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 총명한 사람을 뜻하는 문일지십(聞一知十)에서 유래됐지만, 이상하게도 지나친 일반화, 잘못된 범주화, 고정관념 등을 자연화하는 말처럼 쓰인다.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 어떤 정체성 범주에 대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생각이 편견을 정견처럼 여기게 한다. 물론 틀렸다. 하나를 보면 하나를 겨우 알까 말까다. 이상한 속담 하나 있다고 모든 속담이 틀리지 않았듯, 하나를 미루어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웹툰 <집이 없어>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집이 없어〉의 두 주인공 고해준과 백은영은 저 말에 시달려온 청소년들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특히 될성싶은 나무와 될성부른 나무를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시선에 의해 재단당하며 살아왔다. 물론 늘 후자였다. 해준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는데 이제는 어머니마저 여읜 상황이다. 은영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이후로 줄곧 밖에서 살아오며 더한 시선에 시달렸다. 집이 없는 두 청소년은 더 이상 기숙사로 사용되지 않는 옛 기숙사 건물에서 살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서로의 신체에 각인된 시선들 또한 교환한다.
총 9화로 꾸린 ‘고해준과 백은영’ 에피소드는 바로 그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효과를 내는지, 그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응축해 보여준다. 청소년이 내면화해 되돌려주는 시선과 함께. 두발자유 시대에 은영의 긴 머리를 두고 여자 같다며 야단치는 교사가 ‘하나’다. 그 자리에서 풀려난 은영은 마침 다른 교사에 대해 불평하던 해준과 다른 선배를 만나는데, 선배의 말이 도화선이 된다. “이 학교 은근 이상한 쌤들 많지 않냐?” 은영은 자신 있게 ‘열’을 말한다. “이 학교만 그러겠어요?” 이어서 덧붙인다. 꼭 “늙은 새X들”이 그런다고. “그냥 그 나이대”가 문제라고.
늘 받던 시선을 같은 방식으로 어른 모두에게 되돌려주는 은영에게 해준은 지적한다. “사람 됨됨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은영이 되묻는다. 어른 중에 좋은 사람이 누가 있냐고. 해준은 말하지는 못하고 떠올린다. 돌아가신 엄마를. 초등학생 시절 해준은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 걸린 어느날 가게 주인은 엄마를 불렀고 ‘열’을 말했다. “애가 싹이 노랗네. 저런 애들은 진짜 평생 저래. 앞으로가 뻔하다.” 그때 자신을 지켜주고 버릇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준 엄마를 해준은 기억한다. 하나를 하나로 끝내는 법을 그는 엄마에게 배웠다.
같은 상황이 현재의 은영에게 닥친다. 해준은 은영이 물건을 훔치는 걸 목격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강권한다. 은영은 못내 약속하지만, 이후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어린 해준이 들었던 ‘열’이 은영을 향해 재생된다. “저런 애들 막살아, 정말로.” 해준은 불안하지만 은영의 곁에 선다. 좋은 어른, 엄마가 그랬듯 은영의 하나를 하나로 보려 한다.
결말은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집이 없어〉는 하나만 보고는 알 수 없는 청소년들의 삶을 잔뜩 보여준다. 숫자로 환원될 리 없는 입체적 면모를 섬세하고 다채로운 시선으로 그저 보여준다. 따라서 독자는 청소년들에 대해 배우되 알게 되지는 않는다. 독자가 배우는 건 청소년에 대한 앎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새 시선이므로. 세대를 막론하고 더 많이 읽혀야 할 소중한 작품이다.