매일 찾아오는 고정 '패밀리'가 있다. 당구 동반자가 된 차명종(인천시체육회) 선수도 그 일원이다. 35세의 나이에 제약회사 연구원직을 내려놓고 늦깎이 선수로 출발한 차명종은 후배인 강동궁에게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 뱅크샷이 약한 강동궁은 차명종의 뱅크샷 노하우를 얻기도 한다.
이밖에 강동궁과 같은 팀원인 히다 오리에와 제자인 홍종명·전혁민 선수 등도 라운지를 지키는 패밀리 멤버들이다. 강동궁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후배 선수가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면 제 시간을 쪼개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세세한 부분까지 그동안의 경험을 함께 녹여서 알려주려고 합니다. 저 자신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이곳 라운지 가족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소원이자 목표예요."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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