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 하나 바꿨을 뿐인데"..박결이 따라가도 될 '사라센 발자취'

김인오 2022. 5. 2. 05: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결이 지난 달 30일 열린 크리스 F&C 제44회 KLPGA 챔피언십 3라운드 경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MHN스포츠 포천, 박태성 기자)

(MHN스포츠 포천, 김인오 기자) "그립 잡는 법을 바꿨을 뿐인데~" 

'필드 요정' 박결(26)이 달라졌다. 기량은 물론 마음 가짐까지 완전히 바뀌었다. 비록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22시즌 초반이지만 과거와 달라진 기록과 성적은 박결의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달 28일. KLPGA 투어 메이저대회 크리스 F&C 제44회 KLPGA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박결은 연습 그린을 찾았다. 그리고 1시간 넘게 퍼트 연습에 매진했다. 동료들과 간간히 눈인사를 주고받는 게 유일한 휴식 시간. 그린 사방을 돌며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퍼터를 휘둘렀다.

30분 넘게 지켜본 후 겨우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박결은 "작년은 내 골프 선수 인생 중 가장 최악의 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해는 됐다.  201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박결은 2018년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거둔 1승이 유일한 우승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매년 상금랭킹 60위 이내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시련은 지난해에 찾아왔다. 개막전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컷 탈락으로 출발이 좋지 않았던 박결은 무려 13차례나 컷 기준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상금을 많이 쌓지 못해 랭킹 69위까지 밀려났고 결국 '지옥의 시드전'으로 내몰렸다.

포기를 먼저 생각했다. 정확히는 포기를 결정했다. 박결은 "시드를 놓쳤을 때 골프를 그만두려 했다. 부모님도 '이제 그만해도 된다'며 내 뜻을 존중해 주셨다. 그게 자극이 됐다. 부모님 생각에 골프채를 더 꽉 잡았다. 만약 부모님이 말렸다면 진짜로 그만뒀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27위. 1~2개 대회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회를 나갈 수 있는 괜찮은 성적표였다.

박결은 "최악만을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나를 믿어준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올해 출발이 괜찮은 것도 새로운 마음 가짐 덕분이다. 골프를 바라보는 마음, 투어에 임하는 자세는 분명 과거와 달라졌다고 자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짜로 출발이 좋다. 지난해 컷 탈락했던 개막전에서 5위를 했다. 두 번째 대회에서 34위로 잠시 쉬어 가더니 지난 달 24일 끝난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3위를 차지했다. 1일 끝난 KLPGA 챔피언십도 최종 33위로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현재까지 모인 상금은 약 9000만원. 지난해 1년 동안 1억원을 겨우 넘겼던 박결은 단 네 경기 만에 비슷한 액수의 상금을 쌓았다. 상금 랭킹 10위. 남은 대회가 많기에 시드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될 정도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박결은 '퍼트'에서 해답을 찾았다. 골프를 시작한 후로 정그립만 고집했지만 올해부터는 왼손을 내려잡는 역그립으로 바꿔 퍼트를 하고 있다.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는 골프 격언이 있듯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립 변화는 오롯이 자신의 결정이었다.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굳은 각오로 과감하게 고쳐 잡았다. 박결은 "아무도 권하지 않았고, 가르침도 없었다. 시즌 시작 전까지 익숙해 지도록 수만 번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박결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용하던 퍼트 그립을 바꾸는 것은 큰 모험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꼭 바꿔야 했고, 바꾸고 싶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변화는 다행히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높아졌다. 박결은 "4개 대회를 치르면서 걱정이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다. 집 나갔던 퍼트가 돌아온 덕분이다. 골프도 예전보다 더 재밌다. 그렇기에 성적에 대한 후회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결과가 좋은 게 낫지 않겠나"라며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결의 변화된 모습에서 '전설의 골퍼' 진 사라센(미국)이 잠시 스쳤다. 메이저대회 7승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39승을 달성한 선수다. 물론 현재 박결의 커리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大)선수다.

사라센 역시 슬럼프를 스윙 교체로 탈출했다. 여러 시행착오로 선수 활동까지 위협을 느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스윙을 완성했다. 스윙 교체 이전 메이저 3승이었던 사라센은 이후 PGA 투어 역사상 최초로 4개의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박결은 새로운 골프 인생을 그리고 있다.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고 프로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도 있다. 기본기는 이미 탄탄한 선수다. 'KLPGA 투어의 진 사라센'을 꿈 꿀 수도 있다. 먼 나라 얘기는 분명 아니다.

박결이 지난 달 28일 열린 크리스 F&C KLPGA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역그립으로 퍼트를 시도하고 있다.(MHN스포츠 포천, 박태성 기자)

 

Copyright © MH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